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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32] 에피소드 10 : 헤드라이트로 신호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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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01:09 조회 98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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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드라이트로 신호해주기



루마니아에서 늘 경험하던 일이다. 길은 좁고 차량이 많은 데다, 그들의 운전습관 또한 고약하여 초긴장의 연속이었다. 좁좁한 편도 1차선. 그들은 흡사 추월하기 위해 운전대라도 잡은 듯 ‘목숨들을 걸고’ 반대편 차선을 넘나들었다. 

 어느 날인가. 이전처럼 잔뜩 긴장 상태로 핸들을 잡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헤드라이트를 번쩍 휘두르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나. 혹시 내 차에 문제가 있는가 하여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는 분명 내게 ‘번쩍’ 하고 ‘경고 아닌 경고’를 보냈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몇 번에 걸쳐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게 있는 성 싶었다. 그래서 찬찬히 주변을 살피기로 했다.

 서너 번째 그런 신호를 받고부터는 조심조심 주변을 예의 관찰했다. 고개 하나를 넘으니 교통경찰이 승용차 두 대를 잡아놓고 있었다. 그들이 헤드라이트를 휘두른 건 다름 아닌, ‘바로 앞에 교통경찰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호의의 신호였다. 그들의 마음 씀이 고마웠다. 떳떳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뒤로부터는 나도 그런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내주게 되었다. 

 바로 오늘 터키의 카파도키아로부터 코니아를 거쳐 이곳 베이세히르에 도착하는 동안 반대편 차선을 달리는 자동차들로부터 서너 차례나 헤드라이트 신호를 받았고, 그 때마다 ‘숨어서 지키는’ 교통경찰들을 목격했다. 미안한 일이지만, 나 역시 헤드라이트 신호의 대열에 합류한 것은 물론이다.  이처럼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키의 도로에서 교통경찰들을 보기란 어렵지 않고, 운전자들 대부분은 그들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상호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유일한 방법이 바로 헤드라이트 신호였다.


             ***


 은밀한 곳에 숨어 기다리다가 과속 차량들을 잡아내는 이곳 경찰들의 활약은 내게 아주 낯익은 모습들이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도로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교통경찰들이 골목을 지킬 필요가 없지만. 내가 운전을 시작한 80년대 후반에는 교통경찰들이 고속도로에까지 들어와 과속차량들을 잡아내곤 하였다. 그러니 좁좁한 국도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었으랴.   요소마다 진을 치고 있던 경찰들에게 과속을 즐기는 운전자들은 툭하면 점심 값, 술 값 다 날렸다고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벌금을 무는 대신 현찰로 얼마씩 ‘찔러’ 주기도 하고, 그들이 당당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운전자들 간에 상호 구제의 방책으로 고안된 것이 ‘헤드라이트 신호’였다. 누가 언제 제창한 것도 아니었을 헤드라이트 신호법. 한때는 참으로 고마운 아이디어였다. 고백하건대, 운전 시작 후 몇 번이나 속도위반으로 걸리면서 나 자신도 그 대열에 합류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나마 도로에서 교통경찰들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부터는 까맣게 잊고 지내던 ‘과거사’ 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런데, 동유럽과 터키에 와서 이십여 년 전의 ‘헤드라이트 신호’를 만났고, 그 ‘짜릿한’ 쾌감을 다시 맛보게 되었다. ‘창이 있으면 반드시 방패가 만들어지는’ 이치였다.

 교통의 후진국 대한민국에서 이미 사라진 헤드라이트 신호가 이곳에선 운전자들의 자구책으로 아직도 유효함을 확인한 요즈음, 좀 헷갈리는 점도 없지 않다. ‘과연 우리는 교통문화에서 이들보다 선진적인가?’    


**사진 위는 교통위반 딱지를 발부하는 터키의 교통경찰과 위반자를  발견하고 즉시 달려가는 또 다른 터키 경찰, 아래는 에기르디르 호숫가의 텅빈 배들


200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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