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폴란드 제2신(3) : 찬란한 문화와 역사, 그리고 홀로코스트Holocaust - 크라쿠프Cracow의 두 얼굴(3) > 여행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여행기

유럽여행기 [147] 폴란드 제2신(3) : 찬란한 문화와 역사, 그리고 홀로코스트Holocaust - 크라쿠프Cracow의 두 얼굴(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6:41 조회 1,616회 댓글 0건

본문

폴란드 제2신(3) : 찬란한 문화와 역사, 그리고 홀로코

                       스트Holocaust - 크라쿠프Cracow의 

                       두 얼굴(3)

 



 바로 전날 우리는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의 수용소를 다녀왔다. 그들 지역으로부터 멀지 않은 이곳 크라쿠프에 유대인 집단 거주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눈물을 훔쳐내며 본 감동의 명화 ‘쉰들러 리스트’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라는 사실은 아우슈비츠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을 대신해 죽어간 막시밀리안 콜베Maksimilian Kolbe 신부가 이 지역 사람임을 처음으로 알았고, 그 분이 재직했던 성당(성 프란치스카 교회)에 가서 본당 안에 모셔진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유대인 출신의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그가 세계에 알린 인물 오스카 쉰들러Oska Shindler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시나고그Synagogue로 불리는 유대인 교회들을 볼 수 있었다. 올드 시나고그The Old Synagogue, 레무 시나고그The Remuh Synagogue, 템펠 시나고그The Tempel Synagogue 등. 그 가운데 우린 올드 시나고그를 찾았다. 몹시 음산하고 낙후된 유대인 거리에 있었다. 대단히 폐쇄적으로 살아가는 유대인들의 꿈과 고통을 그 거리에서 읽을 수 있었다.

 전쟁 전 225,000명이던 이 지역의 유대인들. 전후엔 단 15,000명만이 살아남았다고. 모두 히틀러에게 학살된 것이다. 이 지역에서, 그리고 이웃 지역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등에서. 그 15,000명도 폴란드인들이 숨겨준 덕분에 근근이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그 와중에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쉰들러. 그는 독일 사업가였다. 그가 구해낸 유태인이 대략 7백명. 사망자의 전체 수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그의 행동이 갖는 의미가 단순치 않은 것이다. 그가 유대인 수용자들을 노동자로 써주고 탈출을 도와준 공장이 바로 크라쿠프에 있었다.

 스필버그는 그 공장과 유태인 거주 지역에서 이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유대인 거주지역의 중심 체로카 스트릿Szeroka Street. 그 거리에서 우리는 그곳에서 살다 숨져간 유대인들과 오스카 쉰들러, 그리고 스필버그를 생각했다. 쉰들러의 진심이나 동기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사람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진심이나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었든, 잔인한 ‘인종청소’의 광풍 속에서 7백 명의 목숨을 구한 것은 엄연한 사실. 어떤 가정도 가능하겠지만,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유대인 스필버그. 그는 왜 쉰들러를 세계인들 앞에 노출시키려 했을까. 그게 어쩌면 화해의 손짓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의 입장에서야 독일인들을 어찌 용서할 수 있으리? 그럼에도 그는 그런 독일인도 있었음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쉰들러를 통해 독일인들의 가슴에 더 큰 꾸짖음과 아픔을 가하고자 한 것이 스필버그의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무슨 추리를 동원하든 그건 자유다. 그러나 그 영화의 외연적 메시지는 ‘독일인 쉰들러가 유대인 수백 명을 구했다’는 사실이다. 구출 받은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에게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쉰들러 자신도 예루살렘의 성당에 묻혔다. 이처럼 독일인인 그가 유대인들로부터 ‘은인’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현실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음울한 동네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보았다. 그들이 불과 반세기 전의 일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역사에는 분명한 승자와 패자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도 유대인들은 시나고그에 모여 자신들만의 진정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 메시아가 나타나서 심판해줄 날만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심판의 날에 비로소 그들은 가해자들을 응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아닐까. 그렇다면 그거야 말로 피비린 내 나는 역사의 악순환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게 아닌가. 매우 두려운 일이다.


<계속>



**사진 위는 폴란드 크라쿠프 유태인 거리의 갤러리 입구의 재미있는 조형물, 아래는 유태인 거리에서 방문한 시나고그-The Old Synagogue내부


2005-11-1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白圭書屋:::
대표자 : 조규익 | Tel : 010-4320-8442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 E-mail : kicho@ssu.ac.kr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