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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69] 여행단상 22(1) : 유럽의 새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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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13:42 조회 88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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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새들(1)



어딘들 그렇지 않으랴만, 특히 유럽은 새의 천국이다. 바다에 가면 갈매기, 산이나 들에 가면 까마귀·까치·참새, 도시에 가면 비둘기 등. 눈만 뜨면 새가 보인다. 

 엄지손톱만한 참새들을 발가벗겨 구어 놓고 ‘참 이슬’의 안주로 파는 우리나라. 독극물을 넣은 먹이로 청둥오리, 기러기 등 귀한 철새들을 잡아다가 보신용으로 팔아먹는 우리나라. 중국도 우리와 비슷했다.

 어쩜 새들 사이에선 우리나라나 중국이 지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나라로 찍혀 있을 것이다. 새들도 마음 놓고 살지 못하는 나라이니 네 발 달린 짐승이나 두 발 달린 사람은 오죽 할까. 그래서 새들이 누리는 ‘삶의 쾌적 지수’가 인간이 누리는 그것과 비례한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이다. 


             ***


 터키에 내려오니 까치가 많았다.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에서도 간간이 까치를 보았으나 터키만은 못했다. ‘무식한’ 우리는 까치가 우리나라만의 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훨씬 많은 수의 아름다운 까치들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불가리아 벨리코 타르노보의 짜레벳 성. 그 입구의 사자상 머리 위에 앉아 우리를 ‘그윽하게’ 내려다보던 까치의 자태를 잊지 못한다. 

 유럽의 도시인들은 비둘기와 함께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오래 된 성당이나 교회들의 첨탑 사이마다 비둘기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들 건물의 외벽은 비둘기 똥으로 더껑이가 져 있었다. 어쩔 수 없어 그물을 쳐놓은 경우도 더러 볼 수 있었지만, 대개는 속수무책인 듯 했다.

 대개 비둘기는 도심에서 떼를 지어 몰려 다녔다. 특히 센트룸의 광장은 이들의 독무대였다. 이상한 건 일정한 시간마다 한번씩 이들이 건물 옥상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광장 하늘로 날아올라 한바탕 군무(群舞)^^를 보여주기도 하고, 광장 중앙의 동상에 잠시 내려앉았다간 다시 날아올라 원위치 한다는 것이다. 마치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특히 놀라웠던 건 오스트리아 린쯔의 알트슈타트에서 만난 비둘기떼. 그 도시의 중심은 하우프트 광장이었고, 그 중앙에 삼위일체 탑Dreifaltigkeitssaule이 서 있었다. 비둘기 떼는 정기적으로 날아올라 광장을 서너 바퀴나 돌면서 자태를 보여준 다음 삼위일체 탑에 내려앉았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장관이었다.

 동유럽의 도시들에 오면서 비둘기들은 훨씬 많아졌다. 어느 광장엘 가도 비둘기 때문에 보행이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 폴란드 크라쿠프시 마르켓 광장의 비둘기들은 짓궂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행인들을 졸졸 따라다니는가 하면 광장 한 쪽의 의류상가 안에까지 들어와 먹이를 탐하곤 했다.

 아내의 분석에 의하면 동유럽의 비둘기들은 공산주의 시절 툭하면 열리던 매스게임에 동원되던 녀석들일 것이라 한다. 그들이 공산주의의 마수로부터 풀려나면서 비둘기들 또한 자유를 얻었으나, 자생력을 잃은 이들은 늘 도심에 진을 치고 앉아 행인들의 자선이나 기대하고 있다는 것. 재미있는 견해였으나 신뢰하긴 어려웠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참새들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이 던져 주는 먹이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베른의 공원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참새 떼가 몰려들었다. 내게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열심히들 쪼아 먹었다. 한 덩어리를 떼어주니 ‘이게 웬 떡이냐’는 듯이 물고 뜯고 야단들이었다.

 가만히 보니 그 가운데도 특히 날렵하고 약삭빠른 놈이 있었다. 한 덩어리 먹은 다음 가만히 물러서 있다가 다른 녀석에게 던져지는 부스러기가 있으면 뒤쪽에서 잽싸게 달려들어 가로채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같은 참새에게 연속으로 먹이를 던져주지 않는 점을 간파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베른의 참새들을 통해 그들 역시 인간 세계와 똑 같은 원리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터키 카파도키아의 로즈밸리는 산비둘기의 천국이자 ‘밭’이었다. 우뚝우뚝 솟아있는 ‘췸니’에 뚫린 ‘창문들’을 처음에 우리는 인간들이 살던 자취로 오해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거의 모두 비둘기 집이었다. 사람들이 비둘기를 위해 만들어준 집들이었다.

 마호멧이 박해를 피해 다닐 때 그를 도왔다는 점 때문에 회교도들은 거미와 함께 비둘기를 좋아했다. 로즈밸리 지역에서는 포도와 사과 등 과일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그들에게 비둘기 똥은 매우 중요한 ‘무공해 비료’였다. 그 뿐 아니라 비둘기는 해충들을 잡아먹기도 했다.

 이렇게 이 지역의 비둘기들은 유기농을 짓는 이 지역 주민들과 공생하고 있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곳 농부들과 ‘동업자들’인 셈이었다. 비둘기가 동업자로 대접 받는 현장을 카파도키아에서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묵었던 호텔 베스트 웨스턴은 보스포러스 해안에 있었다. 아침마다 갈매기들이 우아한 자태로 날아와 쉬어가는 모습들이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그런데 기이한 현상 하나를 관찰할 수 있었다.

 장소는 호텔 아래 건물 옥상의 굴뚝. 그 굴뚝은 위가 막히고 옆으로 연기가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굴뚝 윗면의 넓이는 눈대중으로 30×30cm쯤 될까. 갈매기 두 마리가 겨우 앉을 만한 넓이였다.

 이곳에 묵는 며칠 동안 살펴보니 늘 같은 갈매기 두 마리가 아침마다 날아와 앉아 있곤 했다. 어쩌다 다른 갈매기들이 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들이 날아오기만 하면 즉시 자리를 내주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굴뚝은 연기가 나가는 곳. 굴뚝의 위를 덮은 판은 분명 뜨듯할 것이었다. 아침 일찍 차가운 바다에서 먹이 사냥을 한 갈매기들이 몸을 녹이기에는 최적의 장소일 터.

 주변의 굴뚝들은 모두 위가 뚫려 있었으나, 유독 이 굴뚝만은 위가 덮인 형태였다. 그러니 그 근방에서 이 굴뚝은 아무나 앉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을 독점하던 그 두 마리의 갈매기들은 몸집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일종의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듯 했다. 어쩌면 그 지역 갈매기들의 우두머리 부부였거나 조부모 혹은 부모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갈매기 세계의 질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들 사이에선 그 굴뚝을 차지하기 위한 ‘세력 다툼’이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세계의 모습과 어쩌면 그리도 똑 같은지.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계속>


**사진 위는 이스탄불의 호텔 창문에서 목격한 보스포러스해의 갈매기, 아래는 오스트리아 린쯔의 중앙광장에 있는 삼위일체탑을 빙 돌아 날으는 비둘기 떼


200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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