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73] 독일 제16신(1) : 알펜가도에서 만난 린덴베르크Lindenberg, 그 풍요로운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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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0:41 조회 1,740회 댓글 0건본문
독일 제 16신(1) : 알펜가도에서 만난 린덴베르크
Lindenberg, 그 풍요로운 아름다움
18일 아침, 햇살 고운 목장의 하루가 밝았다.
아름다운 라우펜엑의 숙소에서 하룻밤 단잠을 자고난 우리.
‘우움! 우움! 우움! 우움!’ 목장으로 나가면서 우두머리 젖소가 내지르는 소리에 우리는 잠을 깼다. 창문을 열어젖히니 그 우두머리를 선두로 보무도 당당하게 집 앞 풀밭으로 나가는 젖소들의 행렬이 바로 눈 아래 펼쳐졌다. 장관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눈을 뗄 줄 몰랐다.
어릴 적, 봄부터 가을까지 매일 새벽 소 한 바리를 끌고 서너 마장 떨어진 바닷가 모래밭으로 데리고 나가던 기억.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오른쪽 뿔이 찌그러진 순하디 순한 암소였다. 소가 영물임을 나는 그 시절부터 체험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를 귀찮아했지만, 그는 나를 참으로 좋아했다. 더운 여름날 오후 뙤약볕 속에 그를 데리러 모래밭으로 가면 내가 눈에 띄자마자 ‘움머어~’소리를 연방 내지르며 좋아했다. 그를 끌고 모래밭의 둠벙에 물 먹이려 끌고 갈라치면 네 굽을 놓고 앞서 달려가는 것이었다. 더운 여름날 하루 종일 얼마나 목이 말랐을까. 배 터지게 물을 마시고는 그윽한 눈길로 나를 한동안 쳐다보곤 했다. ‘쬐끄만 녀석’을 쳐다보며 큰 눈으로 고마움을 표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모래언덕을 내려갈 때쯤 장난기가 발동하면 자신의 머리로 내 엉덩이를 들이받아 모래밭에 메어치기 일쑤였다. 그가 내게 보일 수 있는 우정의 표현이었는데. 나는 몹시 화가 나서 고삐를 코뚜레에 걸어 이리저리 잡아챘다. 그러면 그는 매우 아파했다. 그렇게 우리는 정이 들었는데. 결국 그 소는 얼마 후 팔려갔다. 자꾸만 고개 돌려 우리 집을 쳐다보며 소장수에게 끌려가는 그의 모습. 아버지의 눈에서 반짝이는 눈물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고, 내 마음의 상처도 한동안 낫질 않았다.
독일 농촌에 와서 소와 관련된 어릴 적의 애틋한 추억을 되살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솔솔 풍겨오는 쇠똥 냄새도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다.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엘 가니 주인 아줌마가 집에서 짰다며 신선한 우유를 내온다. 참으로 상큼하구나! 알펜가도에서의 하루는 이처럼 상쾌한 기분으로 시작되었다.
***
아침 식사 후, 숙소에서 10km 정도 떨어진 린덴베르크에 갔다. 알펜가도 알고이Allgau 지역의 핵심. 사방으로 둘러싼 높은 산들. 부드럽고 질 좋은 초지(草地)와 울창한 숲. 가까운 콘스탄츠호의 영향을 받는 온화한 기후. 과일과 와인, 우유와 치즈가 풍성한 곳. 또한 눈이 많이 내려 겨울엔 동계 스포츠 매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
우린 이런 것들 말고 무언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시내는 깨끗하고 조용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오는 두 개의 첨탑이 있었다. 가톨릭 성당인 슈타트파르키르헤Stadtpfarrkirche. 그러나 가 보니 두 개의 탑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정작 큰 탑은 뒤쪽에 있었고, 그 위에 예수님이 서 계셨다. 그리고 앞의 두 탑보다 작은 탑들 두 개가 예수께서 서 계신 탑을 좌우에서 옹위하고 있었다.
이 교회의 내부 역시 화려했다. 예수께서 빌라도로부터 사형언도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힌 다음 부활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14개의 그림. 사실적이면서도 처참한 분위기의 내용들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이 놓이는 게 있었다. 좌석에 신도들의 무릎 방석을 담은 주머니가 꽤 많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찾은 대부분의 성당들은 규모에 비해 신도가 그리 많지 않은 듯 했다. 실제 주일 미사에 가보아도 한 부분만 채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 성당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있는 동안에도 신도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이 지역 공동체의 핵심이 이곳 성당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이 성당보다 오래 된 아우렐리우스 교회Aureliuskirche. 뒤편에 무덤들이 많았다. 이 지역 전몰용사들을 추도하는 코너가 마련된 이 교회의 외벽. 용사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앞 쪽에 커다란 예수고상이 걸려 있었다. 아름다운 묘비들과 별도의 꽃밭들을 갖춘 무덤들이 특이했다. 햇살 고루 비추는 그 시각, 무덤들은 행복해 보였다. 무슨 이유로 성당의 뒤뜰에 묻히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대부분 그 지역의 공로자들이거나 교회에 기여한 사람들일 것이다.
마침 임시 추도미사가 있었다. 젊은 신부님이 집전하는 그 미사에 참석한 동네 사람들은 20여명쯤 되었다. 모두들 검은 색 정장을 갖추어 입은 것으로 미루어 망자의 친구들인 듯 했다. 엄숙하면서도 약간은 생소한 의식을 체험한 행운의 기회였다.
성당을 빠져나온 우리가 찾은 곳은 모자 박물관. 시내 한 복판에 있었다. 전통 방식으로 모자를 찍어내던 기계도 있었고, 시대별로 진열된 각종 모자들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어릴 적 시골에서 많이 쓰고 다니던 정겨운 밀짚모자. 그 원형을 여기서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데 왜 모자 박물관이 이곳에 있을까. 바로 이 지역이 모자의 명산지란다. 세계인들이 즐겨 쓰는 모자들이 지금도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모자가 없으면 하루도 견디지 못하는 내게 모자 박물관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모자 박물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시내를 걸었다. 이곳의 건물들의 벽에는 그림들이 많았다. 우산을 파는 가게 건물에는 우산을 든 신사 숙녀의 그림이, 빵 가게에는 맛있는 빵 그림이 붙어 있기도 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건물들과 고풍스런 그림들. 시각적인 광고효과를 노린 것들이겠지만, 그런 그림들로 인해 도시는 훨씬 아름답고 정겨워 보였다. 그렇게 린덴베르크에는 어둠이 내려 덮이고 있었다.
<계속>
**사진 위는 독일 린덴버그-슈타트파르키르헤Stadtpfarrkirche, 아래는 라우펜엑Laufenegg의 농가-Ferienhof Michael und Karin Lingenhel의 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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