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오스트리아 제6신(2) : 폐성(廢城)의 고적함과 수도원의 호화로움-와인 익어가는 바하우Wachau 계곡의 언밸런스, 그리고 교훈(2) >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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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98] 오스트리아 제6신(2) : 폐성(廢城)의 고적함과 수도원의 호화로움-와인 익어가는 바하우Wachau 계곡의 언밸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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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1:19 조회 1,66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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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제6신(2) : 폐성(廢城)의 고적함과 수도원

                              의 호화로움-와인 익어가는 바하

                              우Wachau 계곡의 언밸런스, 그

                              리고 교훈(2)




 우리가 바하우 계곡에서 찾아낸 테마는 ‘삶과 죽음의 이중주’. 삶의 아름다움을 구가하는 한편에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 그 슬픈 장송곡을 들려주고 있었다. 신의 은총도 영광의 찬양도 모두 증발하고 껍데기만 남아있는 성 요한 교회, 해골들을 겹겹이 진열해 놓은 성 미카엘 교회는 수백 페이지의 성서나 장강대하의 설교, 수 없이 올려지는 위선의 예배  등이 필요 없는, 말 그대로 인간들을 위한 교과서였다.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그토록 갈구하는 명예와 영리의 치욕적인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왜 우린 무언가를 차지하려고 아등바등 다투며 끝없이 자신의 이익과 행복만을 기구하는가. 폐허로 변한 이 교회들이 보여주는 진리. 그 밖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삶과 죽음의 이중주’를 느끼게 한 건 악슈타인 성과 멜크 수도원. 

 쇤뷔헬의 숙소를 나서 멜크 수도원의 반대방향으로 30분 쯤 달리던 우리는 안개에 싸인 산 위에 아련히 보이는 성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폐성(廢城) 악슈타인Burgruine Aggstein. 도나우의 우측, 야우에를링 산Mt. Jauerling 정상이었다. 표지판엔 그저 ‘악슈타인성’으로만 표기되어있을 뿐 그것이 현재 폐허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으레 안개와 산이 만나면 선계가 되고, 선계 속의 건축물은 환상으로 변한다는 내 믿음만 의연할 뿐. 그래서 산에 오르기 전 ‘폐성 악슈타인’은 환상 속의 아름다운 성이었다. 정확한 수종은 알 수 없었으나 주로 오리나무, 자작나무, 갈나무 등 활엽수 일색. 그 숲 사이의 가파르고 좁은 길로 우리의 자동차는 땀 흘리며 굴러갔다. 단풍이 고왔다. 빛깔이 채 바래지 않은 나뭇잎들이 길바닥을 덮고 있었다. 그 위를 미안스레 밟고 가며, 아직도 나무 가득 매달려 반겨주는 단풍들을 마음에 담았다.

 산 위의 주차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는 환상 아닌 악슈타인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한 쪽 벽면은 떨어져 나가고, 투박한 터치로 자연석 위에 붙여 지은 성. 지금껏 제법 많이 보아온 성들에 비해 아주 소박하고 거칠었다. 몇 개의 문을 통해 겹겹의 성벽들을 통과하니 작은 광장이 나오고. 그 우측의 까페에선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들어가 차 한 잔으로 옛 기분을 느껴보려 했으나, 워낙 깊은 세월의 골을 뛰어넘긴 어려웠다. 광장을 지나 접근한 이 성의 핵심. 계단을 통해 올라 본 공간에는 거실과 궁, 성당, 부엌 등이 있었다. 모든 공간엔 가구도 온기도 없었다. 오직 흐릿한 삶의 흔적과 깨진 돌덩어리들만 과거의 일들을 속삭이고 있을 뿐. 작은 성당엔 화려한 천정화도 제대 뒤쪽의 황금 조형물도 모두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좌측의 말 탄 기사와 우측의 성모자만이 고독하게 이 성당을 지키고 있었다.  

 성의 꼭대기에 올라 뿌옇게 안개 덮인 도나우와 강변마을들을 내려다보았다. 성에 오르기 전엔 산 위의 성이 환상이고 아랫동네는 현실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였다. 널브러진 돌덩어리들과 깨어져나간 문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켜켜이 앉아 헛되이 흘러간 세월의 궤적을 보여주는 먼지. 지독한 모순의 현실이 이곳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바로 전에 이곳을 환상의 세계로 보았던 우리 아닌가. 세상과 인생의 이치가 바로 그랬다. 나와 너, 이곳과 저곳, 지옥과 천국, 낙원과 아수라의 차이란 근본적으로 없는 것. 그리고 폐허. 우리는 폐허에서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는 삶의 의욕과 그 비참한 결말을 보았다. 남은 건 몇 개의 돌덩어리들 뿐. 무얼 찾아야 하는가. 돌덩어리들 속에서 과거의 영화를 찾아낼 것인가. 아니다. 잠시 왔다 돌아가는 우리의 삶. ‘텅 빈 겸허’와 ‘아름다운 허무’나 배워갈 일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멜크 수도원. 높은 산만 가리지 않는다면 수백 리 밖에서도 보일 듯 장대한 규모였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의 기를 죽였다. 노랑의 바탕색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했으나 규모와 제도의 화려함은 사람을 짓눌렀다. 각 층 각 방마다 진열된 물건들이야 세월의 산물일 것이니 그렇다 치고. 수백 년 간 만들어온 문헌들을 모셔둔 도서관에서 우리는 비로소 약간의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책 속의 진실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간 들러온 많은 성당과 교회에서 별로 보지 못하던 보물들이기 때문이었다.

 성당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일종의 좌절을 경험했다. 그곳은 황금으로 맥질된 공간이었다. 어디 한 군데 차분하게 눈을 둘만한 곳이 없었다. 우리는 대충 휘둘러 본 다음 그곳으로부터 뛰어나왔다. 유럽의 성당들. 대부분 화려했다. 멜크 수도원의 성당에서 우린 비로소 유럽의 성당들이 지닌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언필칭 ‘주님의 성전’이라면서 그곳을 그렇게도 화려하게 치장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주님의 뜻’에 부합된다고 착각한 것일까. 세속의 영역까지 지배하려 애쓰던 그들의 과거를 보여주며, 후세에 대한 교훈의 자료로 삼으려 했던 것일까. 그들의 안중에 우리처럼 가난한 자들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겠지. 우리는 화려한 궁과 성채를 지어놓고 세속의 황제와 대립하던 대주교의 모습을 잘츠부르크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헬브룬 궁의 파티에 귀족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몸에 물을 뿜어대며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던 대주교의 모습을. 

 지금도 살아있는 수도원인지 알 수는 없으나, 진정한 수도원이라면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예수님의 자기희생을 가르쳤어야 했다. 작고 낮은 집에서 몸소 밭 갈고 베 짜며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지혜를 가르쳤어야 했다. 그러나 멜크 수도원은 호화로움만 전시된 아방궁이었다. 당대 예술의 핵심들을 잘 보존한 공로가 있긴 하지만, 그건 수도원으로선 부차적인 사항일 뿐이다. 

 그 점에서 멜크 수도원도 악슈타인성처럼 ‘폐허’일 뿐이다. 겉모습은 정반대로 다르나 둘 다 폐허인 점은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 악슈타인성은 ‘초라한 죽음’이고, 멜크 수도원은 ‘화려한 삶’이다. 그러나 초라한 죽음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겸허함을 배우게 한다는 점에서 악슈타인성은 멜크 수도원보다 훨씬 ‘종교적이고 경건하다’. 반대로 멜크 수도원, 화려함을 통해 신의 영광을 보여주려 했을까. 과연 ‘신의 영광’과 ‘인간의 비참함’은 의미적으로 대립 항인가. ‘내 아버지의 성전을 더럽히지 말라’고 일갈하시면서 채찍을 휘두르신 예수님의 말씀, 그 진실이 이 경우엔 해당되지 않는단 말인가.


             ***


 바하우 계곡과 도나우 강변. 그 사이를 지나오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생각했다. 삶과 죽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그곳엔 많았다. ‘마음이 가난한 자’란 ‘긍정적인 허무혼의 소유자’다. 욕망과 자기과시의 그득한 뱃살로 어찌 인간의 영혼을 보듬을 수 있는가. 도나우 강은 속삭였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리라!”고. 


<계속>


**사진 위는  악슈타인 폐성Burgruine Aggstein, 아래는  바하우 계곡의 멜크수도원Stift Melk


200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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