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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83] 여행단상 24(1) : 안타깝도다, 미켈란젤로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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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14:47 조회 90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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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깝도다, 미켈란젤로여!(1)



나는 미켈란젤로를 모른다. 그림이나 조각에 대해서도 문외한이다. 종교화에 대해서는 더더욱 젬병이다. 종교화에 관한 지식이라곤 고등학교 미술 시간과 대학의 문화사 시간에 듣고 배운 것이 거의 전부인 셈. 원래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가 불가피한 이유로 건축과 그림을 겸하게 된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런 이유로 교과서에서 접한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피에타> 만이 겨우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에서 <피에타>를 만났고, 시스틴 성당에서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를 감격스럽게 만났다. 최근 하루 이틀 사이 내게 닥친, 일종의 ‘문화적 폭풍’이었다.

 <피에타>는 생각보다 작았지만, 베드로 성당의 ‘눈’이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고사가 있다. 용의 몸체를 그리고 나서, 맨 나중에 눈동자를 찍어 넣으니 그 용이 벼락같이 소리치며 날아 올라갔다던가. 절에서 불상을 만들 때도 최종 단계에 눈동자를 붓으로 찍어 넣는 행사를 따로 갖는 모양이다.

 사물의 핵심적 요소나 그 요소를 채워 넣는 행위를 화룡점정이라 말한다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베드로 성당에 안치한 일이야말로 화룡점정임에 틀림없다. 자그마한 <피에타>가 웅장한 베드로 성당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시스틴 성당을 꽉 채운 <최후의 심판>이나 <천지창조>는 화룡점정이 아니라, 아예 성당의 몸체 그 자체였다. 

 <피에타>는 미켈란젤로 스물다섯 무렵의 작품이며, <최후의 심판>은 60대의 작품이다. 정열이 끓어 넘치는 청년기와 원숙미로 버티는 노년기에 완성한 두 작품. 종교의 한계를 벗어난 위대한 예술이라고, 시·공을 초월하여 찬양되는 두 작품들이다.

 종교예술의 최고·최대 걸작이라던가. 그래서 나같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미켈란젤로를 ‘역대 최고의 예술가’, 혹은 그에서 더 나아가 무오류(無誤謬)의 ‘완벽한 인격자’ 쯤으로 숭배하기 일쑤다.

 그러나 인간 치고 오류 없는 존재가 그 어디 있으랴. 확인해본 것은 아니지만, 미켈란젤로도 젊은 시절 한 때는 사기꾼이나 ‘건달’이었던 모양. 그에게서 천부적 예술의 재능만 뺀다면, 주변에 그다지 호감을 주는 인물은 아니었다고 한다. 예술가들의 오만이나 패기는 자신의 예술적 자부심으로부터 나오는 법. 예술가들 가운데 덕인(德人)이 흔치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 아닐까.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 등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세기적 종교예술을 이루었으면, 사후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았어야 자연스러웠겠지만, 그는 그냥 미술가이자 건축가로 남아있을 뿐이다. 최고의 종교화로 사람들의 신심을 고양시키고 종교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음에도 사람들은 그를 그냥 미술가로 기억할 뿐이다.

 모를 일이다. 그가 지금 천국에 있는지 지옥에 떨어져 있는지. 왜냐?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님의 바로 발밑에 엉거주춤 서 있는 바르톨로메오. 그가 들고 있는 사람 가죽에 미켈란젤로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바르톨로메오 성인이 잘못하여 그 가죽을 떨어뜨리면 미켈란젤로는 끝없는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 그가 잘 잡아 주어야 미켈란젤로는 어정쩡하게나마 천국의 경계선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로부터 무슨 대접을 받든 그건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이 자리에선 다른 각도로 그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해 보자. 

<계속>


**사진 위는 <최후의 심판>, 아래는 바티칸 박물관의 '성모자상'


200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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