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54] 헝가리 제1신(2) : 살아 움직이는 역사와 문화의 큰 바다, 부다페스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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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4 14:25 조회 1,737회 댓글 0건본문
헝가리 제1신(2) : 살아 움직이는 역사와 문화의 큰 바
다, 부다페스트(2)
경제적인 면에서 동유럽의 선두 주자 헝가리. 그러나 이 나라의 역시 만만치 않은 과거를 지니고 있다.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 가운데 4백년은 외세의 침탈 아래 신음하던 ‘굴종’의 기간.
1541년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남부가 점령되었고. 그 결과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가 지배하던 북부, 오스만제국의 보호령인 동부, 헝가리 왕국의 통치 구역인 서부로 나누어졌다. 1세기 이상이나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를 물리친 오스트리아는 이후 헝가리를 지배했고, 그에 대항하는 독립운동 또한 끈질기게 이어졌다.
19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은 1918년 1차대전의 전후처리 과정에서 해체. 베르사이유 조약의 뒷받침을 받아 헝가리는 비로소 독립의 꿈을 이룬다. 1526년 오스만 투르크 군과 싸우다가 모하치에서 죽은 러요시 2세 이후 이어진 외세의 지배를 비로소 벗어난 것.
그러나 트리아농 조약으로 영토의 상당부분을 잃었고, 그 여파로 나치 독일과 손잡게 된 헝가리. 그 당연한 결과로 2차 세계대전에 휘말렸고, 결국 자신의 영토를 소련군과 독일군의 싸움터로 내주게 되었다. 싸움이 끝난 다음 소련 지배로 들어가 원치 않는 공산국가로 변신한 헝가리. 공산 독재에 대한 투쟁의 극치는 1956년의 헝가리 의거. 비록 실패로 돌아갔으나 내면적으로는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불꽃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 페레스트로이카를 발판으로 헝가리의 민족주의는 다시 점화되었다.
오스트리아와의 철조망을 제거함으로써 헝가리를 경유, 대거 서독 행에 나선 동독의 탈주민들. 결국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그 결과 1989년 10월 완전히 독립한 헝가리 공화국이 탄생했다.
헝가리 영욕의 역사 천년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부다페스트. 어딜 가나 그 역사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오스만 투르크가 점령하면서 아름다운 부다Buda 지구의 마차시교회가 회교사원으로 쓰였으며, 아름다운 부다의 왕궁이 몽골군 침략의 여파로 생겨났다거나, 치터델러의 남단에 야자 잎을 들고 멋진 포즈로 먼 곳을 바라보는 자유의 여신도 원래는 소련군 전몰장병 위령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라는 등.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늘 있기 마련인 ‘신진대사 작용’의 결과들을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그것이 대사 작용으로 남겨진 노폐물이든 생산적 기념물이든 모두 과거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집단처럼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우매하고도 가증스런 명분을 내세워 역사의 증거물들을 때려 부수지 않는 이들.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광자원으로까지 활용하는 이곳 지도층의 혜안이야말로 뛰어나지 않은가.
<계속>
**사진 위는 바실리카 성 스테판 성당Szent Istvan Bazilika, St. Stephen's Basilica 내부, 아래는 마차시교회 내부 뮤지엄에 전시된 헝가리 왕관(복제품)
200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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