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터키 제4신(2) : 무너진 천년의 영화, 폐허 속에 잠든 인간의 꿈과 시간들-에페소와 셀축(2) >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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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44] 터키 제4신(2) : 무너진 천년의 영화, 폐허 속에 잠든 인간의 꿈과 시간들-에페소와 셀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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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01:21 조회 1,08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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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제4신(2) : 무너진 천년의 영화, 폐허 속에 잠든 인

                     간의 꿈과 시간들-에페소와 셀축(2)



 김형! 성서의 ‘에베소서’를 아시겠지요? 우리나라 성서의 초기 번역자들이 ‘에베소’라 음역(音譯)한 그 ‘에페소’란 이름은 과연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요? 아직 누구도 확실한 어원을 찾아내지는 못한 듯, 그저 설들만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오.

 어떤 연구자는 이렇게 말합디다. 아나톨리아(Anatolia) 서쪽의 히타이트족에 의해 세워진 도시의 이름 ‘아파사스(Apasas)’로부터 나왔다고요. 이 말은 벌을 의미하는 아피스(Apis)에서 나왔고, 에페소의 휘장도 바로 벌이라지요? 초기의 에페소 주화들에도 벌이 새겨져 있답디다. 벌은 에페소의 아르테미스신과도 관계가 있소. 벌은 풍요의 상징이기도 한데, 물론 가설이긴 하나 아마도 에페소는 벌의 여신의 도시가 아니었을까 추정하기도 한다오.

 에페소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몸에 주렁주렁 달린 둥그런 것들(젖통 같기도 하고 알 같기도 한)은 풍요의 상징이겠지요. 어쨌든 도시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를 추정해보는 일은 재미있지 않소?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름의 유래를 갖지 않은 도시는 없소. 이 문제는 앞으로 더 생각해 보아야겠소.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리시마쿠스(Lysimachus)장군. BC 289년 그는 코레서스(Coressus)산과 피온(Pion)산 사이에 이 도시를 세우고 그 아내의 이름을 따 아르시노(Arsinoe)로 명명했었소. 그러나 그가 죽은 뒤 다시 에페수스(Ephesus)로 되돌아갔지만. 아무래도 이곳 사람들은 에페소란 이름을 선호했던 것 같소. 

 성 요한 교회가 서 있는 셀축의 아야술룩에서는 이미 기원전 3천년 경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하오. 에페소의 전성기였던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 20만의 인구가 살고 있었으며, 오늘날 볼 수 있는 중요한 건축은 이 시기에 대부분 이루어졌소. 이 지역을 여러 번 강타한 지진으로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그 때마다 사람들은 무너진 곳을 개축하거나 증축하여 도시의 규모는 오히려 커져갔소. 

 이 도시가 기독교와 관련을 맺게 된 것은 사도 바울의 전도활동에서 비롯되었소. 그가 이곳에 세운 교회는 기독교 초기 7대 교회 중의 하나가 될 만큼 번창했었소. 

 그러나 에페소는 비잔틴 제국시대에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소. 우선 에페소 항구가 흙으로 메워지면서 도시와 바다가 멀어지게 되었고, 역병(疫病)까지 창궐함으로써 점점 에페소는 빛을 잃어가게 되었던 것이오. 아야술룩 언덕에 성 요한 교회가 세워지고 이곳이 번창함에 따라 기독교의 중심은 에페소로부터 셀축으로 옮겨지게 되었소.

<계속> 


**사진 위는 에페소 박물관의 아르테미스 여신, 아래는 셀축 아야술룩 언덕의 성 요한 교회


200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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