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81] 독일 제18신(2) : 독일인의 미학 훔쳐보기, 오버아머가우Oberammergau와 미텐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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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0:55 조회 1,737회 댓글 0건본문
독일 제18신(2) : 독일인의 미학 훔쳐보기, 오버아머가
우Oberammergau와 미텐발트
Mittenwald의 담벼락 그림들(2)
독일인들의 미학은 무엇인가. 아니 그들의 성격은 어떤가. 유럽에 오기 전 여러 사람들로부터 독일과 독일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체로 투박하고 원리원칙에 투철하며 명철한 구석도 가끔 보인다는 것. 게르만의 민족성까지 들먹이면서 역설하는 말을 들어보면 대체로 ‘재미없다는’ 쪽이 우세였다.
그러나 그들의 미의식에 대해서만은 선입견들을 크게 수정해야 하리라 본다. 우리가 보기에 독일인들만큼 조화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 몇 나라를 돌아보면서 갖게 된 단편적 느낌이다. 개별과 전체의 조화, 자연과 인간의 조화, 현실과 이상의 조화 등등. 독일의 마을들 특히 농촌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과 인간, 개인과 전체를 조화시켜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그들의 독특한 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계곡들 사이와 강 가 등 양지 바른 평원에 터를 잡고 부락을 이루며 사는 그들. 중뿔나게 튀어나는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없다. 모두 그만그만하게 조화를 이루며 산다. 그러나 각자의 집을 치장하는 것은 또 모두가 남다르다. ‘튼실하게 집을 짓고 아름답게 꾸미고 산다’는 공동의 목표라도 있는 듯. 그들의 집과 마을은 매우 아름답다. 그들의 아름다움은 획일 아닌 조화에서 나온다. 획일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생긴다. 그러나 조화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균형의 아름다움이다.
우리가 이틀을 묵었던 라우펜엑의 농가. 아침마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집 앞 텃밭에서 일하는 그 집 노 할머니를 보았다. 채소나 곡식이 아니라 꽃을 가꾸고 있었다. 자기 집 창틀의 장식에 소요되는 꽃을 스스로 조달하는 일이었다. 우리의 선입견대로 실용 지향적인 독일인이라면 응당 곡식을 심어야 할 것 아닌가. 어찌하여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꽃을 심어서 자기 집 창틀에 올린단 말인가.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이 늦가을에도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창틀을 보며 우리는 독일인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는 그 원인 중의 하나로 자연을 꼽았다. 알펜가도를 달리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목격했고, 그 속에서 자연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독일인들을 보게 된 것이다. 험준한 산악이 나오는가 하면 널따란 초원이 나오고, 울창한 숲이 나오는가 하면 맑은 시내와 호수가 나오는 곳. 그 사이에 꽃도 피고, 소들의 방울소리가 딸랑거리고, 새들은 운다. 15분마다 교회로부터 종소리는 울려 퍼지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또한 어김이 없다.
이 속에서 독일인들의 미학도 나왔을 것이다. 칸트를 위시한 독일 미학의 꽃이야말로 그 원천은 빼어난 독일 자연이 아니었을까.
***
오버아머가우에 들렀다. 건물이란 건물의 벽에는 모두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가게마다 대부분 목각인형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목각 공방도 꽤 많았다. 이 지역민들 상당수가 기술자들이라 할 만큼 목각은 주된 삶의 수단이었다. 말하자면 나무로 온갖 것들을 다 만드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였다. 그러나 목각은 생각보다 비쌌다. 만드는 자와 사려는 자의 예술적 관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건물들의 벽에 그려진 대형 프레스코화. 대개 사실적인 벽 그림들이 자칫 ‘촌스럽게(?)’ 보일 수 있으나 이 지역의 그것들은 달랐다. 바로 자신들의 삶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백 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보존될 집들에 그림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남기려 했던 것일까. 암호화된 추상화가 아니라 지극히 단순한 구상화를 통해서. 그래서 지금 그들의 후손은 그 그림과 목각을 밑천으로 삼아 관광수입을 톡톡히 올리고 있는 것이리라.
그림들 가운데는 수백 년 된 것들도 수두룩했다. 우리라면 김홍도나 장승업 등의 풍속화에서나 봄직한 시대의 화려한 그림들이 마을의 벽 어디에나 그려져 있었다. 그 뿐인가. 발걸음을 옮기기가 무섭게 나타나는 분수대나 조형물들 모두 예술품들이었다. 주로 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것들. 나무가 풍부한 그곳에 맞는 예술미의 발견이었다.
마을 한 복판의 필라투스하우스Pilatushaus. 프레스코 화의 당대 최고봉 프란츠 제라프 츠빙크Franz Seraph Zwink의 걸작들로 담벼락을 장식한 집.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정원도 일품이었고, 정원 한 쪽 구석에는 큼지막한 예수고상이 세워져 있었다. 예수고상을 보고 언뜻 ‘필랫Pilat'이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로마인 총독 ‘빌라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확인해보진 않았다. 안에 들어가니 목각 공방이 차려져 있고, 공장(工匠) 서너 명이 작업 중이었다. 그리고 한 구석에 서 있는 막시밀리안 2세의 등신대(等身大) 목각상. 2백년은 족히 되어 보였다. 막시밀리안 2세. 바바리아의 국왕이자 호엔슈방가우 성의 주인이자 비운의 왕 루드비히 2세의 아버지. 루드비히가 그토록 애착을 가졌던 린더호프 성 역시 이곳으로부터 몇 km 떨어지지 않았고. 이곳이 그들의 본거지였음은 여기서도 분명해졌다.
벽 그림들 중엔 기독교를 소재로 한 종교화가 많고, <<빨간 모자>>, <<헨젤과 그레텔>> 등 동화를 그린 것도 있었다. 목각 또한 십자가, 예수(고)상, 성모 마리아, 기독교 성인 등 기독교를 내용으로 한 것이 압도적인데, 왜 그럴까. 1633년 유럽 일대에 페스트가 유행하여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죽어나갔음에도 이 마을만은 무사했다는 것. 그것을 감사하며 이 마을에서는 10년마다 한 번씩 <예수 그리스도 수난극Passion Spiel>을 상연하고 있다고.
마을 어귀에 있는 ‘예수수난극장Passion Play Theatre’. 큰 규모의 훌륭한 극장이었다.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수난극 이 외에도 수시로 연극을 상연하거나 무대예술들을 올림으로써 이 지역 문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이렇게 우리는 종교적으로 예술적으로 뿌리 깊은 그들의 자존심을 확인했다. 동시에 독일인들이 지닌 미학의 한 부분도. 실생활에 뿌리를 둔 예술만이 오래 지속될 수 있고 더 창조적일 수 있다는 독일인들의 미학을.
22일 오후에 들른 미텐발트에서도 그 점을 확인했다. 해발 2385m의 카르벤델Karwendel산이 우뚝한 국경 도시 미텐발트. 그 산 하나만 넘으면 오스트리아였다. 미텐발트의 시가지에서도 우리는 벽그림들을 만났다. 오버아머가우에 비해 양적으로는 뒤졌으나 더 고풍스러웠다. 벽그림들과 함께 목각예술을 자랑하는 오버아머가우. 그러나 미텐발트는 벽그림과 함께 바이올린 산업을 자랑했다. 이곳에 바이올린 제작기술을 전한 마티아스 클로츠M. Klotz(1653-1743). 바이올린 제작 기술이 전해진 후 그것은 이 지역의 핵심 산업으로 정착했다고. 성당 앞 광장에는 바이올린 만드는 모습의 클로츠 동상이 서 있고, 시내에는 바이올린 명장 안톤 말러Anton Maller의 집도 있었다.
시내 한 복판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그 주변의 노천까페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커피 한 잔과 벽에 그려진 그림들과 끊임없는 대화. 석양 무렵 카르벤델의 그림자 속으로 독일인들의 미의식이 배어나는 미텐발트는 그렇게 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룩으로 달려가고...
<계속>
**사진 위는 독일 미텐발트-프레스코화로 벽면을 장식한 아름다운 집, 아래는 독일 알펜가도의 오버아머가우Oberammergau의 '예수수난극장Passion Play Theatre'
200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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