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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90] 이탈리아 제3신(9) : 드디어 역사와 문화의 대양(大洋)을 만나다-로마의 감동(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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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14:41 조회 1,27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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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제3신(9) : 드디어 역사와 문화의 대양(大洋)

                           을 만나다-로마의 감동(9)



캄피돌리 광장을 벗어난 우리는 대전차 경기장을 찾았고, 코스메딘 성모 마리아 성당 근처에서 ‘진실의 입’을 만났다. 캄피돌리 광장 아래 삼거리에서 이곳까지는 <로마의 휴일>의 일부 배경으로 쓰였던 곳이다. ‘진실의 입’에 손을 넣어보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들 모두 <로마의 휴일>을 떠올렸으리라. 앤 공주로 분(扮)한 오드리 헵번과 신문기자로 분한 그레고리 펙이 이곳에서 손을 넣어보며 열연하던 분위기를 상상해 보기 위함인지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줄을 서는 것이 계면쩍었다. 긴 줄에 끼어들어 손을 넣어보는 일을 포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최초의 교황청이었던 성 요한 교회 건너편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들른 곳이 카타콤베. 우리는 이미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지하도시를 접한 바 있다. 카타콤베는 원래 무덤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박해시대엔 도피처로 쓰이기도 했다. 현재까지 여러 개의 카타콤베가 발견되었다. 그 중 우리가 찾은 곳은 아삐아의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 그곳엔 3세기의 여러 교황들의 무덤들도 있고, 성녀 체칠리아의 무덤도 있었다.

 군데군데 벽화들도 남아 있고, 글씨들도 간혹 보였다. 아치형, 사각형 등 두 가지 형태의 무덤들이 있었으며, 대부분 주거시설과 무덤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무덤과 함께 살아왔다고? 더구나 컴컴한 지하도시에서? 과연 그들은 무슨 의식을 갖고 있었을까?

 어느 곳에 가니 ‘임파체Impace’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가이드 최선생은 ‘평화 속으로’라고 해석했다. 그 문구는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고 했다. 그러나 그 반대가 아니었을까. 주검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삶, 그 고달픔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자기암시가 아니었을까. 모를 일이다. 

 놀라운 일은 그렇게 많은 시신들을 ‘한약방의 약 서랍들’처럼 촘촘하게 매장을 했어도 시신 썩는 냄새 한 점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비결은 바로 흙에 있다고 했다. 습기를 머금을 경우 단단해지는 응회석이 사람의 몸에서 습기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매장한 뒤 시신은 미이라 상태로 변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무덤의 흙에서는 시취(屍臭) 대신 은단이나 먹물 냄새가 나는 듯 했다. 아무리 투철한 신앙인들이라 해도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면 그곳에서 살아갈 수는 없었으리라. 

 그곳엔 미사를 드릴만한 공간들도 군데군데 있었다. 그것들은 그들이 그곳에서 초기 기독교의 삶을 영위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빼꼼히 뚫린 천정의 구멍을 통해 채광도 가능했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수를 감안했는지 공간도 비교적 넓었다. 

 ‘죽음을 무릅쓰는 삶은 처절하다.’ 카타콤베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실이었다. 그곳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삶 저 너머에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함께 하는’ 삶이라야 의미가 있다는 믿음이 그곳에 있었다.

 그 절박함 때문에 소름이 끼쳤다. 아,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죽음을 느끼거나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어둠 속에 우리의 피부로 전달되어오는 그들의 간절한 기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평화 속으로!’ 아니 ‘삶 속으로!’

<계속>


**사진 위는 '진실의 입', 아래는 카타콤베 입구


200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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