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48] 폴란드 제3신 : 폴란드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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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6:42 조회 1,737회 댓글 0건본문
폴란드 제3신 : 폴란드를 떠나며
11월 19일 오후 2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향해 크라쿠프를 출발. 그러나 크라쿠프로부터 65km 떨어진 라비키에서 부득이 1박을 추가, 5박 6일이 되었다. 뜻하지 않은 폭설로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라비키는 산악지대 자코펜Zakopane 인근에 있는 고산지대. 평지에서는 산발적으로 날리던 눈가루가 이곳에 이르자 본격적인 눈송이로 변했다.
날은 빠르게 어두워지고 앞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숙소를 찾으려는 순간, 멋진 모텔(Motel Na Zbojeckij) 하나가 퍼붓듯 내리는 눈송이 사이로 ‘동화처럼’ 나타났다. 방은 넓고 깨끗하며 조용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눈보라 속에 잠든 소나무 숲.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전망이 기가 막혔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달빛 물든 눈길을 걸었다. 다시 방에 들어와 쉬다가 인터넷 케이블을 발견, ‘인터넷 갈증’도 풀 수 있었다. 폭설 덕분에 예상치 못한 폴란드의 참맛을 보게 된 것. 폴란드에 이토록 아름다운 산간마을이 있다는 것도, 이토록 인터넷 사정이 좋다는 것도 미처 알지 못하던 우리였다.
체코도 인터넷 강국이었다. 폴란드도 그에 못지않았다. 우리의 느낌으로는 두 나라 모두 인터넷 망이 잘 구축되어 있었다. 서 유럽의 나라들보다 동유럽의 이들 나라에서 훨씬 수월하게 인터넷을 활용한 우리에게 그 현상은 두 나라의 미래지향적 의지를 나타내는 표지로 이해되었고, 어쩌면 그것은 동유럽 국가들에 모두 해당될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우리가 폴란드에 머문 것은 겨우 5박 6일. 그것도 남부지역 일부만 자동차로 빙 돌아 나온 수준이었다. 그런 처지에 폴란드를 평가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일일까. 폴란드에 대한 극히 개인적 인상만 서술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첫째, 우리가 만난 체코나 폴란드 사람들의 성격은 활발하고 친절했다. 그 중에서 폴란드 사람들은 체코인들보다 붙임성이 더 좋았다. 우리가 폴란드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했을 정도로. 한때 동유럽 공산주의의 핵심이었던 나라, 우리와 적대적이었던 나라, 사회주의 계획 경제로 국민들의 삶이 침체된 나라 등등. 그러나 그 가운데 들어맞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분적으로 사회주의가 남겨준 남루(襤褸)의 흔적이 남아있긴 했으나, 그것 역시 조만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가능성을 사람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오전 10시나 11시가 되어서야 가게 문을 열고, 긴 점심시간을 즐긴 뒤 오후 2시쯤 다시 열었다가 5시나 6시에 득달같이 문을 닫아거는 서유럽 국가들. 휴일엔 아예 철시해버리는 서유럽국가들에 비해 이들 나라에서는 밤늦게까지, 휴일에도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밤늦도록 거리에 사람들로 북적댈 만큼 도시가 살아 있었다. 그 덕에 우리는 편안했고, 이들 나라의 미래를 밝게 볼 수 있었다.
둘째, 이념 지향적이라고 믿었던 우리의 편견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공산주의 이념의 허구성을 깨달은 듯 했다. 그 시절을 악몽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현상은 아직도 독실한 신앙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 길 가는 도중 교회나 성당에 들러 기도하고 가던 길을 다시 가는 모습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어느 교회나 성당에 들어가도 그곳엔 묵상을 하고 있는 상당수 폴란드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과연 교황을 배출할만한 국민적 신앙의 바탕이었다.
셋째, 정확성을 추구하는 사고가 보편화 되어 있다는 점. 물건을 사고 실수로 돈을 더 내도 반드시 돌려주는 신실함. 지나다가 길을 물으면 남녀노소 구분 없이 반드시 거리가 몇 km인지를 알려주는 정확함. 우리가 요행히 그런 사람들만 만난 것은 아니리라. 그런 사고의 정확성이 사람들 사이에 일반화 되어있다는 점은 이들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자산일 것이다.
***
폴란드도 고난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그 가운데 불과 반세기 전 히틀러로부터 받은 고난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아우슈비츠. 유대인들이 최대의 피해자이지만, 사실은 폴란드도 그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애당초 나치가 자신들이 점령한 폴란드 땅에 폴란드의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로 만들었다가 유대인을 주 대상으로 하는 인종 청소의 ‘쓰레기장’으로 전용한 아우슈비츠. 사실 폴란드로서는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가. 폴란드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도 폴란드 국민이었다. 무자비한 점령자 나치의 제3제국. 그들이 종족은 다를지언정 엄연한 폴란드 국민을 폴란드 땅에서 잡아다 죽일 때 폴란드인들이 느꼈을 부끄러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에겐 그런 폴란드의 문화와 사상적 깊이를 제대로 맛볼 여유가 없었다. 단 며칠간의 체류를 통해 폴란드를 살짝 훔쳐본 우리는 다음 행선지 헝가리로 떠나며 앞에서 인용한 선현의 어구를 다시 제시한다.
“한 솥의 국을 전부 마셔 보아야 그 솥의 국 맛을 아는가?”
<계속>
**사진 위는 폴란드 크라쿠프 마켓스퀘어의 어느 까페 바깥에 세워둔 멋진 조각, 아래는 크라쿠프에서 슬로바키아로 가는 E77을 타고 가다가 눈에 막혀 들어온 모텔의 주차장에서 짐을 내리는 모습
200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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