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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91] 오스트리아 제4신(1) : 소금광산에 핀 애국의 예술 혼, 그리고 로제르Loser의 햇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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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1:11 조회 1,66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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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제4신(1) : 소금광산에 핀 애국의 예술 혼, 

                              그리고 로제르Loser의 햇살(1)




 10월 29일(토). 날씨 맑음. 할슈타트 인근 오버트라운의 숙소를 떠난 우리는 1시간 가까이달린 끝에 알트아우스제Altaussee의 소금광산 ‘보물산Berg Der Schatze'에 도착. 1시간 정도 광산의 내부를 관람한 후 보물산 건너편 해발 1800m의 로제르에 오름. 1600m 지점까지 차를 타고 올라 레스토랑 로저베르크바넨Loser Bergbahnen에서 점심. 점심 후 산 정상 아래의 분화구 호수까지 트레킹을 즐긴 후 오후 3시 넘어 린츠Linz를 향해 출발. 린츠에 들어와 숙소를 찾아 한동안 헤맴. 7시경 린츠 인근 아스텐Asten에서 한 주유소(Agip-Tankstelle Josef Landl) 주인의 호의로 게스트하우스 스퇴그뮐러Gasthaus Stogmuller에 투숙. 


             ***


 김형! 

 잘츠부르크에 입성한 10월 24일 이래 우린 아직도 오스트리아의 잘츠카머굿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소. 어제의 할슈타트를 끝으로 이곳을 떠나볼까 했지만, 그게 그리 쉽진 않구려.  깨끗한 자연, 수려한 풍광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점이야 오스트리아 어딜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사실 우리로선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것이오. 바로 소금이오. 

 붸르펜에서도 소금광산을 보지 못했고, 할슈타트에서도 그랬소. 할슈타트를 빨리 보고 싶다는 일념과 할슈타트에도 멋진 소금광산이 있다는 점 때문에 붸르펜의 소금광산을 지나쳤는데, 정작 할슈타트의 소금광산은 우리가 도착하기 하루 전에 여름 투어를 끝내고 폐쇄되어 있었소. 그래서 약간 일정을 바꾸어 알트아우스제의 소금광산을 찾게 된 것이오. 사람들은 알트아우스제의 소금광산이 붸르펜이나 할슈타트의 그것들보다 연조도 얕고, 이벤트 마저 소략하다고들 합디다만. ‘꿩 대신 닭’일지언정, 두 곳 모두에서 소금광산을 만나지 못한 우리로선 어쩔 수 없었소.

 ‘그깟 소금, 뭣 하러 그리도 보고 싶어 하오?’ 이렇게 물어도 할 말은 없소. 그러나 난 유럽에 오면서 잘츠카머굿과 소금, 그리고 ‘소금광산’이란 말 자체에 큰 흥미를 느꼈소. ‘소금밭’ 즉 염전에서 ‘만들어내는 소금’만이 진짜 소금은 아니라는 것. 암염(巖鹽) 상태의 소금을 캐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배운 적은 있소. 왜 역사책에도 나오지 않소? 중세에 소금은 백금보다 귀한 물건이었다고. 그래서 ‘소금’ 아닌가요? 소금 없다고 생각해보오. 우리가 매일 달고 사는 배추들과 그 많은 고기들을 어이 먹을 수 있겠소? 

 중세기 화학자들에게 소금은 아주 매력적인 물질이었던 듯 하오. 고체이면서 물에 녹고, 물의 상태에서 다시 고체로 굳어버리는 가역성(可逆性) 말이오. 모종의 화학적 자극을 가하면 크리스털로도 바뀐다는데, 정말인지는 알 수 없소. 모르겠소. 그들이 몰두했다는 연금술과도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나는 서해안 갯벌 출신이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고향 인근에 염전이 꽤 있었소. 지금은 중국산 저질 소금을 들여다가 국산소금으로 ‘세탁하는’ 간이역 정도로 몰락했다지만,  서해안 염전 날리던 한 시절도 있었소. 어린 시절 가끔 그곳을 지나쳐 다니던 적이 있었소. 뙤약볕이 내려 쪼이는 길가에 앉아 소금 만드는 과정을 관찰하던 꼬마 백규를 좀 상상해 보시오. 염부(鹽夫)들이 수차(水車)로 염전에 퍼 올린 바닷물. 꽤 오랜 시간 따가운 햇볕을 쪼이면 바닷물은 증발되고 희끗희끗 소금발이 보이기 시작하오. 염부들은 고무래를 들고 그 소금발을 ‘스을슬’ 염전 중앙으로 긁어모으기 시작하고. 그렇게 한동안 하다보면 염전 한 복판엔 하얀 소금의 산이 생기는 것이오. 그걸 큰 바구니에 긁어 담소. 두 개의 바구니를 연결한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영차영차’ 소금 창고로 나르는 게 염부들의 마지막 작업이었소. 고된 작업이지요. 우리의 밥상에 늘 오르는 소금. 그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자라온 나요. 나 같은 촌놈과 다른 형은 삼겹살 집에서 ‘기름소금!’을 외치면서 서해안 염부들의 땀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지나 모르겠소.  

 사설이 길어졌지요? 그래서 우린 오늘날의 잘츠카머굿을 만든 소금의 존재를 보고 싶었던 것이오. 잘츠카머굿의 부를 이룬 소금광산. 이 지역에서 800여년이나 캐온 소금. 과연 지금도 땅 속에 들어가 소금덩어리를 캐고 있는지. 철이나 금, 석탄이야 워낙 고가(高價)이니 막장에 들어가 고생하며 캐낼 만 하다지만, 글쎄 소금을 캐러 그런 막장에 들어간다면?

 

<계속>


**사진 위는 알트아우스제Altaussee의 소금광산Berg der Schatze에서 입장하기 위해 옷을 덧 입은 모습, 아래는 알트아우스제Altaussee의 소금광산Berg der Schatze에서 캐낸 소금으로 만든 램프


200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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