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18] 체코 제3신(1) : 화려한 영광 뒤에 숨은 승자의 초조함, 그리고 문화-프라하 성의 알레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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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4:35 조회 1,392회 댓글 0건본문
체코 제3신(1) : 화려한 영광 뒤에 숨은 승자의 초조함,
그리고 문화-프라하 성의 알레고리
11월 9일(수). 안개와 구름이 가득하니 기온도 맥을 못 추는가. 겨울옷 아니면 살갗을 파고드는 썰렁함을 감당할 수 없다. 카를대교에서 수 없이 올려다 본 프라하 성에 가는 날. 프라하 성이 빠진다면 프라하 야경의 환상성은 사라지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동화 속의 공간’이라 표현한 프라하의 야경. 환상이 사라진 곳엔 칙칙한 현실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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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1월 8일) 우리는 이 땅에서 벌어진 피의 살육전을 잠시 떠올렸고, 그 증거가 될만한 공간들을 밟아 보았다. 이 땅에 피를 뿌린 성자들이나 대의를 위해 죽어간 이름모를 사람들. 그들 육신의 죽음은 현실적으로 패배였으나, 영원성을 얻음으로써 궁극적인 승리로 기록될 수 있었다. 프라하의 아름다움은 그들의 살과 피를 자양분으로 한 것이었다. 좋든 싫든 그 한 쪽에 ‘현실적인 승리자’가 위치한다.
그러나 승리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영원한 승자도 없듯이 영원한 패자도 없는 법. 가톨릭과 지배세력은 얀 후스를 장작불에 태워 죽였다. 그러나 그들도 그를 죽이기까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에게 죽음을 부여하는 일이야말로 그에게 영원한 영광의 삶을 부여하는 일임을, 영원한 삶의 보증이 되리라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라. 그를 죽인 자들은 역사의 조롱을 받고 있지만, 그는 지금도 당당히 살아 시가지 한 복판에서 천하를 호령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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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토 교회. 프라하 성에 가는 도중 만난 ‘호화로운’ 교회였다. 17세기 전반에 건립된 성모 마리아 교회.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로레토 하우스Loreto House 즉 산타 카사Santa Cass는 원래 마리아가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수태고지(受胎告知)을 받은 팔레스타인의 나자렛에 있던 집이었다. 빌라도 총독의 핍박을 피해 이집트로 갔던 요셉의 가족이 돌아와 예수가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나중에 천사들이 이탈리아의 로레토로 옮겼다는 전설이 있었고. 화재로 원형이 소실될 때까지 도처에 많은 모방작들이 건축되었으며, 프라하의 로레토 교회도 그들 중의 하나. 신교 측과의 전쟁에서 이긴 후 지어진 가톨릭 교회들 중의 하나다. 아름답고 호화로운 외관과 보물전 등. 이 건물에서 승자의 초조함을 느꼈다면 지나친 역설인가.
로레토 거리를 걸어 내려가 만난 흐라트차니 광장Hradcanske namesti. 그 곁엔 대주교 궁Archbiskupsky과 슈바르첸베르크 궁Schwarzenbersky palac이 있었다. 전자는 로코코 양식의 건물로 16세기에 건축되었고, 영화 <아마데우스>의 촬영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후자는 르네상스 양식의 군사박물관. 현재는 공사 중이었다.
프라하 성. 1200년 넘게 체코 지역의 정치적 중심 역할을 해온 곳. 9세기 프레미슬 왕조의 보르지보이 왕이 건설을 시작, 14세기 카를 4세 시대에 완공된 성. 16세기 말 프라하에 궁정을 둔 합스부르크 가의 루돌프 2세 덕에 프라하는 번창했고, 마티아스 왕이 빈으로 옮기자 프라하는 다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 후 마리아테레지아 시대에 크게 손을 보았으나 성의 쇠락은 지속되었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이루어지면서 대통령의 관저로 쓰이기 시작했고, 지금도 대통령의 집무실과 영빈관이 있는 곳.
이 성의 입구는 크게 세 개. 흐라트차니 광장의 서문, 말라스트라나 방향의 동문, 성 정원 쪽의 북문이 그것. 12시 10분전 서문에 도착한 우리는 운 좋게도 매일 정오에 벌어지는 위병 교대식을 관람할 수 있었다. 경복궁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수문장 교대식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규모가 크고 성대하여 과연 관광 상품이 될 만 했다.
<계속>
**사진 위는 프라하성 정문에서 벌어진 위병 교대식을 구경하는 관광객들, 아래는 성 안의 비투스교회
200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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