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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96] 여행단상 24(2) : 안타깝도다, 미켈란젤로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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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14:49 조회 85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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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깝도다, 미켈란젤로여!(2)



우선 <최후의 심판>을 뜯어보자. 미켈란젤로는 왜 예수님을 저렇게 근육질의 ‘표한(慓悍)’한 청년으로 그렸을까. 가까이서 보니 흡사 한 마리의 표범 같다. 가혹한 심판의 채찍을 휘두르는 저 모습에서 어찌 ‘사랑’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최후의 심판’이라지만, 사실은 ‘무한의 심판’이어야 하고, 그 심판은 복수가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최후의 심판’이란 인간에게 부여하는 깨달음의 기회일 뿐 증오와 보복의 칼날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죄 지은 자에게 벌을 내리는’ 그런 모습으로 그렸어야 한다. 그게 예수님의 정신이고 본질이다. 오죽하면 곁에 앉으신 성모께서 고개를 돌리셨을까.

 ‘최후의 심판’은 기독교에 대한 미켈란젤로 식 해석일 뿐, 그것이 ‘무오류의 절대성’을 갖는 정전(正典)일 수는 없다. 오늘, 숨 막히는 인파에 묻혀 <천지창조>를 훔쳐보는 내 마음이 이토록 무거운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지금도 하나님과 그 독생자로 오신 예수님을 앞세워 자행되는 보복의 악순환과 부조리들을 목격하면서 시스틴 성당의 <최후의 심판>은 누군가에 의해 다시 그려져야 한다고 믿는다. 누가 있어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두드려 부수고 그 위에 예수님의 ‘무한 사랑’을 다시 그려 넣을 것인가. 


             ***


 유럽을 돌면서 무수한 <피에타>를 만났다. 그리고 마지막에 미켈란젤로의 그것을 보았다. 20대의 어머니가 30대의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 미켈란젤로는 왜 성모를 20대의 여인으로 그렸고, 성모의 표정을 그렇게 처리했을까.

 물론 20대의 화가가 갖고 있던 ‘어머니의 이미지’나 그 표현은 기존의 것들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달라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젊은 여인으로 묘사된 ‘성모’도 ‘영원한 성처녀’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일견 그럴 듯하다고 할 수 있다.

 누구로부터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초창기부터 극찬되기 시작했고, 그 기조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찬양은 종교적인 힘에 뒷받침되어 더욱 굳어졌고, 지금은 아예 일체의 잡음을 용납하지 않는 단계로까지 상승되었다. 일종의 ‘신비화’ 내지는 ‘신격화’라 할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보다 더 확고하게 ‘정전화(正典化)(Canonization)’된 종교적 해석의 예를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한 화가의 그림이 ‘예수님의 주검을 안은 성모 마리아의 표정’을 단일화 시켰고, 그것은 하나의 ‘법’으로 고정되어 이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 좀 너무 한 것 아닌가?

 나의 무딘 감식안과 미학 이론에 관한 무지를 감안한다 해도, 미켈란젤로의 ‘성모’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찬양하는 사람들은 흔히 <피에타>의 성모가 숭고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숭고’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피에타>의 성모는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는 듯, 웃는 듯, 슬픈 듯, 기쁜 듯’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 그게 어째서 숭고미를 구현하는 내용이란 말인가. 숭고는 비장과 인접해 있으면서 그로부터 승화된 미적 범주다. 비장은 자아를 버림으로써 고매한 이상의 실현에 기여함으로써 구현된다. 아무리 성모 마리아라 할지라도 아드님의 죽음 앞에서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한단 말인가.

 내 욕심으로 미켈란젤로가 <피에타>에서 구현했어야 할 덕목은 바로 ‘모정’이었다. 모정보다 더 보편적이고 순수하며 강한 감정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철학적인 폭과 깊이를 갖추기만 한다면, 인류애로도 숭고한 종교적 구원의지로도 승화될 수 있는 것이 모정이다.

 좀 더 욕심을 부려보자. 차라리 미켈란젤로는 아드님의 시신에 볼을 부비며 구슬프게 눈물을 쏟는 마리아로 그려내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그것도 앳된 20대의 어머니가 아니라 머리 희끗희끗한 40대 후반이나 50대 중반의 여인으로 말이다.

 그거야 말로 기존의 <피에타>들에 대한 미켈란젤로 식 반항일 수 있지 않을까. ‘극도로 절제된 슬픔과 자애’의 잔잔한 모정을 그려내기에 급급했던 이전의 <피에타>들. 어찌하여 미켈란젤로는 목 놓아 울어 흘러넘치는 눈물이 예수님의 얼굴에 방울방울 떨어지게 할 수 없었는가. 절절한 넋두리로 모든 이들의 가슴을 촉촉이 젖게 할 수 없었단 말인가.

 모정이야말로 <피에타>에 구현되었어야 할 최후의 정서적 보루다. 미켈란젤로가 그걸 놓친 건 당시 그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일 것이다. 천재성만으로 모정을 깨달을 수는 없다. 


             ***


 분명 미켈란젤로는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였다. 아직도 그의 필치는 시스틴 성당에 펄펄 살아 뛰고 있었다. 더구나 그 작품들의 장점만 말할 뿐 단점이나 불만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 정도로 그는 ‘무오류의 절대적 경지’에 들었던 사람일까.

 겁도 없이 그의 작품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무명의 한사(寒士) 백규. 강호의 제현들께서는 ‘범을 본 적도 없는’ 하룻강아지의 재롱쯤으로 치부하시라.  


**사진 위는 베드로 성당 안의 <피에타>, 아래는 바티칸 박물관


200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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