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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149] 슬로바키아 제1신(1) : 길 가다가 주운 보석-오라바 성The Castle of Orav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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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6:44 조회 1,91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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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제1신(1) : 길 가다가 주운 보석-오라바 성

                              The Castle of Orava(1)




 11월 20일 오전 11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향해 폴란드 라비키의 숙소를 출발. 부다페스트로 가려면 슬로바키아Slovenska Republika를 종단할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우리의 계획에 슬로바키아는 들어있지 않았다. 다만 통과지역일 뿐.

 E77 도로를 타고 달리면서 눈 덮인 폴란드 국경지방의 풍광을 찍는 데 정신이 팔려 오후 12시 23분에야 국경 검문소에 도착. 그들은 여권을 확인하고 자동차 서류까지 조사했다. 동양인 남녀가 프랑스 번호판을 단 자동차로 국경을 통과하겠다니 의심할 만 했을 것이다. 진흙탕 길을 달려와 엉망인 자동차. 그 트렁크에 빼곡히 들어찬 짐들. 그 속에서 서류를 뒤적뒤적 찾아내는 고역을 감수하고 나서야 우리는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아직도 사회주의의 잔재가 남아서 저토록 경직되어 있다고 투덜대면서도, 우리의 눈길은 창밖에 펼쳐지는 광활한 평원과 나지막한 산들에 꽂혀 있었다. 평원 너머 하늘엔 뭉게구름이 그득하고 그 위로 파란 하늘. 늘 구름에 가려 음산하기만 했던 북쪽을 벗어난 것이 분명했다. 작은 목조 주택들이 빽빽이 들어찬 산 중턱. 땟국 졸졸 흐르던 사회주의 시절의 남루일까. 어쩌면 그 시절에 조성된 집단 거주지일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추정했다.  

 말로만 듣던 슬로바키아. 벨벳혁명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연방공화국에서 떨어져 나온 나라. 지금이 마침 대통령 선거철인지 후보자의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슬로바키아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우리. 이곳의 화폐를 한 푼도 갖고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화폐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던 우리였다. 그냥 통과만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


 시계를 보며 어두워지기 전에 국경을 빠져 나가야겠다고 걱정하는 순간. 우리는 신기루 같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차를 세우고 자세히 보니 신기루가 아니라 높은 산언덕에 아스라이 솟은 옛 성이었다. 특히 약간 굽어진 정상 꼭대기에 붙여 지은 성의 한 쪽 면은 금방 쓰러져 내릴 듯 했다. 가늘게 솟은 언덕 자체가 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간 상당수의 성들을 보아왔지만, 이곳엔 분명 어떤 사연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라바 성The Castle of Orava. 매표소에 가니 다행히 성 전속 가이드 아가씨가 있었다. 가이드 없인 성 안을 구경할 수 없었다. 영어도 유창한 그녀.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슬로바키아 관광객 7-8명과 함께 투어에 나섰다.  

 이 성의 역사가 기록에 등장한 것은 1267년. 당시엔 1층만 돌로 세워졌고, 다른 층들은 목조였다. 1370년 이 성은 오라바 카운티County의 중심이 되었고, 그 즈음 지금 보는 모습의 상당 부분이 증·개축된 듯. 상성(上城, Upper castle), 중성(中城, Middle castle), 하성(下城, Lower castle) 등 세 구조로 이루어진 이 성은 전형적인 방어용 요새라 한다.

 1474년 이후 마테오Matthew왕은 광장을 만들게 하고, 중성에 생활을 위한 윙wing을 만들게 함으로써 성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성 앞엔 부속 건물들이 자리 잡기 시작 했고. 1534년 두보프카Jan z Dubovca는 성을 카운티의 권부로 삼았다. 성을 재건축하고 새로운 요새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상성에 반원형의 탑을 세우도록 했고, 1539년엔 두 개의 큰 원형 요새들도 만들었다. 중성에는 포(砲)를 설치할 층계도 만들었으며 포를 발사하기 위한 구멍을 뚫기도 했다. 

 1539-1543에 두보프카는 타워와 상성의 암벽 사이의 공간에 5층의 궁을 세웠다. 새로운 요새를 세운 것은 터키의 위협이 그 이유. 하성의 해자와 드로브리지drawbridge는 1543년에 완공되었고. 사실 이 성의 방어는 성벽을 향해 세워진 이른바 ‘아카이브 타워’에 의존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신축 이래 계속 보강된 성벽 자체의 시스템도 효과적 방어 수단이었던 것.

 얀 두보프카가 죽은 뒤 유산을 둘러싼 후계 다툼이 일어나 성을 저당 잡혀야 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자, 광산주 프란티섹 투르조Frantisek Thurzo가 돈을 치르고 이 성을 차지했다. 상성의 나무 계단은 돌계단으로 대치되었고, 드로브리지로 연결되는 중성과 상성 사이의 계단들도 마찬가지였다. 성 안 뜰에 우물을 팠고, 서쪽 벽 가까운 하성에는 한 층의 주거공간도 만들었다. 

 상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채플. 두 성문들 사이에 터널을 파고 그 위로 큰 테라스를 만든 새 성주 투르조. 그는 옛 건축물들을 부분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새롭게 짓기 시작했다. 채플의 내장 역시 뒤에 투르조의 정신에 맞추어 정비되었고. 가장 두드러진 것은 17세기 초에 만들어진 투르조의 르네상스 식 무덤과 1751-1752년에 만들어진 바로크식 천장. 

 투르조의 미망인 엘리자베스 쪼보르Elizabeth Czobor가 죽자 이 성은 그 딸들의 차지가 되었다. 정치, 사회, 경제의 변화로 이 성은 점차 본래의 기능을 잃었고, 몇몇 관리인만 거주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성은 퇴락되었고. 성의 목조부분들을 파괴시킨 1800년의 대화재는 최대의 재앙이었다. 하성에 있던 것들은 다행히 건졌지만, 중성 및 상성의 것들은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그 뒤 슬로바키아 최고(最古)의 오라바 뮤지엄이 설립되었고, 첫 전시회가 열린 것은 1868년. 채플, 기사의 방, 원래의 가구를 갖춘 방들, 미술관, 무기실, 자연과학관, 인류학 관련 유물관 등. 소박하긴 하나 당시에는 크게 매력적이었던 듯. 성이 심하게 퇴락되기 시작한 19세기 말 20세기 초 큰 보수작업을 실시. 중세기의 성들이 그러했듯, 제 3 정문의 공간과 터널의 테라스에 철봉을 설치하여 성벽을 보호하게 되었다. 당시에 독일 화가 막시밀리안 만Maximillian Mann이 오늘날 보는 벽화들을 완성했다. 2차대전 후 오라바성은 크게 보수·혁신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계속> 



**사진 위는 슬로바키아-오라바성The Castle of Orava, 아래는 오라바성의 가이드 아가씨


200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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