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52] 여행단상(12) : 유럽의 무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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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4 14:23 조회 1,791회 댓글 0건본문
유럽의 무덤들
어릴 적 명절 때마다 어른들을 따라 나서던 성묫길.
‘따라 나섰다’는 말은 사실 잘못된 말이고, ‘어겨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녔다’ 는 표현이 맞다. 1년에 한두 번, 명절이나 되어야 새 옷을 얻어 입던 시절. 추석날 아침 높은 산등성이를 넘어 성묘라도 갈라치면 무성한 풀 섶의 이슬에 옷이 폭 젖는다. 설날 아침도 마찬가지. 눈길에 미끄러지며 이 산 저 산 여러 대(代) 할아버지·할머니들의 묘소를 찾아다니다 보면 역시 눈에 젖고 얼어 ‘스타일’은 구길 대로 구겨지고 만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성스러운 의식’을 행하듯 말없이 산길을 걸어가시는 어른들의 눈치로부터 영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런 갈등 속에 품었던 한 가지 의문이 있었고, 그 의문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풀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의문인즉 ‘왜 사람은 죽어서 산 속 외딴 곳에 묻혀야 하는가?’ 였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를 근처에 만들면 늘 함께 모시고 사는 것 같고 명절 날 성묘 가기에도 좀 좋을까?’ 어린 내 생각이었다. 사실은 명절 날 깊은 산속으로 성묘 가기 싫은 마음으로부터 생긴 의문이지만, 지금껏 그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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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인가, 나는 학생들과 함께 베트남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다. 메콩 델타 지역의 원주민들이 사는 오지였다. 그곳 마을들을 둘러보면서 깜짝 놀란 사실이 하나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집안의 뜰이나 바깥마당에 묘소를 가지고 있었던 것. 그리고 날마다 그 앞에 향을 피우는지 향로에는 늘 타다만 향들이 꽂혀 있었고, 향내 또한 그윽했다.
동네에 나가 보았다. 논과 논 사이의 공터에 묘소들이 조성된 경우도 있었고, 공동묘지는 마을 한 복판에도 잘 꾸며져 있었다. ‘이들이야말로 진짜로 정성스럽게 조상들을 공경하는구나!’라고 감탄을 하게 되었다. 비록 지금은 메콩강 유역에서 가난하고 게으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조만간 그들의 조상님들이 복을 내려 주실 것이라는 믿음까지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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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을 시작한 이래 10여개의 나라들을 거치고 있다. 그들 사이에 같고 다른 점들이야 많을 것이다. 같은 점들 가운데 하나만 꼽으라면, 묘지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어쩌면 그리도 나라와 종족을 초월하여 같으냐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시골에 가면 마을 한 복판의 ‘햇볕 잘 드는 곳’에 묘지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대부분 온갖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우리가 무덤에 대하여 갖는 ‘쓸쓸함’이나 ‘무서움’을 그곳들에선 느껴볼 수 없었다. 대신 ‘아름다운 공원’ 혹은 ‘쉼터’의 편안함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아하, 바로 이거로구나! 나는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이쪽 사람들은 사람의 죽음을 ‘이승과의 절리(切離)’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 분들은 가족·친지·이웃들과 고락을 함께 하다가 마을 한 복판에 마련해놓은 ‘쉼터’로 쉬러 간 것이었다. 우리가 그냥 ‘마실 가듯이’.
물론 세월이 흘렀으니 이쪽 동네라고 그들의 전통을 마냥 고수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돌아본 대부분의 마을들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된 공동묘지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뿐 아니다. 교회나 성당에도 묘지가 있다. 옛 왕족들의 무덤을 교회 안에 조성한 경우는 많다. 말하자면 왕이나 왕실의 뜻으로 교회를 세울 경우 그것은 그 왕족의 영생을 기원하는 발원처가 된다. 그래서 죽어서도 시신을 그곳에 보관하게 되는 것이다. 유럽 지역 어디에서나 성당이나 교회에 조성한 왕족의 무덤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빈의 슈테판 대성당 지하에는 왕족 뿐 아니라 그 옛날 페스트로 희생된 이름모를 수천 구의 해골들이 보관되어 있는 것을 목격한 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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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의 죽음을 ‘꺼린다’. ‘호생오사(好生惡死-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함)’하는 본능이야 모든 생물들에게 공통될 것이나, 태어난 이상 ‘한 번 죽음’을 어이 피할 수 있으리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철저하게 죽음을 ‘기(忌)’해왔다. 삶이 아무리 고달파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다는 믿음. 아무데서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가. 죽은 사람의 묘소는 가능하면 산 속 깊은 곳에 쓰려고 한다. 좋은 ‘풍수(風水)’를 명목으로.
그러나 생각해보자. 산 속 깊은 곳에 묻힌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얼마나 외롭고 무서우실까. 어쩌면 그 할머니는 밤에 혼자서는 변소 출입도 못하던 분일 수 있다. 동네 강아지만 보아도 겁을 잡숫던 분일 수 있다. 그래 그런 분을 심심산골에 혼자 묻어 놓으면 어쩌자는 것일까.^^ 늑대, 오소리, 살쾡이 등 온갖 잡 동물들이 출몰하는 그 계곡에 ‘홀로 덩그러니’ 놓이게 된 그 분은 얼마나 한심하실까. 그러면서도 우리는 입만 열면 ‘효자효부’를 논한다. 깊은 산속에 부모의 시신을 묻어놓고는 ‘좋은 곳’에 묘를 썼노라 ‘효자효부’를 자칭한다. 풍수 좋은 곳에 조상을 묻었으니 자손들에게 좋을 것이고, 보기 싫은 ‘죽음’을 멀리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一擧兩得)’이란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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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내가 목격하고 있는 이쪽 동네들의 무덤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베트남의 그 마을 사람들은 또 얼마나 인간적인가. 돌아가신 분들과 대화하면서 살아가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효자효부들’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는 길 가면서 동네 한 복판의 공동묘지를 보았다. 슬로바키아로 넘어가기 직전의 폴란드 국경마을에서. 그 무덤들은 갖가지 모양의 비석들과 비문, 그리고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양지바른 곳에서 도란도란 나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씀을 우리 또한 한동안 엿듣다가 길을 떠난 건 물론이다.
2005. 11. 20. 밤. 슬로바키아 즈볼렌의 숙소에서
<계속>
**사진 위는 스위스 라우텐브루넨Lautenbrunen 마을의 한 복판에 있는 공동묘지, 아래는 폴란드의 라비키에서 슬로바키아로 오는 도중 만난 국경 마을의 공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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