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17] 체코 제2신(4) : 피비린내로부터 승화된 문화와 예술의 자부심, 프라하의 향기(4)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4:27 조회 1,384회 댓글 0건본문
체코 제2신(4) : 피비린내로부터 승화된 문화와 예술
의 자부심, 프라하의 향기(4)
다시 우리는 구시가 광장으로 돌아왔다. 후스가 서 있는 옆쪽엔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들 가운데 하나인 골츠-킨스키궁Goltz-Kinsky Palace이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역시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틴 성모교회Cathedral of Our Lady before Tyn, Charam Panny Marie Pred Tynem'가 서 있었다. 14세기 팔러Peter Parler가 설계한 교회. 내부의 뛰어난 장식은 중세 건축가들의 작품. 천문학자 티코브라헤Tucho Brahe의 무덤도, 다른 예술가의 컬렉션도 이 교회엔 있었다.
성모교회 맞은 편, 광장의 서북쪽에 세워진 구시청사. 이 건물의 남쪽 부분은 ‘큰 얼굴’의 천문시계로 장식되어 있고, 정시만 되면 시계 옆에 선 해골이 줄을 당겨 종을 울린다. 그러면 맨 위쪽의 창문이 열리면서 예수의 열두 제자들이 한 사람씩 지나면서 광장에서 기다리는 관광객들에게 얼굴을 보여준다. 1410년 니콜라스Mikulas of Kadan가 처음 만들기 시작했고, 1490년 하누스Master Hanus가 완성한 작품. 매 정시 30분 전 쯤부터 이곳엔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 정시에 가까워지면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우린 시계탑에 올라갔다. 크게 높지는 않았으나, 시가지 먼 곳까지 훤히 내려다 보였다. 수백 년을 이어져 내린 중세 건물들의 지붕. 서북쪽에 좌정한 프라하 성과 도심의 빨간 지붕들, 그 위를 덮은 석양. 가히 환상적인 조화라 할 만 했다.
개미처럼 내려다보이는 광장의 인파, 잡힐 듯이 가까운 성모교회의 첨탑들. 성 니콜라스 교회의 돔. 정신이 아득해진 우리는 서둘러 내려왔다. 아무래도 아직 우린 땅을 디디고 있어야 했다. 개미처럼 보이는 인간들 속에 들어가 그들과 고락을 함께 해야 할 입장이었다.
***
그 다음 찾은 곳이 카프카 뮤지엄. 구시가에 카프카 광장이 있었다. 그곳에 소박한 규모의 카프카 뮤지엄이 있었다. 자료의 대부분은 복사물이었으나 그가 태어난 곳에서 그의 면모를 엿보기엔 아쉬움이 없었다.
1883년 7월 3일 프라하에서 유대인 부모의 장남으로 출생한 카프카. 뮤지엄엔 법학박사 학위증, 성적표에 육필원고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1924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결핵 요양원에서 짧은 생을 마친 카프카. 한 때 그의 <변신>이나 <성(城)> 등을 읽으며 문학의 난해함을 새삼 절감하던 우리. 체코인으로 살아가며 독일어를 쓰던 유태인 작가 카프카. 유대인들이 박해받던 현장에서 우리는 그가 겪은 아픔의 세월을 더듬을 수 있었다.
결핵이라는 비참한 병으로 그는 갔고 세월도 많이 흘렀지만, ‘카프카’라는 이름은 프라하 뒷골목의 돌 벽에 새겨져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수만의 유태인이 학살된 프라하. 그 광풍이 불기 전 카프카는 이승을 떴지만, 어쩌면 그가 느꼈을 찬 바람은 십수 년 뒤 뜨거운 열풍이 되어 그곳의 유태인들을 휘감았으리라.
***
카프카를 뒤로 하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근처의 유태인 교회 시나고그 Synagogue. 네오바로크 혹은 아르누보의 멋진 건물들이었다. 옛날의 유태인 거리를 정화할 목적으로 1896년 건설된 시가지다. 유태인 묘지와 시나고그, 관공서 등이 모여 있는 곳. 그곳엔 신·구, 클라우스, 핀카스, 스페인, 마이셸 등의 시나고그들과 유태인 집회소, 그리고 옛 유태인 묘지도 있었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사용된 것들이었다. 대략 12,000개의 묘석이 있으나 실제 매장된 인원은 10만 명 정도라고. 매장할 공간이 없어 흙을 덮어가며 겹 매장한 경우도 많다는 설명이고 보면 유태인들이 당한 핍박의 정도를 알 수 있지 않을까.
***
사방은 어두워지고, 아름다운 프라하 시가지의 가로등에 하나씩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따뜻한 색감의 불이었다. 어둡고 침침한 역사를 가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그 불들은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네포무츠키, 얀 후스, 카프카, 유태인들. 그들이 흘린 피는 이 땅에 스며들어 문화와 예술을 키운 자양분이 되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복수의 씨앗으로 갈무리되고 있을까. 아직 우리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난데없이 바뀌는 것이 역사의 방향. 인간의 의지나 이성으로 역사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진실. 어두워지는 프라하의 평원에 불쑥불쑥 솟아오른 저 성당과 교회의 첨탑들. 신의 이름으로 자비와 사랑을 노래하면서 증오와 복수의 칼을 휘둘러 온 역사가 과연 아름다운 예술로 쉽게 승화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우리는 걸었다. 걸으면서 프라하의 모든 것을 호흡하려고 욕심을 부렸다. 그러나 남는 건 피로 뿐.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열리는 저녁 음악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바흐J.S.Bach와 헨델G. F. Handel, 그리고 드보르작의 음악으로 우리의 마음을 순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얀 칼푸스Jan Kalfus의 오르간, 메조소프라노 이보나 슈크바로바Yvon Skvarova의 아리아.
프라하는 어딜 가나 음악회였다. 음악회 전단지를 돌리는 사람들이 골목마다 지키고 있었다. 장소는 주로 교회. 거의 모든 교회에서 저녁 시간엔 음악회를 열고 있었다. 시간마다 음악회가 있었고, 누구나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프라하만의 특색이었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동 유럽의 도시 한 복판. 침울한 공기를 흩으러놓는 파이프 오르간과 적당히 올라가며 고요의 세계로 이끄는 메조소프라노의 음색이 우리를 매료시킨 밤이었다. 심각했던 우리의 마음에 비로소 포근한 안식이 찾아왔다. 그렇게 프라하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계속>
**사진 위는 프란츠카프카의 젊은 시절-중학교 졸업당시, 아래는 프라하 유태인 교회-시나고그
- 이전글[118] 체코 제3신(1) : 화려한 영광 뒤에 숨은 승자의 초조함, 그리고 문화-프라하 성의 알레고리
- 다음글[116] 체코 제2신(3) : 피비린내로부터 승화된 문화와 예술의 자부심, 프라하의 향기(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