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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86] 이탈리아 제3신(5) : 드디어 역사와 문화의 대양(大洋)을 만나다-로마의 감동(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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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14:35 조회 1,23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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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제3신(5) : 드디어 역사와 문화의 대양(大洋)

                           을 만나다-로마의 감동(5)



칼은 결단의 의미를, 열쇠는 ‘천국의 열쇠’를 상징한다고 한다. 예수님을 박해하던 로마 군인의 신분에서 그 분의 사도로 변신하여 순교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큰 결단들이 필요했을까.

 초대 교황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베드로 성인. 그의 손에 들려진 열쇠는 신실(信實)과 도타운 믿음이 모든 것에 앞서는 지혜임을 보여주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정했던 베드로. 결국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뒷모습을 보고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외치며 회개한 베드로.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순교할 수는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이승의 삶을 마감했다.

 그의 시신이 매장된 곳은 기독교를 박해한 네로황제의 원형경기장이 있던 곳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에 입문한 뒤 건축되어 오랜 세월 증·개축의 과정을 거쳤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건축한 그곳에 새로운 성당을 짓기로 한 16세기 초 율리우스 황제의 결정은 베드로 성당 건축사(建築史)의 두드러진 사건이었다.

 1506년 브라만테가 공사를 시작, 1514년 라파엘와 안토니오 다상갈로가 이어 받았고, 1546년 미켈란젤로가 떠맡게 되었다. 카를로 모데르노는 완성을 못하고 사거한 미켈란젤로의 뒤를 이었고, 1626년 베르니니가 정면을 재건축하고 광장의 열주들을 포개지는 형국으로 만들어 세움으로써 베드로 성당은 결국 완성을 보았다. 

 외부만큼이나 내부도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전체적으로 황금빛의 옐로우 톤. 직선과 원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천장과 벽을 덮고 있는 모자이크 그림들은 화려하면서도 중후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만났다. 20대의 앳된 성모에 안긴 예수님의 시신이 무거워 보였지만, 불균형으로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간 유럽의 성당들에서 무수히 보아온 피에타들. 모두 수심 가득한 어머니의 표정 일색이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그것은 달랐다. 우리의 둔한 감수성으로는 그 표정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성모의 왼쪽 어깨에서 대각선으로 내려 걸린 띠에 새겨진 미켈란젤로의 자필 서명 또한 매우 선명했다. 너도나도 피에타를 만들던 시절.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의 작자일 리 없다는 세간의 말들을 잠재우려는 오기와 치기의 소산이었다는데, 그런 행위 역시 자신만만했던 미켈란젤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알 수는 없었으나, 사람들은 그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스물다섯이 되기 직전의 작품이라니, 그의 천재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계속>


**사진 위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성베드로 대성당의 원본을 복제한 것, 현재 박물관 소장), 아래는 베드로 대성당 안의 베드로 성인 


200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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