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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106] 오스트리아 제7신 : 문화와 예술, 그 열정이 출렁이는 너른 바다, 빈Wien-‘바써’를 봤어요, 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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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3:35 조회 1,84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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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제7신 : 문화와 예술, 그 열정이 출렁이는 

                         너른 바다, 빈Wien-‘바써’를 봤어요, 

                         빈에서



 훈더트 바써Hundert Wasser. 번역하면 백수라던가? 백수(白手)아닌 백수(百水)를 우린 빈에서 ‘또’ 만났다. 왜 ‘또’인가. 우린 이미 10월 8일에 그를 만났다. 메어스부르크에서. 당시 메어스부르크의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신성Neue Schloss에서 바써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일본풍의 그림들, 디자인, 그래픽들이 인상적이었다. 화제(畵題)의 대부분이 일본어였다. 기상천외한 발상의 그림들이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그 그림들에서 바써의 예술세계가 범상치 않음을 우린 간파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 2005년 11월 4일, 그를 빈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빈에는 바써와 관련되는 서너 곳이 있다. 그가 세운 시영 주택 ‘훈더트바써하우스Hundertwasserhaus’, ‘쿤스트하우스 빈Kunsthaus Wien', 빈의 쓰레기 소각장 등이 그것들. 바써하우스 앞에는 칼케빌리지Kalke Village가 있고, 그 내부에서도 바써를 만날 수 있다. 바로 화장실이 그의 작품이었다. 냄새나는 화장실 앞에서 우린 바써의 예술혼이 내뿜는 향기를 흠뻑 맡을 수 있었다.

 11월 4일 아침녘. 우린 차를 몰고 어렵게 그곳을 찾아갔다. 관광객들은 이미 그곳에 몰려와 바써의 자유로운 예술정신을 음미하고 있었다. 놀라웠다. 집의 모양을 곡선으로 비틀고 군데군데 각양각색의 타일로 변화를 준 디자인. 곳곳에 나무를 심어 장식도 했고. ‘자연계에 직선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써의 지론.

 너무 완벽하게 짜여진 빈 시내의 주택이나 건물들. 바로크 양식이든 로마네스크 양식이든 개별적인 건물들을 벗어나 전체를 대상으로 보면 ‘빈틈없는 상자들의 집합’에 불과한 빈 시내. 자유주의자 바써라면 환멸을 느꼈을 법하지 않은가. 바써는 그런 완벽한 짜임을 파괴하고 싶었던 것이나 아닐까.

 빈에 파격을 크게 주려고 작정한 바써. 일직선의 창틀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기둥을 노출시켜 원색을 가미하기도 했다. 상식을 초월하는 바써의 상상력, 그 근저에는 ‘아름다운 자유’가 자리 잡고 있다. 얼핏 보면 산만하고 지저분해보이지만, 한참 음미하다보면 우리가 왜 ‘직선과 평면에 갇혀 살아야 하는가’ 라는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말하자면 즐거운 삶을 위해서 꽉 짜인 틀을 깨보자는 것이 건축가이자 화가 바써의 근본의도였던 것이다. 

 빈에서 바써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장중한 빈의 알트슈타트.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 만난 바써는 우리에게 상상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주었다. 그 상상력만이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바써와 작별하고 난 우리. 다시 그림으로 돌아간다. 충격적인 기법으로 현대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기고 스물여덟 청춘에 세상을 뜬 에곤 실레Egon Schiele를 만나러 우리는 체코의 체스키크롬노브로 떠난다.       


             ***


 빈은 촌놈 백규에게 충격의 공간이었다. 어느 곳 하나 버릴 게 없었다. ‘도시 하나를 송두리째 섭렵하려 한다면 그건 그 도시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고, 유럽에 오기 전 어느 선배는 충고했다. 그러나 빈의 모든 것을 밟아보지 않고, 어떻게 빈을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건 불가능했다. 이삼일 간 머물면서 빈을 보겠다고 덤벼든 우리의 만용. 그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오스트리아와 빈의 역사. 아니 그 주역이었던 합스부르크가의 영광과 꿈이 고스란히 남아 이루어진 빈이었다. 역사도 예술도 알아야 빈을 알 수 있을 듯 했다. 준비 없고 아는 것 없는 우리들에게 빈은 매정했다. 우리가 ‘한 솥의 국을 전부 먹어 보아야 국 맛을 아느냐?’고 호기를 부리긴 했지만, 그 모든 것에 문외한들인 우리로선 ‘빈손으로’ 빈을 떠나야 했다.  


<계속>   


**사진 위는 훈더트 바써하우스Hundert Wasserhaus, 아래는 훈더트 바써Hundert Wasser가 설계한 화장실


200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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