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03] 오스트리아 제7신(4) : 문화와 예술, 그 열정이 출렁이는 너른 바다, 빈Wien-슈테판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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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3 13:18 조회 1,772회 댓글 0건본문
오스트리아 제7신(4) : 문화와 예술, 그 열정이 출렁이
는 너른 바다, 빈Wien-슈테판의
충격
11월 3일. 자욱한 안개가 빈을 덮었다. 어제 늦은 시각 젠트룸의 슈테판 성당과 광장을 들렀고, 주변의 거리를 걸었다. 빈의 시가지는 토요일 오후의 명동만큼이나 붐볐다. 관광객 뿐 아니라 대부분의 빈 시민들이 몰려나온 듯, 어깨를 부딪치며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멋을 아는 빈 여성들. 대부분 짙은 화장에 패션감각 또한 뛰어난 그녀들이었다. 다른 유럽 여성들과 달리 날씬한 몸매를 우아하게 흔들고 지나가면 빈의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초라해지는 듯 했다.
저녁에 본 슈테판 성당의 감동을 아침에 다시 확인하고자 했다. 화려하되 요란하지 않고, 웅장하되 위압적이지 않은 슈테판 성당. 네 개의 화려한 탑을 가진 중세 교회 슈테판. ‘네 개의 탑’은 라인란트Rhineland 지역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지던 왕실 성당들의 전통과 직결된다.
서탑은 65m, 남탑은 137m, 아직 미완성인 북탑은 이보다 약간 더 크다. 12세기에 건축된 작은 교회를 바탕으로 14세기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4세가 고딕양식으로 다시 지은 슈테판. 성당 내부에는 흥미로운 몇 가지 물건들이 있었다. 하나는 네이브 왼쪽의 설교단. 1513년 필그람Anton Pilgram이 제작한 것이다. 설교단 밑 부분에 작은 계단들이 있고, 그 아래에 창문을 열고 상반신을 내민 필그람 자신의 모습이 붙어 있다. 앞쪽 벽의 오르간 대 아래에도 컴퍼스와 저울을 손에 든 필그람의 모습이 마찬가지로 붙어 있다. 특이한 경우였다. 다음은 북탑 아래 벽에 모셔져 있는 15세기의 조각작품 ‘고통의 예수 상’. 속칭 ‘치통의 그리스도’라 부르지만, 호사가들의 근거 없는 말장난일 것이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북탑에 올랐다. 터키 군이 도망가면서 남긴 180개의 대포를 녹여 만든 종을 보았다. 1711년의 원형을 모델로 1957년에 만들었다는데, 연말연시에 한두 번 타종한다고 한다. 그리고 안개에 갇힌 빈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꽉 짜인 시가지가 아름답다. 내려다보이는 광장들에는 물결을 이룬 관광객과 시민들. 빈 시가지는 한가할 여유가 없었다.
북탑에서 내려와 찾은 곳이 바로 카타콤베. 성당의 지하묘지였다. 따로 입장료를 받고, 제한된 인원만 입장시키는 그곳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 공간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합스부르크가 역대 황제들의 내장을 안치한 납골당. 황제가 죽으면 심장은 아우구스티너 교회, 그 밖의 내장은 슈테판 성당, 유골은 카푸치너 교회의 지하 납골당에 안치했다는 것. 황제들의 내장을 담은 그릇들이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이름 모를 시민들의 유골들이 쌓인 공간. 전 유럽을 휩쓴 페스트는 1679년 빈을 덮쳤다. 수천 명이 죽어나갔고, 누구의 말에 의하면 2천명의 시신이 이곳에 가매장되거나 태워졌다는 것. 육탈(肉脫)되고 남은 해골들이 가득 쌓인 공간을 우리는 벽의 작은 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시신을 쌌던 헝겊 조각과 시신을 올려놓았던 나무판은 얼마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시신들은 머리뼈 따로, 다리뼈 따로 무질서하게 누워 있었다. 타고남은 사람들의 뼈가 가득한 방도, 그 뼈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방도 있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을 원혼들, 페스트에 희생된 그들을 생각했다. 인간을 구원한다는 종교의 힘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계속>
**사진 위는 슈테판 대성당, 아래는 슈테판성당 카타콤베 안의 해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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