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92] 오스트리아 제4신(2) : 소금광산에 핀 애국의 예술 혼, 그리고 로제르Loser의 햇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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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1:12 조회 1,757회 댓글 0건본문
오스트리아 제4신(2) : 소금광산에 핀 애국의 예술 혼,
그리고 로제르Loser의 햇살(2)
서두른 덕분에 우린 간신히 11시 투어에 댈 수 있었소. 그런데 소금광산의 이름이 심상치 않았소. 베르크 데어 쉩체Berg der Schatze, 즉 ‘보물산’이란 말이오.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방법도 가지가지구나!’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었소. ‘보물산’이란 이름만 붙이면 소금 폐광이 금광으로 변하는 이치라도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리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출발점인 슈타인버그하우스Steinberhaus에서 흰 옷을 껴입었소. 흰 옷 입은 이십여 명의 관객이 두런두런 막장의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는 대기실. ‘아우슈비츠에 들어갈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다’는 끔찍한 농담을 소근거리며 우린 잠시 웃었소.
레일이 깔린 좁은 갱도를 걸어가면서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가끔은 막장을 뚫는 드릴소리도 들려왔소. 효과음들이지요. 어둠 속에서 듣는 음악과 드릴 소리. 실감 나는 분위기 였소. 수백m를 들어가니 난데없이 작은 성당이 나오는 것이었소. 성모상과 예수고상도 걸려 있는, 작지만 아름다운 성당이 그곳에 있었소. 그곳에서 우리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소. 1935년 알트아우스제의 광부들이 세워 성 바르바라St. Barbara에게 봉헌했다는. 당시 바트아우스제Badaussee의 자선교회에서 보낸 성화들이 이 교회에 아직도 생생한 모습으로 걸려 있었소. 왜 있잖소? 온도와 습도가 일정한 곳에서는 그림이나 책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광산의 막장이야말로 바로 그런 최적의 장소 아니겠소? 이 소금광산의 드라마는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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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견한 감동의 드라마. 그건 소금광산의 사건이면서 2차 세계대전의 비극적 결과를 극복해나간 오스트리아 국민의 지혜를 보여주는 하나의 물증이기도 했소. 나치에 점령된 오스트리아. 본의 아니게 2차 세계대전의 주전국이 되었고, 전쟁의 참화로 전 국토는 초토화되고 있었소. 그 상황에서 가장 걱정된 것이 바로 각처의 박물관과 교회 등에 소장되어 있던 보물, 즉 귀한 예술품들이었소. 인간의 목숨도 물론 중요하오. 그와 함께 한 번 훼손되거나 불타면 사라져 버릴 역사적인 예술품들 또한 말할 수 없이 중요하오. 그것들을 안전하게 보존할 방법을 찾아 헤맨 사람들이 바로 박물관의 전문가들이었소.
그들이 이 광산을 찾은 것은 1943년. 전쟁이 한창인 때였소. 아마도 이들은 전쟁의 비극적 결말을 예감하고 있었던 듯 하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잘 보존되고 있던 교회의 성화들이오. 교회에 걸려있던 성화들의 양호한 보존상태를 확인한 순간, 그들은 무릎을 쳤소. 즉시 오스트리아 전역의 박물관과 교회들에 있던 보물급 예술품들을 이곳에 피난시킨 건 물론이오. 그래서 성 바바라 채플은 유럽 예술의 보고로 탈바꿈된 것이오. 예술품들의 보관처로 바뀐 광산의 선반들. 참 재밌지요? 1945년까지 약 7천여 점의 보물들이 이곳에 운반되었소. 대부분은 오스트리아의 박물관으로부터. 그 과정에서 나찌는 그것들 일부를 약탈하기도 했다하오.
진짜 극적인 순간은 전쟁 막바지였소. 패전의 분위기가 짙어갈 무렵 나찌 사령부는 예술품들을 없애기 위해 광산을 파괴하기로 결정했었소. 그들은 중 폭탄 여덟 개를 도자기 상자로 위장하여 운반해 왔다하오. 그러나 곧바로 광부들은 진짜 내용물이 무언지를 알게 되었소. 명령권자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무진 설득을 했으나 결국 실패. 생명의 위험을 감수한 광부들. 1945년 5월 3일 밤 광부들은 명령을 듣지 않고, 폭탄들을 광산 밖으로 내 갔다 하오. 그래서 그 귀한 예술품들을 구한 것이오. 광부들의 결단은 단순한 애국심을 뛰어넘은 오스트리아인들의 자존심이었소. 모차르트와 요한슈트라우스, 슈베르트, 하이든 등등. 별처럼 빛나는 예술가들의 조국. 예술의 나라 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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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사변의 불바다에서 보물급 문화재들을 일본에 안전하게 도피시켰다가 오늘날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모체를 만든 김형남 목사나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선생. 그 순간 우리는 그런 분들을 생각했소. 그건 보통사람의 의지를 뛰어넘는 일이오. 그 분들이 그 예술품들을 불덩이 속에 던져두고 내 목숨이나 구하겠다는 본능만으로 움직였다면, 오늘 우리는 정신적인 불모의 사막에서 헤매고 있었을 것이오. 예술적 유산이 없는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을 것이오. 유럽을 돌아다니며 이들이 갖고 있는 자존심의 근원이 바로 그들의 예술이나 사상에 있음을 알게 되었소. 아울러 근원을 알 수 없는 부끄러움도 느끼게 되었소. 소중한 깨달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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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역사적 우여곡절을 통해 소금광산은 환상적인 갤러리로 바뀌어 있었소. 우리의 느낌일 뿐 아니라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소. 사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소. 예술품이 수장되어 있던 공간엔 다수의 멀티비젼들이 설치되어 있었소. 우리는 투어 내내 멀티비젼 쇼를 통해 세기적인 예술품들을 향수할 수 있었소. 박물관 대신 소금광산의 막장에서 최고의 예술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소? 그 뿐인 줄 아시오? 어느 통로에서는 우리들의 몸에 비쳐지는 그림들을 감상하기도 했소. 한 줄로 늘어서서 걸어가는 우리들의 등판에 나타나는 그 그림들을. 앞 사람의 등판에 비쳐지는 그림을 뒷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오. 투어를 시작하면서 왜 이들이 우리에게 흰 옷을 입혔는지를 그 때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소. 처음엔 우리들의 옷을 더럽힐까 우려하여 흰 색의 덧옷을 입히는 줄 알았소. 그러나 갤러리를 통과하고 나서야 의도가 다른 데 있었음을 우리는 깨달은 것이오. 자신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예술품들을 멀티비전의 레이저로 생생하게 보여주려는 의도. 바로 그건 그들의 자존심이었소. 비록 멀티비전으로나마 최고의 예술품들을 수장하고 있는 소금광산. 그곳이 최고의 갤러리가 아니고 무어란 말이오? 최고의 갤러리로 변신한 소금광산. 이보다 더 극적인 사건이 어디에 있단 말이오?
마지막 코스에서 우리는 환상 예술의 클라이맥스를 경험했소. 바로 환상의 연주회. 어둠 속에 고여 있는 직경 80m의 연못. 그곳엔 큰 달 하나가 반쯤 잠겨 있었소. 말하자면 ‘달의 호수’라고나 할까. 연못의 중앙엔 무대가 마련되어 있고, 연주자 없이 악기와 악보만 놓인 의자들이 몇 개 있었소. 잠시 후 실루엣으로 등장한 지휘자. 열정적인 몸짓의 지휘에 감동적인 음악이 흘러나왔소. 그 장중한 음악소리에 하얀 달은 서서히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호수도 물도 출렁이는 듯 했소. 어둠 속 텅 빈 객석에서도 분명 찬탄의 한숨이 흘러나오고 있었소. 아, 그건 음악에 대한 오스트리아인들의 자부심, 바로 그것이었소. 레이저와 멀티비전을 통해 환상을 보여주려는 예술적·과학적 자부심의 발로였소. 우리는 드디어 감동의 바다에 빠지고 말았소. 비로소 오스트리아의 저력을 본 것이오.
위기에 처한 예술품들을 소금광산에서 지켜낸 그들. 첨단기술을 통해 세계인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이곳 소금광산은 오스트리아인들의 예술적·과학적 저력을 보여주는 보배로운 공간이 된 것이오. 오스트리아에 온 이래 우리는 비로소 ‘감동을 먹은 것이오.’ 놀랍지 않소?
<계속>
**사진 위는 알트아우스제Altaussee의 소금광산Berg der Schatze 안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아래는 소금광산 투어의 대미를 장식한 연주회 모습
200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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