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89] 오스트리아 제3신(2) : 호수에 가라앉은 마음을 건지는 곳, 할슈타트Hallstat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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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1:08 조회 1,796회 댓글 0건본문
오스트리아 제3신(2) : 호수에 가라앉은 마음을 건지는
곳, 할슈타트Hallstatt(2)
할슈타트에 도착했으나 기대했던 소금광산은 바로 이틀 전 하절기 관광을 끝내고 잠정 폐쇄 되었다고. 도착하던 날 폐쇄된 붸르펜의 얼음동굴에서도 우린 절망을 했었는데, 할슈타트의 오늘 또 한 번 쓴 맛을 보아야 했다. 비수기의 대가치곤 매우 비싼 셈이었다. 언제 다시 와서 소금광산의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 대신 우리는 좁좁하면서도 아름다운 할슈타트의 모든 것을 즐기기로 했다. 차를 두고 온 홀가분함 덕분이었다. 구시가지는 참으로 좁았다. 간신히 차 두 대가 교행할 수 있는 도로가 대부분이고, 차 한 대 만 통할 수 있는 길들도 많았다. 그러나 호숫가 언덕에 겹쳐 지은 집들은 아름다웠다.
그 좁은 곳에도 있을 건 다 있었다. 거리를 걷던 우리는 작지만 아름다운 박물관에 들어갔다. ‘할슈타트의 7000년’이 박물관의 테마였다. 선사시대부터 이곳에 지금과 같은 마을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을 유물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었다. 시각 효과 뿐 아니라 음향효과도 만점. 이 지역 번영의 기반이 소금광산이었음을 박물관은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작은 마을의 아름다운 박물관. 우리의 마음에 전해진 건 잔잔한 감동이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마르크트 광장의 교회. 오스트리아에서 드물게 보는 개신교회였다. 오스트리아 문화유산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었으며, 높은 첨탑이 인상적이었다. 놀라운 건 내부구조에 가톨릭의 냄새가 많이 배어있다는 점. 벽에는 예수고상도 걸려있고, 무릎 걸이만 떼어져 있을 뿐 좌석도 가톨릭교회의 그것들과 같은 모양이었다. 마침 교회를 돌아보고 있던 수녀 한 분에게 물었다. 이 교회가 가톨릭인가 아니면 프로테스탄트인가. 단도직입적으로 ‘에반겔리셰 쳐취’란다. 개신교회란 말이었다. 유럽 일대를 돌아다니며 번번이 개신교회에서 가톨릭의 냄새를 맡게 되는데, 그것은 구교와 신교가 분리되기 이전의 시대가 길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신교회를 나와 찾은 곳은 언덕 위에 있는 성당이었다. 규모도 대단하려니와, 내부구조 또한 독특했다. 제대 앞에 걸린 첨탑모양의 금빛 장식물들. 놀랄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예술품이었다. 교회를 돌아가며 뒤쪽으로 묘소들이 즐비했다. 십자가, 예수고상, 꽃들로 장식된 묘소들. 공동묘지의 음침함보다는 평화로운 쉼터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묘소를 갖춘 교회가 그래서 아름다운 듯. 더구나 앞에는 파란 호수가 펼쳐져 있고, 하늘에선 찬란한 햇살까지 쏟아지고 있었다.
우린 연락선으로 호수를 건넜다. 할슈타트 건너편엔 기차역이 있었고, 대부분의 배낭여행객이나 주민들은 그 열차를 이용했다. 역에 내려 연락선을 타면 할슈타트로 건너갈 수 있었다. 호수를 가로질러 가며 파란 하늘과 호수, 그리고 알록달록한 할슈타트를 감상했다. 주위로 높이 둘러쳐진 산들과 어울린 할슈타트는 그림보다 ‘이뻤다’. 무거운 짐을 메고 열차로 이곳에 내리는 배낭족들은 이 배 위에서 비로소 할슈타트와 만날 것이다. 얼마나 찬탄들을 할까. 그러니 여행기들을 남기는 배낭족들이 이구동성으로 할슈타트를 찬양하는 것이겠지.
한국에서 노래 부르듯 할슈타트를 그리워하던 아내. 상상과 실제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지 오늘 하루 부쩍 불만이 많아졌다. 아마도 얼음동굴과 소금광산 때문이리라.
배에서 내린 우리는 잠시 트레킹을 즐겼다. 할슈타트에서 보이던 하얀 성 밑으로 나 있는 오솔길. 길 위엔 낙엽이 복닥하게 덮여 있었다. 그 오솔길 위 쪽으로 철길이 나 있었다. 그 철길로 가끔씩 도시 간 셔틀 열차가 괴성을 지르며 달리곤 했다. 깨끗한 햇살의 세례를 받으며 우리는 배고픔도 잊고 걸었다. 길을 잘못 들어 말 목장까지 통과하느라 피곤하긴 했으나, 그게 무슨 대수이랴.
***
꿈의 할슈타트. 이곳에서 소금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천년 경부터라고. 그 소금은 각지로 운반되었고, 이 지역은 부를 구가했을 것이다. ‘할슈타트 시대’로 불린 기원 1000년부터 500년 사이의 기간도 그로부터 가능했을 터. 어쩌면 지금 새로운 ‘할슈타트 시대’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호숫가에서 졸고 있는 할슈타트를 꿈꾸었다. 꿈속에 잠긴 할슈타트를 살짝 깨워 며칠 동안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할슈타트는 잠을 자고 있지도 않았고, 더욱이 꿈도 꾸고 있지 않았다. 너무나 생생하게 ‘또록또록’ 눈알을 굴리며 영악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남은 호수는 외로운 듯 했다. 그래서 우리는 호수를 한 바퀴 반이나 돌았고, 배를 타고 건너기도 했다. 외로운 호수의 말벗이 되어준 것이다. 호수에 우리의 마음을 비춰보기도 하고, 헹궈내기도 했다. 산들은 그 자리에서 늘상 그러는 것 같았다. 사람들만 그렇게 하지 않는 듯 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직한 산들에게 호수를 부탁하고 다시 길을 떠나기로 했다.
<계속>
**사진 위는 할슈타트 구 시가지 모습, 아래는 할슈타트호수를 배로 건너면서 바라본 할슈타트 모습
200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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