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09] 체코 제1신(2) : 보헤미아Bohemia의 문화적 자존심과 아름다운 자유혼-체스케부데요비치Ceske Budej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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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3:51 조회 1,786회 댓글 0건본문
체코 제1신(2) : 보헤미아Bohemia의 문화적 자존심과
아름다운 자유혼-체스케부데요비치
Ceske Budejovice에서 체코 역사의 한
장을 만나다*
방향을 잘못 잡는 실수로 수십 킬로미터를 더 주행. 오후 4시 반이 넘어서야 칙칙하게 어둑발이 내린 체스케 부데요비치의 오타카르Premysl Otakar 광장에 도착. 막 문을 닫으려는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가까스로 숙소 정보를 얻었고, 광장 뒤쪽의 펜션 센트룸Penzion Centrum에 투숙할 수 있었다. 1박에 1200 크로네. 1 유로는 대략 30크로네로 교환이 되었다. 1박에 58유로였던 빈의 에탑호텔을 생각하면, 무척 비싼 편이었다. 서유럽과 비교가 안 되는 경제력과 물가를 감안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방의 안락함이나 아침식사의 질은 서유럽에 비해 오히려 나았다. 아내는 비싸다고 투덜댔지만, 주차비 포함 90유로에 하룻밤을 보낸 자르브뤼켄의 별 셋짜리 반호프호텔이나 120프랑에 1박을 한 스위스 알터슈테터의 게스트하우스 등을 떠올리기로 했다. 더구나 이곳은 알트슈타트의 센트룸 아닌가.
다음날(11월 5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오타카르 2세 광장Premysl Otakar Ⅱ Square에 주차한 다음 체스케부데요비치의 탐색에 나섰다. 광장은 넓었고, 광장 주변을 아름다운 건물들이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었다. 광장의 중앙에 높이 솟은 삼손파운틴Samson Fountain. 1721-1727년 요셉 디트리히Joseph Dietrich가 설계하고 세웠다고 한다.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비둘기 떼는 가끔씩 삼손파운틴 위를 빙 돌아 광장에 내려앉곤 했다. 누군가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비둘기들의 비행시각은 일정했다.
‘체코의 부데요비치’를 뜻하는 ‘체스케부데요비치’. 프렘즐 왕조의 오타카르 2세는 이곳에 새로운 왕실 도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1263년의 일. 그해 왕명을 받은 마스터 히르조Hirzo는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기로 했고, 그것이 이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 광장과 붙어 있는 수도원. 결국 히르조는 오타카르 광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정사각형의 도시, 체스케부데요비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오스트리아와 보헤미안 사이의 린츠루트Linz Route. 모든 물자들은 이곳을 통해야 했다. 그래서 당대의 부데요비치는 풍요를 구가했다. 특히 당시 부데요비치의 주민들은 수요가 많은 의류의 수출에 관심이 많았다. 부데요비치는 많은 특권들을 누렸고, 색슨족이 침입하여 프라하를 점령했던 30년 전쟁 당시에는 왕실의 보물들을 이곳에 감추어 두기도 했다. 1751년에는 이 지역의 중심이 되었던 부데요비치. 프라하로 물자를 운송하는 수상교통이 도입되고, 린츠까지 역마차의 레일이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조건물이 대부분이었던 이 도시. 1641년 7월 24일의 대화재로 7시간 만에 226채의 건물들이 전소되었다. 성 니콜라스 교회와 도시의 성벽들도 상당 부분 타버렸다.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들 대부분이 화재를 입었고,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은 그 후에 지은 바로크식 건물들.
광장 북쪽의 오른편 통로에 아름다운 탑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이름 하여 블랙타워Black Tower. 1549년 한스 블라흐Hons Vlach가 기초를 만들었고, 빈센체 보가렐리Vincenc Vogarelli가 70m의 높이로 세웠다. 그 바로 옆엔 성 니콜라스St. Nicholas 교회. 이 교회엔 성 아우라티안St. Auratian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오타카르 광장. 각 변이 133m의 정사각형, 매혹적인 중세 광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장 돋보이는 건물은 시청사. 1727-1730년 슈바르첸베르크Schwarzenberg의 건축가 마르티넬리Martinelli가 리모델링한 아름다운 건물. 지붕에는 양파 모양의 세 탑이 솟아 있고, 그 앞으로 네 인물의 동상이 서 있었다. 각각 정의, 지혜, 용기, 관용을 상징한다는 것. 이것들은 광장 안의 삼손 파운틴을 만든 요셉 디트리히가 만들었다고 한다.
광장 오른 쪽으로 보이는 도미니카 수도원. 수도원의 교회는 판화에 그린 성모 마리아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었다. 1713년 역병으로부터 이 마을이 구원받은 기적을 기념해서다.
마리아 교회 가까이에 있는 소금의 집Solnic. 소금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소금 저장고로 쓰이던 건물이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버드와이저 맥주였다. 한국에서도 자주 마시던 버드와이저의 원류가 바로 부데요비치라 한다. 이곳의 맥주를 마셔본 어떤 미국인이 그게 하도 맛있어서 버드와이저맥주를 만들어 세계에 유통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데요비치’를 영어로 발음하면 ‘버드와이저’란다. 황제 페르디난드 1세도 이곳의 맥주를 좋아하여 궁중에 조달하도록 했다고.
우리의 짐작에 부데요비치는 프라하와 린츠 혹은 빈의 중간쯤 되는 듯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을 프라하에 가는 중간 쉼터쯤으로 생각했다. 아무 부담 없이 이곳에서 하룻밤 묵은 다음 인근의 체스카크룸로프로 가서 이틀쯤 묵고, 그런 다음 프라하로 입성하려 했다. 그러나 이곳 역시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오랜 역사와 깊은 문화, 빛나는 경관 등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갈 길은 멀고 시간은 턱 없이 모자랐다. 앞으로 어떤 역사적 자취들이 우리를 기다릴지 알 수 없는데, 여기서 멈칫거릴 수는 없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체스키크룸로프로 서둘러 떠난 것도 그 때문이다.
*알파벳의 머리 부호들(ˇ, ʹ)을 이 컴퓨터에서는 처리할 수 없으므로 생략합니다. 서울에 돌아가서 해결하겠습니다.
<계속>
**사진 위는 체스키부데요비치Ceske Budejovice-시청사Radnice, Rathaus, Townhall, 아래는 체스키부데요비치Ceske Budejovice-니콜라우스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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