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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101] 오스트리아 제7신(2) : 문화와 예술, 그 열정이 출렁이는 너른 바다, 빈Wien-미술사 박물관의 충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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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3:16 조회 1,64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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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제7신(2) : 문화와 예술, 그 열정이 출렁이 

                              는 너른 바다, 빈Wien-미술사 박

                              물관의 충격(1)




빈의 남쪽 생 막스St. Marx의 호텔에 투숙한 우리. 자동차로 두어 번, 트램을 타고 서너 번이나 알트슈타트를 스킴했다. 무작정 내려서 시작할 수 없을 만큼 시가지는 꽉 짜여 있었기 때문. 시가지를 대충 스킴한 다음 우리는 알트슈타트를 걸어 보았다. 걸으면서 도시의 구조와 거리의 분위기를 헤아려 보겠다는 의도였다. 그렇게 했음에도 막막한 건 마찬가지였다. 가장 기본이라 할 도심의 박물관만 해도 수십 개. 각종 궁전과 성, 교회 등의 숫자까지 감안한다면 몇 달이 걸려도 소화해내기 어려운 분량이었다. 

 빈이 음악의 도시임을 감안하여 음악가 개인들의 뮤지엄을 중점적으로 돌아보려던 것이 애당초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알트슈타트에 임립(林立)한 큰 규모의 박물관들을 목격한 다음 우리의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단 하나라도 박물관을 통해 이 도시의 역사와 문화의 깊이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싶었던 것. 왕궁 호프부르크와 길 하나 사이로 마주 보고 있는 미술사박물관Kunsthistorishes Museum과 자연사박물관Naturhistorisches Museum, 그리고 그 인근의 루드비히박물관Museum moderner kunst stiftung Lidwig Wien 등 규모가 큰 박물관들을 ‘공략’(?)한 다음, 소규모의 개인 박물관들을 보기로 했다. 박물관 다음엔 성당과 교회, 궁전 및 성채, 거리의 조형물 등을 공부하고, 마지막으로 거리 투어.

 11월 2일. 아침 일찍 미술사 박물관에 도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기가 질렸다. 화려하게 치장한 내부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위로 건물 끝까지 통하게 하고 맨 끝을 유리로 마감한 천정의 구조나 무늬 역시 돋보였다.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박물관이 있을 수 있다니! 비록 맨 나중에 들를 계획으로 루브르를 빼놓긴 했으나, 그간 빠리의 유명한 박물관들을 비롯 꽤 많은 뮤지엄들을 둘러본 우리였다. 그러나 여기처럼 아름다운 경우는 별로 경험하지 못했다. 더구나 우리의 혼을 빼놓은 것은 바로 지금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고야Goya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는 점. 꿩 잡아먹고 알까지 먹을 수 있는 기회였다. 과연 대단한 컬렉션이었다. 양과 질에서 발군(拔群)이었다. 

 오스트리아 왕가(王家)의 사적인 컬렉션으로부터 시작된 미술사 박물관! 과연 인류의 미술사를 망라한 듯 했다. 합스부르크가의 황제들, 왕들, 대공들. 그들이 예술품 수집에 개인적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대략 15세기쯤부터. 체계적이고 규모가 컸다는 점에서 그들 중 일부는 이른바 예술품 수집의 '큰 손‘이었던 셈. 그 결과 빈과 마드리드Madrid의 합스부르크가 컬렉션은 세상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들 중의 하나로 랭크될 수 있었던 것. 합스부르크가가 중유럽과 남유럽 거의 모두와 네덜란드까지 지배했던 16세기와 17세기를 생각해보라. 인류의 뛰어난 예술적 유산들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한 것이야말로 바로 그 왕가의 정치적 위상 덕분이었다.

 ’미술사박물관Kunsthitorisches Museum'의 초석을 만든 사람들 가운데 특출한 3명이 있었으니. 대공 페르디난드 2세Archduke Ferdinand Ⅱ, 황제 루돌프 2세Emperor Rudolf Ⅱ, 대공 레오폴드 빌헬름Archduke Leopold Wilhelm 등이다. 

 페르디난드 2세의 관심은 주로 역사에 관한 것들이었다. 티롤Tyrol의 왕자로서 1547년-1563까지 보헤미아Bohemia의 지배자였던 그. 인스브룩의 암브라스성Schloss Ambras에 그의 컬렉션을 보관해 두고 있었다. 암브라스성의 컬렉션이야말로 진정한 뮤지엄의 반열에 들 만한 것이었다. 

 더욱 보편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마인드를 지녔던 그의 조카 루돌프 2세. 프라하Prague의 라드쉰 성Schloss Hradschin에 미술품 갤러리를 갖고, 그에 온힘을 집중했다. 그러나 빈 미술품 갤러리의 초석을 가장 확실하게 다진 인물은 대공 레오폴드 빌헬름이었다. 1647년부터 1656년까지 네덜란드를 지배했던 스페인 사람이었던 그는 브뤼셀Brussels의 중요한 그림들을 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말하자면 당시 그곳 예술 시장의 큰손이었던 셈. 1662년 레오폴드 1세로부터 황제의 지위를 물려받은 그는 빈으로 이 미술품들을 옮겨왔다. 당연히 합스부르크가의 많은 구성원들은 당대 예술가들의 페이트런patron으로서 ‘빈 컬렉션’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 일조들을 아끼지 않았고.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는 황제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Ⅰ를 위해 티티안Titian과 알씸볼도Alcimboldo, 기암볼로냐Giambologna 등은 황제 막시밀리안 2세를 위해 한스Hans von Aachen, 바르톨로모이Bartolomaus Spranger와 아드리안Adrian de Fries은 황제 루돌프 2세를 위해 그림을 그렸다. 다비드 테니어David Teniers는 대공 레오폴드 빌헬름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렸고, 벨라즈케즈Velazquez는 스페인 왕 필립 5세Philip Ⅴ를 위해 폼페오 바토니Pompeo Batoni와 베르나도 벨로토Bernado Belloto는 여제(女帝)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를 위해 각각 그림을 그렸다. 화가들의  스폰서가 되어준 최고 권력자들! 그들이야말로 오늘날까지 최고의 예술을 보존한 최고의 공로자들인 셈. 

 1871년과 1891년 사이 빈에 멋진 건물이 세워져 모습을 보인 ‘미술사 박물관’. 오랜 동안 모인 왕가의 컬렉션은 비로소 여러 범주로 나누어지고 조직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계속>


**사진 위는 쿤스트히스토리쉐뮤지엄Kunsthistorisches Museum 안에 걸린 고야 특별전 포스터, 아래는 쿤스트히스토리쉐뮤지엄Kunsthistorisches Museum 전시물 중 이집트 유물


200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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