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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52] 터키 제5신(2) : 에머럴드 빛 바닷물에 마음을 헹구고-에게해변 체쉬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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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01:28 조회 99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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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제5신(2) : 에머럴드 빛 바닷물에 마음을 헹구고-

                     에게해변 체쉬메(2)



 바다 건너 소리치면 들릴 만한 곳에 그리이스의 섬, 키오스가 있었다. 카페리로 50분 거리란다. 키오스에 건너가야 아테네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체쉬메에서 키오스까지는 국제선, 키오스에서 아테네까지는 국내선이다. 그래서 전자는 2인 1차 요금이 110유로인 반면, 후자는 100유로란다. 손에 잡힐 듯 밤이면 불이 반짝이고, 낮에는 흰색 지붕들이 뚜렷했다.

 우리는 건너려 했다. 그러자 해운회사 직원이 말했다. 오늘, 내일, 모레가 그 쪽의 크리스마스 휴가란다. 그래서 화요일(12/27)에나 아테네 행 페리를 탈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이곳에서 이틀을 묵기로 했다. 그리곤 고성을 관람했다.

 오스만의 술탄 베야지트(Beyazit) 2세 때 만들어진 체쉬메 고성. 1508년의 일이었다. 고성은 견고한 이중의 성벽으로 되어 있었고, 성 안의 박물관엔 기원전 로마시대의 유물들도 꽤 있었다. 생생한 사연이 기록된 묘지석이나 묘비들. 아들들이 돌아간 어머니를 추모하며 세운 것도 있었고, 싸움터에서 목숨을 보호해준 생명의 은인에게 바친 것도 있었다. 뜰엔 러시아와의 체쉬메 해전에서 노획한 대포도 녹슨 채 전시되어 있었다.    

 우린 25일 성탄절을 교회 하나 없는 체쉬메에서 보내게 되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떠들썩하게 성탄절을 보낼 시각, 이곳은 고요했다. 우리에겐 그 고요가 생소했다. 그래서 아침 일찍 70km 떨어진 이즈미르로 달렸다. 혹시 그곳엔 무언가 있을까 해서였다.

 길이 환상이었다. 우리 차를 빼곤 달리는 차가 별로 없었다. 맑은 하늘,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도시들. 이즈미르에 들어서자 해변을 따라 가득 세워놓은 아파트들이 인상적이었다. 매우 아름다웠다. 그러나 뒤쪽엔 허름한 집들도 많았다. 화려한 도시의 그늘이 숨어 있었다.   도시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높은 카디페칼레에 올랐다. 자욱한 스모그에 도시는 가려져 있었지만, 아름다움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카디페칼레와 이즈미르는 알렉산더 대왕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BC 334년 아나톨리아에서 동방 정벌을 시작한 알렉산더. 그 후 3백년은 헬레니즘 시대였다. 이 시대 동 지중해 연안 공동체들에 찾아온 사회적·문화적 격변. 각지에 도시화가 새롭게 도입되었고,  안전한 곳엔 많은 도시들이 생겨났다. 바다 가까운 곳에 도시들을 세운 것은 효율적인 방어와 무역 때문이었다. 

 스미르나(Smyrna) 즉 이즈미르는 헬레니즘 시대 도시들 중의 하나였다. 여기서 알렉산더의 꿈 한 토막은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파고스(Pagos) 즉 카디페칼레에 사냥을 나갔다가 피곤하여 네메시스 여신에게 봉헌된 신전 앞의 큰 나무 아래 누워 있던 알렉산더.

 그의 꿈에 네메시스가 나타났다. 그녀는 알렉산더에게 그곳에 도시를 세워 스미리언(Smyrian)들을 살게 하라고 부탁했다. 스미르나 사람들이 이 꿈을 아폴론의 신탁 센터에 자문하자 아폴론의 예언자들은 말했다. “성스러운 멜레스(Meles)를 넘어 파고스에 가는 사람들은 세 배, 네 배 더 행복할 것이다” 라고. 그래서 현명한 스미르나 사람들은 파고스의 비탈에 있는 새 장소로 거주를 옮겼다는 것이다.

 AD 2세기의 파우사니스(Pausanis)에 의해 처음으로 기록된 것이 이 전설이다. 그 시기로부터 이 지역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은 카디페칼레에 신도시를 건설했고, 향후 아주 강한 항구도시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 설명의 요지였다.

 헬레니즘, 로마, 비잔틴 시대를 거치면서 ‘번영’의 외길을 지속해온 것은 바로 이 도시의 지정학적 특성 덕분이었다. 이즈미르는 이오니아(Ionia) 지역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자 종교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선교 초기 이 지역의 다신교로부터 큰 저항을 받았지만, 결국 이들의 신앙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그런가. 이즈미르와 체쉬메에서 우리는 회교사원의 에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 시장의 상가들에서도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이 지역에 잠재된 기독교적 성향이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이곳 사람들은 윤택해 보였다. 집도 아름답고 시가지도 깨끗했다. 해변의 국제도시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열린 마음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계속> 


**사진 위는 체쉬메 시가지, 아래는 퍼시픽 호텔 발코니에서 바라본 에게해의 석양 무렵


200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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