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15] 체코 제2신(2) : 피비린내로부터 승화된 문화와 예술의 자부심, 프라하의 향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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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4:10 조회 1,720회 댓글 0건본문
체코 제2신(2) : 피비린내로부터 승화된 문화와 예술의
자부심, 프라하의 향기(2)
그러나 이 다리를 만든 본래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28위의 성인들에 관련되는 이야기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분이 네포무츠키 성인St. Jan Nepomucky. 다리 동단의 문탑에서 프라하 성 쪽으로 오른편 15번째 성인이다. 28위 중 최고(最古)의 조각상으로 1683년 얀 브로코프Jan Brokoff에 의해 세워졌다.
네포무츠키 성인은 누구인가. 뵐플라인 가문 출신인 네포무츠키 성인. 그의 고향이 바로 보헤미아의 네포무츠키였다. 고향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던 것. 성인은 법학과 신학을 연구, 박사학위까지 취득. 프라하에서 사제로 근무하던 중 폭군 벤첸슬라프 1세에 의해 왕비 요안나의 고해신부로 간택되었다. 국왕의 미움을 사 결국 체포된 성인. 왕비의 고해내용을 털어놓으라는 왕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며 갖은 고문 끝에 블타바 강에 산 채로 던져졌다.
유해를 건져낸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대성당으로 옮겼고. 그 때부터 그는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킨 순교자’로 공경되기 시작했다. 1729년 3월 19일, 교황 베네딕토 13세 때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네포무츠키의 희생 역시 그 근원은 정치와 종교 간 갈등. 당시 왕과 주교간의 의견대립이 있었고, 왕과 입장이 달라 미움을 산 네포무츠키가 결국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에 던져진 바로 그 지점에 네포무츠키 성인의 상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카를 4세 자신과 그의 아들 벤첼라스Wencelas 4세, 그리고 그들의 나라가 28위 성인들에 의해 보호받기를 기원한 것이 이 다리의 본래 뜻이었다. 그 역사적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은 이 다리 위에서 프라하의 풍광에만 취했다가 제각각 구시가의 거리들로 흩어져 간다.
***
11월 8일(화) 오전 10시, 프라하 서북쪽의 숙소(Apartments J+B, Kochanova8, 169 00 Praha 6-Brevnov)에서 트램(22번)을 타고 프라하 시내에 진입. 숙소를 구하기 위해 전날 차를 몰고 센트룸의 인포메이션 센터를 방문한 바 있는 우리. 어쨌든 프라하 시내와는 구면이었다. 우리가 내린 니콜라스 성당St. Nicolaus Church 앞까지는 숙소 앞의 드리노폴Drinopol 역으로부터 15분 정도.
시내의 역에 내린 우리는 먼저 카를대교를 걷기로 했다. 기온은 좀 낮았으나 햇살은 좋았다. 좁으면서도 규모 있게 짜여진 골목골목.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아르누보 등등. 다양한 모습의 건축물들이 즐비한 프라하 시가지.
레써타운 쪽 교문(橋門)을 통과하자 그곳이 바로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다리 상판이었다. 다리 중간 네포무츠키 성인 상 앞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 이게 바로 프라하로구나! 드디어 터져 나온 우리의 탄성.
사람들은 카를 대교가 아름답다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카를 대교로부터 바라다 보이는 360도 시계(視界) 안의 프라하가 아름다운 것이다. 강안(江岸)에 연한 건축물들, 무수한 탑들,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 도시를 좌·우 둘로 나누며 흘러내리는 블타바 강. 우리에겐 독일식 발음 ‘몰다우 강’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보헤미아 고산지대에서 발원, 프라하 시가를 둘로 나누면서 흐르다가 북쪽 30km 지점에서 엘베강과 합류, 전장 435km의 만만치 않은 물길을 만들어내는 블타바 강.
그쯤 우리는 체코가 낳은 대음악가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체코인들의 애국심을 대변하는 그의 곡 <나의 조국>. 전체 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그 작품 가운데 제2번이 바로 <블타바>다. 국민 작곡가로 불렸을 정도로 민족주의를 견지했던 스메타나. 청각이 불완전했던 그의 만년, 고향 보헤미아에 칩거하며 완성한 작품이 바로 이 곡이었다.
드보르작Ant. Dvorak(1841-1904)에게 이어진 그의 음악을 흐르는 주제의식은 조국의 자연과 역사에 대한 찬양이다. 그것을 블타바 강에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카를대교를 건너는 우리의 시선은 두 갈래였다. 다리에서 인식되는 프라하의 역사, 그리고 현재의 아름다움이 그것들이었다. 전자는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과거와 미래였고, 후자는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프라하였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을 만큼 프라하는 역사적·미적 복합체였다.
<계속>
**사진 위는 구시가 광장 천문시계 탑에서 바라본, 안개 덮인 프라하 성, 아래는 구시가 광장 천문시계 탑에서 내려다 본 니콜라스 교회
200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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