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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54] 에피소드 12 : 터키에서 만난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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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01:30 조회 99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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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에서 만난 동물들



 12월 17일, 카파도키아 으흘라라 계곡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매우 깊고 험한 계곡. 양쪽으로 병풍 같은 바위벼랑들이 서 있고, 그 사이에 잡목과 바윗돌들이 엉겨 있었으며, 바닥엔 제법 큰 폭의 냇물이 흘렀다.

 우리 두 사람 외에 다른 관광객은 없었다. 계곡 안의 암벽 동굴교회들. 그 동굴교회의 천정과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 화를 탐사하고자 했다. 그게 바로 우리가 먼 길을 달려 이곳에 찾아온 목적이었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어렴풋한 통로는 있었으나, 제대로 된 길은 없었다. 자칫하면 길을 잃을 우려가 있었다. 

 매표소를 통과한 우리는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쯤 내려갔을까. 추레해 보이는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올라오는 것이었다. 선량한 눈을 갖고 있었다. 비록 눈가에 물기는 어려 있었지만, 버려진 개 같지는 않았다.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였으나,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가방을 뒤져 비스킷 두어 쪽을 꺼냈다. 한 쪽 나누어주자 그는 아주 맛있게 씹어 먹었다. 그리고는 우리를 졸졸 따르기 시작했다.

 계단을 내려오니 길이 세 갈래였다. 좌로 갈 수도, 우로 갈 수도, 조그만 다리를 건너갈 수도 있었다. 망설이는데 그 개가 오른 쪽으로 앞장서는 것이었다. 그리곤 주춤거리는 우리를 뒤돌아보았다. 따라 오라는 눈치 같았다. 그래서 그를 따르기로 했다.

 그러자 그 녀석은 신나는 듯 우리를 앞서 나아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길을 제법 알고 있었다. 그를 따라가니 과연 첫째 교회가 나왔다. 우리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조용히 동굴 밖에 앉아 우리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나오자 또 앞장서서 갔다. 따라가니 두 번 째 교회가 나왔다. 그런 식으로 세 개의 교회를 안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네 번 째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 녀석도 길을 잃었는지 몇 번 오락가락 하더니 그만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 다음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혀를 차고 말았다. 아, 그 개야말로 타고난 가이드였구나!


             ***


 12월 21일. 아프로디시아스에 들렀을 때의 일. 원형극장을 거쳐 아고라 쪽으로 내려가는데,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따라 붙었다. 비쩍 마른 고양이였다. 먹을 것을 탐하는 눈치였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 아내의 가방을 뒤지니, 쵸코렛이 있었다. 한 쪽 떼어 던져주자 허겁지겁 먹어버렸다. 그리고 돌아서 가는데 이 녀석이 자꾸 따라오며 보채기 시작했다. 우리 옆에 바짝 붙어 야옹거리며 애걸을 하는 것이었다. 쵸코렛 좀 더 달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대개 고양이는 사람이 소리를 지르거나 다가가면 도망가는 법인데, 이 고양이는 좀 별난 데가 있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들은 척 만 척이었다. 그래서 또 한 쪽을 던져 주었다. ‘고로롱’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었다. 쵸코렛 먹고 입맛 다시는 고양이를 난생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먹고 나선 다시 쫓아왔다. 아무리 위협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하는 품으로 미루어 여러 사람들로부터 간식 깨나 얻어먹은 눈치였다. 사람들에게 자꾸 보채면 무언가 나온다는 이치를 터득한 고양이였다.

 높은 곳에 올라갈 때 먹으려고 남겨 둔 쵸코렛을 다 주었는데도 따라왔다. 참 고약한 녀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녀석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기로 했다. 한동안 야옹거리면서 따라왔다. 그러다가 다른 팀에서 무언가를 던져주니 그 쪽으로 따라 붙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조막만한 고양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


 우리가 만나는 터키의 동물들은 주로 개와 고양이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이 녀석들이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슬슬 따라붙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동물삐끼’로 부르게 되었다.

 이스탄불에서, 파묵칼레에서 지긋지긋하게 따라붙던 삐끼들을 잊지 못한다. 필요 없다고, 배가 부르다고 해도 한사코 따라붙는 그들이었다. 삐끼들 때문에 거리 관광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삐끼가 따라붙으면 대꾸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아예 대꾸를 하지 않으면 좀 따라 오다가 제 풀에 지쳐 떨어지고 마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개를 보면 주인을 안다’ 든가 ‘사나운 개는 주인 닮아 그렇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다. 이상하게도 터키의 개들은 낯선 사람을 보면 짖거나 덤비지 않고, 다가와 냄새를 맡거나 슬슬 따라 붙는다.

 서유럽에서는 주인과 떨어져 다니는 개를 별로 보지 못했다. 동유럽에는 떠돌이 개들이 많았다. 그곳의 떠돌이 개들은 대부분 말라깽이에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사납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터키의 개들은 대부분 살졌고, 사람을 잘 따랐다.

 터키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붙임성이 좋다.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에는 관광객들을 귀찮게 하는 삐끼들도 많다. 개들도 그랬다. 낯선 사람들을 보면 아주 붙임성 있게 다가와 몸을 부비는 친절 형도 있는가 하면, 끝까지 따라붙으며 먹이를 탐하는 삐끼 형도 있다. 

 팔자에 없는 유럽여행을 하다보니 지역별 개의 습관과 유형까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개 팔자가 상팔자’인 나라들을 우리는 돌고 있는 중이다.     


**사진 위는 으흘라라 계곡에서 우리를 안내하던 개, 아래는 퍼시픽 호텔 근처에서 발견한 노새


200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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