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강마을에서 책읽기 - 예술이란 고통을 버티어 내는 것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자유게시판

[re] 강마을에서 책읽기 - 예술이란 고통을 버티어 내는 것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4 05:03 조회 349회 댓글 0건

본문

여름 한 복판에서 좋은 책을 읽은 것 같군. 자네의 소개를 들으니, 나도 한 번 읽고 싶어지네. '예술과 고통'. 흔히 평범한 인간들의 대열에서 소외를 겪을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 그들의 창조 행위야말로 소외와 '왕따'의 고통 위에서 이루질 수밖에 없으리라 보네. 혹여 남들로부터 배척당할까 두려워 그들의 '걸음걸이'를 열심히 모방하는, 나 같은 필부들이야 예술가들의 고통을 알 리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 '죽었다 깨어나도'  내 손에서 예술이 나올 리 없지.^^

자네의 글로부터 좋은 깨달음을 얻었네.

앞으로도 계속 다독, 건필하시게.


백규



>단오(端午)를 지나니 벽오동(碧梧桐) 나무의 잎이 커다랗게 피어나서 그늘을 드리웁니다. 벽오동은 늦게 새잎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온갖 꽃들이 다투어 그 화사함을 겨루는 4월에도 이름처럼 푸른 나무줄기와 보입니다. 그 시절을 지나면 겨우 적갈색의 순을 나무 끝에 매달고 있어서 제 눈에는 여러 시인들이 사랑한 나무지만 늦잠꾸러기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잎을 피우고 나면 몇 주에 금세 주위를 압도하는 커다란 잎으로 시원하게 자신을 드러냅니다. 수업을 위해 교실로 가는 복도를 걸을 때면 늘 뒷마당의 벽오동을 바라봅니다. 푸른 잎과 푸른 줄기에 눈을 맞추고 가끔은 미소도 보내고요.

>

>몇 년 전 군노인회에서 주관한 예절교육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였습니다. 강사로 오신 분들은 유림(儒林)의 어른입니다. 대부분 한학에 밝은 향교의 어르신들이지요. 사서삼경(四書三經)의 내용 중 예절에 관한 부분을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상문화에 젖은 아이들의 반응은 그렇게 열광적이지 못하고 졸면서 듣더군요. 참 민망스러웠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한 어르신을 배웅하는데 뒷마당의 벽오동을 보시고 시조 한 수 읊으셨습니다.

>

>벽오동 심을 뜻은 봉황을 보려터니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 일편명월(一片明月)만 빈 가지에 걸렸에라

>

>저도 함께 서서 벽오동 푸른 잎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하얀 한복자락을 휘날리며 그리움과 아쉬움 남은 눈빛을 벽오동 나무에 내려놓고 떠난 어르신의 모습이 벽오동나무를 볼 때면 겹쳐집니다.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저 역시 남은 삶이 살아온 삶보다 많지 않은 나이이기에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

>부산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문학비평가로 활동하는 벗이 책 한 권을 보내왔습니다. <고통과 예술>이라는 책을 펼치니 낡고 헤진 구두 한 켤레가 화폭 가득 그려진 고흐의 그림이 눈에 띕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궁핍과 질곡의 삶을 살았던 고흐의 그림을 들여다보는 여러 철학자의 견해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작가는 마크 로스코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전시된 일이 있는 화가로 그 강렬한 색채 앞에서 사람들은 무상해제 당하게 된다. 저 역시 그의 그림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색면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뭉크 직품의 경우는 작가 스스로의 일기에 “나의 예술을 통해 살과 그것의 의미를 스스로 해명하려 시도해 왔다. 동시에 나는 다른 이들이 자신의 삶을 대결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혼의 회화, 치유의 회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소 어려운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예술가들의 작품과 삶의 관계를 읽으며, 제 삶과 견주어 보았습니다. 나에게 과연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원초적인 물음을 던지며 고통은 나를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 삶에 어렵고 힘든 시기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견디기 위해 글을 써야 했기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귀한 시기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라면 저는 단연코 사양합니다. ^^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뭉크, 로스코와 고흐의 그림은 그들이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고 만들어낸 예술의 핏빛 훈장입니다. 예술이란 고통을 버티어 내는 것이 아닐까요.

>

>벽오동 푸른 잎은 시원한 그늘을 드리웁니다. 이른 더위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들이닥쳤습니다. 건강한 첫여름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

>『고통과 예술』, 배철영 지음, 신아사, 2017

>


2017-07-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白圭書屋:::
대표자 : 조규익 | Tel : 010-4320-8442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 E-mail : kicho@ssu.ac.kr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