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07] 에피소드(5) : 빈에서 만난 사기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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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3:44 조회 1,841회 댓글 0건본문
에피소드(5) : 빈에서 만난 사기꾼들
11월 4일 훈더트바써하우스를 보고 시내의 파크하우스로 나오던 길. 약간은 한적한 골목길이었다. 큰 건물의 모퉁이를 도는데 허름한 젊은이 하나가 웃으며 지도를 들고 접근해 왔다. 서툰 영어로 지껄이는 말을 들으니 ‘슈테판 성당 가는 법을 좀 알려 달라’는 요지였다.
우선은 반가웠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도 길을 물으며 다니다보니 늘 우리는 남에게 빚만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참에 빚을 좀 갚아볼까 하는 자못 ‘건방진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다.
반가운 김에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니, 그는 ‘서울 코리아’를 정확하게 말하면서 지도를 우리의 코앞에 들이댄다. 그러나 우리가 슈테판을 두어 번 갔었지만, 헤매면서 다녀온 터라 누구에게 설명할 처지는 되지 못했다. 바로 그 때 길 건너편에서 멀쩡하게 생긴 신사 한 사람이 제복 비스름한 것을 입고 건너왔다. 내심 잘 되었다 싶었다. 그에게 떠넘길 요량으로.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 신사, 다짜고짜 그 친구에게 패스포트 좀 보잔다. 그러더니 그 친구 또한 기다렸다는 듯 호주머니에서 패스포트를 꺼내 신사에게 들이민다. 그 신사, 그걸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젠 우리에게 패스프트를 좀 보잔다. 순간 우리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사기꾼들이닷!
유럽에 오기 전, 경찰을 사칭하는 사기꾼들을 조심하라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서 접한 적이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2인조였다. 분명 한 녀석은 이탈리아인이고, 멀쩡한 신사는 오스트리아인이었다. 한적한 골목에서 그물을 치고 있다가 동양인인 우리를 제물로 선택한 것이리라. 그 글들이 알려준 대로 우리는 동시에 ‘Let's go to police!'를 외쳤다. 그러자 그 녀석들이 좀 당황하더니 ‘Go! Go!’를 외치며 슬금슬금 내빼는 것이었다. 생각 같아선 그 녀석들을 쫓아가 멱살이나 부여잡고 한 대씩 후려갈기고 싶었으나, 이곳은 이국 땅. 무슨 사단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래서 참고 말았다.
***
‘그놈들이 사람들을 잘못 골랐지. 우리를 상대로 그런 헤픈 짓을 벌이려 했으니, 나원참!’ 다시 길을 가면서 우리는 낄낄대고 웃었다. 유럽 여행을 시작한 이래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 사건을 ‘예방주사’로 표현한 아내의 말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 건 사실이다. 훤한 평일 대낮. 남들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그 시각이었다. 40대 후반의 멀쩡한 신사가 삐끼 한 녀석을 데리고 관광객의 등이나 치기 위해 골목을 지킨다고 생각해 보라. 그가 만약 가족이나 거느리고 있다면, 그 얼마나 딱한 일인가. 사기꾼 남편, 사기꾼 아버지, 사기꾼 아들...
약한 존재여! 그 이름 ‘외국인 관광객’. 갖고 있는 돈이나 신용카드, 패스포트 등을 송두리째 소매치기 당하여 어려움을 겪었다는 경험담들이 난무하는 요즈음이다. 낯선 외국 땅에 와서 두리번거리며 어려움을 겪는 관광객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상대로 사기나 치려 한다니. 참으로 고약한 일이었다. 소매치기와 사기꾼들의 나라로 정평이 나 있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터어키 등. 대 로마제국의 후예들, 대양을 누비던 무적함대의 후예들, 용감무쌍한 투르크 전사의 후예들이다. 지금 세계를 호령하는 서구문화가 로마에서 시작되지 않았는가. 유럽여행을 하면서 ‘대 로마제국’의 위용을 도처에서 확인하는 중이다. 그렇게 화려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족속들이 어이하여 소매치기나 사기꾼으로 전락한 것일까. 밤이 되어 식탁에 둘러앉으면 그들 역시 선한 아버지, 선한 남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일까.
화려한 빈의 뒷골목에서 처음으로 조우(遭遇)한, 어설픈 사기꾼들. 그간 친절한 외국인들만 만나다 보니 우리의 마음이 조금은 해이해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더욱 굳게 닫아걸라는 경고를 신께서 내리신 것이나 아닐지.
어쨌든 ‘유쾌하지 못한 추억 제1호’였다.
<계속>
**사진 위는 빈 시가지의 한 상가 벽에 붙은 그림-세라믹 그림, 아래는 11월 4일 오후 3시 50분에 넘은 체코 국경의 모습
200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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