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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계에 이런 멋진 논쟁이 꽃 필 날은 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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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4 04:49 조회 25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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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학계는 적막하다. 이슈가 없으니 토론도 논쟁도 없다. 그저 영혼 없는 논문들만 양산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서구학자들을 배워야 한다/우리 자체의 이론을 개발해야 한다'로 나뉘어 토론하는 사회학계가 부러운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두 학자의 주장을 소개한, 경향신문 백승찬 기자의 기사 하나를 퍼온다.-백규-    



                                                             경향신문  백승찬 기자

                    

최근 일주일 간격으로 서강대 다산관을 잇달아 찾았다. 4층 연구실의 사회학과 김경만 교수(57)와 6층의 정치외교학과 강정인 교수(61)를 만나기 위해서다.


두 학자는 2007년 이 건물에서 ‘한국 사회과학의 서구의존성 누구 책임인가’라는 주제로 4시간 동안 지적 대결을 펼친 적이 있다. 이후 ‘학문적 긴장’을 유지하며 지내온 이들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다시 한번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김 교수는 신간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문학동네)에서 강정인, 한완상, 조한혜정 등 동료 학자들을 실명비판했다. 세계 학계의 보편적 흐름과 분리된 채 ‘토착’ 이론을 추구하는 이들의 활동을 ‘학문적 옹알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5일 열린 ‘서구문명 바로/삐딱하게 보기’ 학술회의를 주최해 다시 한번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했다. 두 학자의 말을 전한다.


■ 김경만 교수

“세계 학문 전통 외면하는 한국 ‘지적 고아’로 고립 못 벗어나”

“서구의 ‘개념적 자원’ 거부할 수 없어… 독자적 이론 불가능”


김경만 교수는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이 ‘미래 한국의 피에르 하버마스’를 위한 책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피에르 하버마스’란 세계 사회학계의 거두인 피에르 부르디외와 위르겐 하버마스를 합해 지은 이름으로, 한국에서도 세계적 석학이 나왔으면 한다는 뜻이다. 그는 세계적 기준에 못 미치거나, 학계 규칙을 무시한 채 ‘혼잣말’을 하는 한국 학계의 학풍을 질타한다. 때로 ‘폐기물 재생업자’와 같은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 한국에서 실명비판은 여전히 드물다.


“한국에서 다른 학자를 비판하면 인신공격이라고 하지만, 사실 더 많이 비판해야 한다. 비판하고 합리적으로 답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발달했지만, 진짜 좋은 사회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걸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다. 물론 이런 학문적 전통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세계적 학자가 없다고 생각하나.


“정치인, 관료, 기관장으로 성공한 학자는 많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학계’는 없다. 한국에서 공부해봐야 뭐하나. 사회과학계에 변변한 상 하나 없다. 그러니까 모두 텔레비전, 신문에 나가 대중지식인이 되려고만 한다. 요즘 교수들은 연예인이 다 됐다. 그러려고 미국에서 10년 동안 공부해서 박사 따온 건가. 학자의 목적은 학문의 장에서의 성취이지, 대중과의 소통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세계적 학자가 될 만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포기하고 대중지식인이 됐다. 난 그것이 학자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한국에서는 애초에 닫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 교수는 학문을 등산에 비유한다. 산악인 박영석은 이미 세계적인 등반가였으나 또다시 새로운 안나푸르나 루트를 개척하려다가 세상을 떴다.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돈,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동료 학자들의 인정’이 우선이다. 김 교수는 이를 ‘일루지오’라는 부르디외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일루지오는 ‘장(場)의 환상’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개념으로, 참여자들은 이 장에서 중요하다고 설정된 가치를 획득해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노력한다. 장 바깥의 일반인들이 관심을 못 느끼는 일일지라도 학자들은 전 생애를 건다.


-그래도 지식을 대중에게 나눠주고, 사회변화에 기여하는 일은 학자의 의무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버마스와 로티는 사회·정치 이론이 사회개혁에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두고 지난 수십년간 논쟁해왔다. 바우만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고 고백했다(바우만은 조국 폴란드의 사회개혁에 뛰어들었으나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영국으로 떠났다). 러셀은 사회개혁에 참여했지만 철학자가 아니라 상식인으로서 참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 교육학 박사가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공교육은 왜 망하고 있나. 혹자는 ‘상아탑에 안주한다’고 표현하지만, 상아탑에 있다는 건 엄청난 고통이다. 매일 쏟아져나오는 세계적인 책, 논문을 다 읽어야 한다. 마이클 샌델이 마이크 차고 대중강연을 하지만, 그는 그 이전에 세계적 연구로 큰 업적을 쌓은 학자다.”


김 교수는 학계에는 ‘거부할 수 없는 준거점’이 있다고 본다. 부르디외, 기든스, 하버마스 같은 세계적 학자들이 만들어낸 ‘이론적 자원’을 뜻한다. 이 상징공간에 진입하려면 진입비용을 내야 한다. 비용은 이들의 이론을 충실히 이해하기 위한 공부의 시간으로 갈음된다. 일각에서는 유학 등 한국의 전통 사상을 응용하거나, 한국 현실에 맞는 이론을 새로 만들자고 제안하지만 김경만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계급’ ‘불평등’ ‘이데올로기’ 등 현대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기 위한 개념은 모두 영미와 유럽의 ‘개념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대학과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나.


“연구 주제에 따라 연구비 지원 심사에 외국 교수들도 참여하도록 하고, 또 필요한 경우엔 계획서도 영어로 쓰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세계의 학문적 전통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지적 고아’나 마찬가지다.”



■ 강정인 교수

“외국과 한국의 화두 다르다면 연구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어”

“서구 학문 배우지 말자는 게 아니라 우리 것도 키우자는 것”


강정인 교수는 스포츠에 해박했다.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의 사례를 통해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류현진, 기성용이 잘하는 것,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그들이 잘해봐야 미국 프로야구, 영국 프로축구를 키워주는 거예요. 중요한 건 한국과 동아시아 리그 아닙니까.”


‘서구문명 바로/삐딱하게 보기’는 다양한 지역 학자들이 제기한 서구중심주의의 문제점을 살피는 자리였다.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인도, 동남아 등의 사례를 통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세계와 지역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 수십년간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흐름이 있었지만 아직도 이런 학술회의가 열린다는 건, 서구중심주의 극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 아닐까.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국들은 독립을 얻었으니 해방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집트 학자 사미르 아민이 1989년 <유로센트리즘>을 내면서 서구중심주의의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러시아 혁명 이후 계급은 해방됐지만 새로운 억압이 생겼고, 흑인은 시민권을 얻은 뒤에도 다른 방식의 억압을 받았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는 존재양식이 바뀌어 계속 발생한다. 정치적·경제적 지배 문제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지배 문제도 독자적 층위를 가진다.”


-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움직임은 무엇인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학자들은 대부분 좌파다. 이들은 자본주의를 타파하지 않으면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문화의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쓴다. 반면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는 자본주의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여기선 자본주의를 타파하지 않아도 문화적으로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이번 학술대회는 코끼리를 여러 사람이 만지는 격이라고 보면 된다. 여러 의견을 종합하면 코끼리를 알 수 있다.”


- 정말 유교 같은 전통 사상이 서구 의존성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서구의 초기 페미니즘은 기독교 사상을 가부장제의 원천으로 보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신학이 등장했다. 성경도 본질적으로 남녀평등을 추구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우리도 전통이 여성·계급 억압적이라 여기고 치워버리기보다는, 여성·계급 해방적 요소를 찾아서 현대적으로 새로 만들어 나가면 된다. 서구의 학문을 배우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다. 다만 우리 것도 키우자는 얘기다.”


- 한국에 세계적 학자가 없는가.


“퇴계는 ‘해동’ 유학자였고, 최치원도 당나라의 주변부 지식인이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유명한 정치학자지만, 어디까지나 ‘일본 사상가’다. 하지만 푸코를 ‘프랑스 사상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중국에선 세계적 학자가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왕후이만 해도 서구에서 자꾸 초청해 이것저것 물어본다. 중국의 국력 때문이다. 학자에게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국적을 선택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 학문의 세계적 흐름을 따라갈 필요는 없을까.


“외국 학술지에 투고하려면 그들의 유행에 맞춰야 한다. 외국과 한국의 화두가 같다면 좋겠지만, 다르다면 따로 갈 수밖에 없다. 에이즈 치료법을 개발하면 세계 의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유행성출혈열이 크게 퍼졌다면 이 병부터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명박 정부 때 정의 문제가 큰 이슈였다. 우리 같은 민주주의 신생국에서 정의는 과거사 청산 문제와 반드시 연결된다. 그러나 롤스나 샌델의 정의론을 봐도 과거사 청산 문제는 나오지 않는다.”


- 학계에서도 세대 간에 생각이 다를 것 같다.


“정부와 학교가 영어 논문을 강조하면서 인문·사회과학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 학과나 학회에 나오기보다는 해외 학술지에 투고하는 데 바쁘다. 국내에 있으면서도 두뇌가 유출된다.”


201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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