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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100] 오스트리아 제7신(1) : 문화와 예술, 그 열정이 출렁이는 너른 바다, 빈W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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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3:14 조회 1,63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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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제7신(1) : 문화와 예술, 그 열정이 출렁이

                              는 너른 바다, 빈Wien





 끝 간 데 없이 넓고, 밑을 알 수 없는 바다. 빈은 바다였다. 도시를 꽉 채운 아름답고 장중한 건축물들, 그 건축물들의 공간을 꽉 채운 옛 문화, 그리고 비교적 산만한 듯한 오스트리아인들의 자유혼이 미래지향의 창조적 역량으로 분출되는 곳. 이런 엄청난 곳에 우리가 투자한 시간은 노루꼬리만큼 짧은 나흘(11. 1.-11. 4.). 우린 좌절의 쓴 맛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산야를 누비며 한가로이 오스트리아의 속내를 훔쳐나 보던 우리. 빈에 와서야 비로소 그 진면목을 만났다. 우리는 인스브룩, 잘츠부르크, 바하우 계곡 등을 거쳐 빈으로 오면서 오스트리아와 그간 거쳐 온 나라들과 크게 다른 점들을 발견했다. 적극적이고 활발하며 친절한 오스트리아인들의 성격, 그러나 약간은 조급하며 거칠어 보이는 운전 습관 등.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격과 통하는 면이었다. 

 사실 우리에겐 오스트리아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다. 자연이 빼어나게 아름다우며,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음악적 전통을 지닌 나라라는 점 외에 특별히 알고 있는 사실이 없었다. 기껏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의 나라, 프로이트의 나라라는 점 외엔 아는 게 없었다. 그러나 이번의 여행을 통해 오스트리아인들이 오랜 동안 질곡의 역사 속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를 자산으로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국민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오스트리아를 떠나려고 하는 지금, 발걸음이 자꾸만 주춤거려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


 현재 인구 120여만의 대도시 빈. 서기 2세기 경 로마제국의 북쪽 방어선으로 삼기 위해 ‘빈도보나Vindobona'라는 군사 캠프를 세운 데서 유래된 도시. 5세기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로마인들은 물러갔고, 9세기 후반 잘츠부르크의 문헌에 비로소 나타난 ‘베니아Wenia’란 이름이 바로 빈의 전신인 셈.

 10세기 오스트리아의 통치세력으로 부상한 바벤베르크Babenberg 가문은 1155년 빈으로 그들의 기반을 옮겨왔고, 그들은 현존하는 도시 헌법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도시 헌장을 빈에 부여했다.

 1282년 바벤베르크 가문을 대신하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합스부르크Habsburg가의 루돌프 1세Rudolf Ⅰ가 자신의 두 아들을 오스트리아의 공작으로 앉히면서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시대가 열린다.

 1529년 발칸의 지배자 터키인들이 처음으로 빈을 포위, 결국 정복하는 데 성공하고. 1679년에는 페스트가 빈을 엄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1683년 헝가리 퇴출 후 터키인들은 빈을 재차 포위. 그러나 독일, 폴란드가 참전하여 터키를 물리친 후 빈은 괄목할만한 융성을 보이기 시작. 

 18세기 중·후반인 1740-1790까지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와 그의 아들 요셉2세Joseph Ⅱ는 모든 면에서 오스트리아를 개혁하는 데 성공. 그 후 19세기 초반(1805-1809)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두 번 침공함에 따라, 두 번이나 점령을 당한 빈.

 1848년 혁명으로 메테르니히Metternich의 경찰국가는 무너졌으나, 다시  절대 왕정으로 복귀. 8세에 즉위하여 1916년까지 왕위를 지킨 황제 프란츠 요셉1세Franz Joseph Ⅰ는 개혁을 단행, 백성들과의 거리를 좁히기도 했다. 그 여파일까. 19세기 후반 경 빈의 인구는 1백만을 돌파했고, 1900년경엔 2백만을 넘어서기도 했다. 1, 2차 세계대전의 시련을 겪고 난 1945년 4월 27일, 오스트리아는 다시 건국되었다. 1955년 오스트리아 조약이 체결되면서 전후 분할 통치하던 외국의 군대들이 모두 철수하고, 오스트리아의 자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빈 역시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은 물론이다.


             ***

 

 숨차게 돌아다니며 탐색에 나선 우리. 감당할 수 없었던 엄청난 규모의 건축이나 예술, 그리고 그 문화적 깊이야말로 이렇게 복잡다단한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들임을 알게 되었다. 정치나 군사, 사회 분야의 인물들을 제외하고도 빈의 예술과 문화의 주역들은 많다. 초·중등학교 시절부터 익히 들어온 인물들.

 1756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빈을 좋아한 그는 1791년 죽을 때까지 빈에 살았다. 1792년 이래 빈에 살고 있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1805년 빈 극장에 그의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를 올리기도 했다.

 1797년 빈에서 출생한 슈베르트Franz Schubert. 그는 이곳에서 유명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비더마이어Biedermeier시대를 열기도 했다.

 그 뿐인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아돌프 루스Adolf Loos,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 아르투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 에곤쉴레Egon Schiele, 오토 바그너Otto Wagner,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안톤 브룩크너Anton Bruckner,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엘리저베드 시시Elisabeth Sisi, 에른스트 푹스Ernst Fuchs,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Christophe Willibald Gluck, 요셉 하이든Joseph Haydn, 후고 본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 칼 포퍼Sir Karl Popper, 에곤 쉴레Egon Schiele, 로버트 슈톨츠Robert Stolz  등등,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이곳을 활동무대로 삼은 쟁쟁한 학자와 세기적 아티스트들. 이들이 빈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였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오스트리아 국민들. 그들의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다.


<계속>


**사진 위는 저녁 무렵의 빈 시가지 모습, 아래는 숙소가 있던 생맑스St. Marx의 가소메터Gasometer 상가


200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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