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체코 제5신(2) : 폐광 위에 꽃 핀 세계문화유산-쿠트나호라KutnaHora의 은광과 바르보라 성당Chram sv. Barbory/St. Barbara Cathedral >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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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124] 체코 제5신(2) : 폐광 위에 꽃 핀 세계문화유산-쿠트나호라KutnaHora의 은광과 바르보라 성당Chram 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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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4:47 조회 1,56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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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 제5신(2) : 폐광 위에 꽃 핀 세계문화유산-쿠트나

                     호라KutnaHora의 은광과 바르보라 성

                     당Chram sv. Barbory/St. Barbara 

                     Cathedral



 쿠트나호라의 중심은 예수회Jesuit 소속의 바르보라 성당. 이 성당의 건립은 이 지역 경제의 기반인 은 광산과 직결된다. 그러나 성사가 쉽진 않았다. 쿠트나호라 광산주들과 인근 세들렉 수도원Sedlec monastery 간의 수 세기에 걸친 종교적 주도권 다툼 때문이었다.

 수도원으로서는 자신들의 권위가 미치는 영역 밖에 큰 성당을 세우는 일을 허용할 수가 없었던 것. 그러나 광산주들의 지원 아래 상당 정도 건축된 성당은 결국 그들의 수호 성녀 바르보라Virgin Saint Barbora에게 봉헌되었다고 한다.

 구조는 프라하 성의 성 비투스 성당과 맞먹게 하려고 계획되었다. 여러 단계에 걸쳐 따로따로 진척되었으며 광산의 경기에 크게 의존한 성당의 건립. 뿐만 아니라 여러 사건들의 영향도 받았고, 때에 따라서는 지체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시작부터 완성까지 5백년 이상이나 걸려 1905년에서야 완성된 것이다.

 이 도시에 들어오기 전, 멀리에서도 보이는 이 첨탑들의 모습이나 분위기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우리의 발길이 우선 그곳으로 향한 것은 당연했다. 숙소로부터 예수회 대학 옆길을 따라 2km쯤 걸어간 곳에 바르보라 성당이 있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숙연한 모습의 성당을 보며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옛날엔 영화를 누렸다지만, 음산하기까지 한 시골의 이 작은 도시에 ‘어쩌자고’ 이토록 멋진 성당을 세웠단 말인가.

 빠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시작으로 우리는 유럽의 크고 멋진 성당들을 두루 거쳐 왔다. ‘이곳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크고 멋진 성당이려니’ 생각하며 다음 도시에 가면 더 크고 멋진 성당이 그곳에 있었다. 그 다음도, 또 그 다음도 마찬가지였다. 흡사 규모와 화려함의 경쟁에라도 나선 듯. 우리가 만나는 도시나 성당이 그 때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요, 성당이었다. 그 이전의 것들은 기억에서 사라지는가. 그래서 그런 현상을 우리는 컴퓨터 문서작성의 ‘덮어쓰기’로 규정하게 된 것이다.

 ‘같고 다름’이야 분명하겠지만, 유럽에서 만나는 모든 성당이나 교회들은 모두가 휘황찬란하여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우리 인식의 그런 한계를 인정한다 해도, 지금 만난 바르보라 성당은 대단한 위용과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전에 보았던 프라하의 성 비투스 성당보다 그런 점에서 한 수 위라고 생각했다. 보헤미아 고딕양식의 정수(精髓)가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더 놀랍고 반가운 사실 하나. 입구의 매표소에 들어가 가이드북을 요청하자, 매표원은 우리의 국적을 물었다. ‘코리아’라 하니 선뜻 한국어 가이드를 꺼내 주는 것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대도시에서도 보지 못하던 우리 말 설명서가 참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미에 적혀있는 제공자 ‘나눔터’(www.nanumto.net/nanumto@nanumto.net)를 우리는 모르고 있었지만,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그 한글 가이드를 들고 우리는 성당의 구석구석을 공부했다. 그 가이드에서 성당 건축의 역사와 관련한 몇 가지를 간추려 참고로 제시한다.


 “1388년 시작된 이 공사의 감독은 얀 빨레즈. 교회 건축의 방식은 측면 회랑에 채플이 있는 카테드랄(프랑스 성당) 식. 원래 카테드랄은 중앙 본당과 두 개의 소성당 등 세 개의 본당이 있어야 하지만, 두 개가 추가되어 다섯 개로 늘었음. 1420년 후스 전쟁 때 일시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60년 후 마띠야쉬 레이섹(프라하 화약탑 건축가)이 건축을 맡아 1499년 본당의 둥근 천장을 완성(높이 33m). 1521-1532 베네딕트 레이트(프라하성 블라디슬라브 홀 건축가)가 교회 하층 회랑 위에 완전 독립형으로 된 세 개의 소성당(높이 30m, 길이 70m, 폭 40m)을 건축. 1558년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서쪽이 세워지고 건축은 미완성인 채로 중단. 이 지역의 가장 큰 오셀 광산에 홍수가 나고 은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경제원조도 서서히 줄어들었음. 17·18세기 고딕의 쿠트나호라가 바로크 도시로 바뀔 무렵 바르보라 성당도 그 영향을 받았음. 건축양식의 변화는 18세기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의 케이스에서 엿볼 수 있음. 오르간 자체는 새것이고 7백 개의 파이프, 세 개의 건반과 52개의 조절기가 달려 있음. 오늘날 교회의 정면은 1884년에서 1905년까지의 재건축 기간 중에 완성되었음. 이 시기에 중앙 제단이 신 고딕양식으로 만들어졌음. 성녀 바르보라(광산의 수호성녀)를 제단 오른쪽에서 볼 수 있음. 그녀는 책과 탑을 들고 있음.”  


 이 성당의 특징은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프레스코 벽화. 예수를 어깨에 메고 물을 건너는 성 크리스토퍼의 그림, 쿠트나호라의 귀족 가족의 그림 등 15세기 말 후기 고딕 프레스코화의 화려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이 지역 경제의 중심인 은 광산 노동자들의 모습과 동전 주조자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들이었다. 광부의 채플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그것. 동전을 주조하는 모습, 하얀 작업복을 입고 한 손에는 등불을 다른 손에는 도구를 든 광부들의 모습. 이들은 일주일에 6일, 하루에 10-14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우리는 넓고 높은 성당 안에서 이 지역 사람들과 광부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호 성녀 바르보라에게 이 성당을 봉헌하면서 얼마나 큰 정신적 안식을 얻었을까. 500m 깊이의 지하 막장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두더지 같이 생활하면서 늘 성녀 바르보라를 생각하고 그들의 신을 떠올렸으리라. 그것은 죽음의 세계보다도 더 무서운 칠흑의 갱도 안에서 빛을 찾은 일이었다. 광주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거금을 투자하여 이렇게 멋진 성당을 세운 게 아니었을까. 


<계속>


**사진 위는 체코 쿠트나호라의 바르보라성당Chram sv. Barbory 안 벽에 그려진 1463년 이후의 프레스코화(광산 노동자), 아래는 은광산 박물관Ceske Muzeum Stribra-Hradek의 은 파는 작업 그림


200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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