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43] 폴란드 제1신(2) : 대체 무엇 때문이었는가? 잠들지 않는 아우슈비츠의 광기(狂氣)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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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5:30 조회 1,783회 댓글 0건본문
폴란드 제1신(2) : 대체 무엇 때문이었는가? 잠들지 않
는 아우슈비츠의 광기(狂氣)여!(2)
아우슈비츠Auschwitz. 원래 폴란드의 오슈비앵침Oswiecim이란 곳. ‘s’자의 머리에 삐침 표시가, ‘e’자 밑에 꼬리가 달려 있어서 우리말로 ‘오슈비앵침’이 된다고. 그러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이곳을 점령한 히틀러의 제3제국이 이곳 수용소의 이름을 아우슈비츠로 붙였다. 지금 우린 아우슈비츠라 하나 이곳 사람들은 오슈비앵침이라 해야 알아듣는 모양이다.
우리는 폴란드의 제1코스로 아우슈비츠를 택했다. 아우슈비츠를 중심으로 카테오비치와 크라코프가 가깝기도 했지만, 생생하게 남아있는 ‘인간의 야수성’, 그 현장을 먼저 보아 넘기고 싶다는 본능이 작용한 결과다. 폴란드에 오면서 아우슈비츠를 건너 뛸 순 없는 일. 그러나 그곳이 썩 마음에 내키는 곳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제의 만행과 함께 배워왔던 아우슈비츠의 끔찍한 장면들. 바로 그 현장엔 가는 것이다. 왜 있지 않은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한때는 동구 공산권의 핵심으로서 우리와 적대적이었던 폴란드. 그러나 교황을 배출할 만큼 가톨릭의 뿌리가 깊은 나라였다. 그러니 옛 문화나 전통 또한 오죽이나 화려하고 깊을 것인가. 그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젖어보고 싶었던 게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어찌 아우슈비츠를 건너 뛸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매를 먼저 맞는 심정으로 아우슈비츠를 제 1코스로 선택한 것이다. 현명했는지, 미련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우슈비치츠가 가까워지자 아내는 기분이 이상하고 구역질이 난다고 호소했다. 너무 예민하게 생각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내 기분도 이상했다. 말은 안 했으나 그 즈음 분명 불타는 인간 육신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아우슈비츠 가는 길. 산 넘고 물 건너가는 그 길은 아름다웠다. 비록 우중충한 날씨였으나 초록의 드넓은 들판도 있었고, 길 가엔 늘씬한 미루나무들도 줄지어 서 있었다. 길은 좁았으나 시골길 치고 괜찮은 편.
드디어 도착한 우리. ‘국립 오시비앵침 뮤지엄’이란 간판. 뮤지엄이라니?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나? 분명히 우린 뮤지엄 같은 고상한 문화지대를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히틀러, 독일민족, 아니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엄존(儼存)하는 인간의 야수성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기 위해, 전장(戰場)을 찾은 것이지 고상한 뮤지엄을 찾아온 것이 분명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 앞엔 ‘뮤지엄’이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입구에서 얼핏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표지를 본 일. 유네스코가 지정한 것은 세계의 ‘문화유산’이나 ‘자연유산’밖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던 우리의 무식함이 발동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세계문화유산’이란 말인가. 하기야 폭력도 넓은 의미의 문화에 속한다고 강변한다면 하는 수 없다. 그러나 아우슈비츠에 문화라는 고상한 말을 붙여야 속이 시원하단 말인가.
우리는 좀더 표지에 다가서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다행히 ‘문화’란 말은 빠져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유네스코 녀석들’도 차마 ‘문화’란 말은 붙이질 못했겠지. 물색도 모르면서 겨우 안심한 우리. 점심시간이라서인지 텅 빈 인포센터.
그래서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24쪽 짜리 한국어 안내서(ꡔ국립 오시비엥침 박물관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안내서ꡕ, 박성준 역)를 권했다. 그 안내서와 함께 헨릭 슈비보키Henryk Swiebocke가 아우슈비츠 탈출자들의 증언을 편집한 책(London Has Been Informed...)도 샀다.
한국인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가게 주인은 우리에게 친근감을 표시했다. 오늘도 벌써 두 그룹이나 다녀갔다는 것이다. 우리도 ‘동유럽 5개국 여행’이란 한국어 팻말을 단 대형 관광버스를 주차장에서 보고 온 터였다. 왜 한국인들이 이곳을 많이 찾을까. 잠시 생각했다. 같은 시기 일본에게 당한 우리로선 당연한 일일 것이다. ‘죽음의 공장’에서 6백만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곳 아우슈비츠에서만 150만 이상)은 아니지만, 유태인들이 당한 고통을 우리도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계속>
**사진 위는 폴란드 아우슈비츠Auschiwitz 수용소 입구에 붙은 문구-Arbeit Macht Frei-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는 뜻일까, 아래는 폴란드 아우슈비츠Auschiwitz의 가스실(Gas Chamber)
200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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