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64] 스위스 제3신(3) : 지상의 낙원인가, 한계를 넘은 생존인가-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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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0:04 조회 1,703회 댓글 0건본문
스위스 제3신(3) : 지상의 낙원인가, 한계를 넘은 생존
인가-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에서
들은 태고의 굉음(2)
존경할만한 스위스 국민들이었다. 거미처럼 절벽에 붙어사는 그들. 발 디딜 틈만 있으면 삶의 뿌리를 내린 그들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산악열차였다. 등산장비 제대로 갖춘 전문 산악인들도 헤매기 십상인 돌산을. 밤나무벌레 밤톨 뚫듯, 그곳을 말끔히 뚫어 레일을 깔고 역사(驛舍)를 지어냈다. 라우테브루넨의 숙소에서 하염없이 건너편 산 정상 가까이의 아스라한 마을들을 올려다보던 우리. 의문이었다. 대체 저들이 거미인가 인간인가. 교통수단은 무엇인가. 그런데 잠시 후 골짝을 울리는 소리. 비유는 좀 뭣하지만, 송충이가 나무줄기를 기어오르듯, 그림 같은 산악열차가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을 천천히 기어오르는 것이었다. 아하, 바로 저거였구나. 사람이 있는 곳에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집이 있고 쇠 방울 딸랑거리는 소나 양도 있었으며 탈 것도 있었다. 그들과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산악열차. 참으로 튼튼하고 정감 가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을 올려다보며 우리는 미국의 산악지대에서 흔히 보던 ‘마운틴고트mountain goat’를 떠올렸다. 수직의 돌벼랑을 디디고 살아가는 마운틴고트들.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그런 척박한 삶을 택한 것이다. 그 벼랑에서 사랑을 나누고 올망졸망 새끼들까지 키우는 그들을 보았다. 어느 맹수가 그들을 범접이나 할 수 있으리.
역사상 그들을 괴롭힌 주변의 강국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 둘러싸인 스위스. 산골짝뿐인, 타고난 땅덩어리. 그걸 운명으로 체념하지 않고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바꾼 그들. 남을 침탈하기보다는 남들이 침탈해오지 않도록 벼랑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그들. 천혜의 요새 속에서 자기방어의 본능을 공존의 철학으로 승화시킨 그들이었다. 한국의 백규 부부까지 찾아와 찬탄을 금치 못할 지경이니 세계의 관광객들이야 그 얼마나 몰려오리. 물가는 좀 비싸지만, 그것 역시 그들을 탓할 일만은 아닐 터. 비싸도 세계인들이 몰려오는 이유. 단순히 경치가 좋아서일까. 아닐 것이다. 침탈 당해온 역사, 그 교훈에서 새로운 삶의 원리를 찾아낸 그들. 그것을 관광이라는 굴뚝 없는 산업으로 전환시켜 세계인들의 호주머니를 털게 하는 그들. 쓴 돈 아까워하지 않도록 하는 그들이었다. 한 세기 가까이 타고 다닌, 덜컹대는 산악열차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도 태연하게 천 길 나락 밑의 경치를 즐기는 세계인들. 시련의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삶의 원리를 개발한 스위스 국민들을 신뢰하기 때문일 것이다.
흡사 ‘대충대충, 빨리빨리’를 삶의 원리로 채택한 듯한 우리. 멀쩡한 평지에 고급재료들로 지은 집이 몇 년 만에 폭삭 주저앉아도, 도심을 흐르는 강물 위에 걸어놓은 다리가 몇 년 만에 댕강 떨어져 내려도, 멋지게 지어놓은 아파트를 20년도 안 되어 부수면서도 그런 삶의 원리를 전혀 고치려 들지 않는 우리. 오늘도 ‘대충대충, 빨리빨리’만 외치는 우리를 생각하며 나는 한 없이 부끄러워졌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 것인가,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래, 유럽을 다니면서 수백 년 아니 천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지은 건물들을 수없이 보았다. 어느 도시에 들어가도 앞면에 수백 년 전의 건축 연도가 자랑스레 각자(刻字) 되어 있는 건물들을 보며, 새로 시작할 수밖에 없음을 절감한 우리. 기백 년 넘는 건축물 하나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우리가 반만년의 역사를 어떻게 자랑하고 보여줄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자랑스레 ‘빨리빨리’ 세우고 있는 ‘IT의 새 역사’. 과연 ‘대충대충’을 면하고 있는지 불안할 뿐이다.
***
'Top of Europe!'
정말로 그곳은 유럽의 지붕이었다. 보이는 건 주변의 봉우리들과 발밑에 깔린 솜털구름 뿐. 스핑크스 전망대에서 고요한 알프스의 연봉들을 내려다보며 상념에 잠긴 우리. 햇살 쏟아지는 설원으로 내려섰다. 아득히 보이는 언덕. 태곳적 고요가 점령한 알프스. 보이는 건 하얀 눈과 암벽, 그리고 간간이 날아다니는 까마귀 떼와 경비행기 뿐. 그들이 ‘풍속(風速) 제로’라는 기상 표시를 유독 강조하는 건, 이렇게 좋은 날씨가 드물다는 반증일 것이다. 파란 하늘과 순백의 설원. 그리고 그 사이를 가득 채운 햇살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나마 선글라스가 없었다면, 만년설의 벌판에서 우리는 한 번도 눈을 떠보지 못했으리라.
저 멀리 깃발 꽂힌 언덕 너머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우리는 몇몇 사람들이 가는 그곳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산소가 모자란 때문인지 아내는 몇 발짝 걷다가 주저앉곤 한다. 숨이 가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정없이 내려 쪼이는 햇살. 목덜미에서는 땀이 배어나고, 주변의 언덕에서는 눈 녹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스로 언덕을 넘으니 노란색의 경비행기 두어 대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훨씬 뒤로 참새 둥지 같이 돌벼랑에 매달려 있는 목조 건물 하나. ‘Herzlich Willkommen’이라고 환영사를 앙증스럽게 써 붙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따뜻했다. 창가에 앉아 내다보니, 바로 앞에 버티고 선 묀히Monch봉. 4107m 높이였다. 그 봉우리의 언저리엔 처녀성을 간직한 설원이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설원을 내다보며 마시는 스위스 차 맛도 일품이었다. 들어가자 눈이 녹듯 몸속의 피로가 말끔해졌다. 그냥 사람들이 붐비는 들판에 내려놓았다면, 볼품없었을 저 봉우리들. 장소와 거리에 따른 미감(美感)의 조화였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는 이곳에서, 그 많은 세월을 빚어 저토록 아름다운 피사체를 만든 누군가의 손길. 그의 정체가 새삼 궁금해졌다. 산을 보며, 대자연을 보며 신의 존재를 떠올리는 사람들의 심상.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
알프스의 설원에서 원시의 공기를 호흡한 때문일까.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까페에서 미소를 남기고 먼저 나간 스위스 모녀를, 내려오면서 다시 만났다. 이곳엔 처음이라 했다. 우리는 놀랐다. 아니, 스위스 사람들이 알프스에 처음이라니? 비싼 곳이라 올 엄두도 못 내다가 비수기인 지금 딸과 함께 왔다고 한다. 산 중턱 마을 벵겐에서 엿새 동안 묵으면서 알프스를 감상하는 중이라고. 베른에서 공부하던 딸의 대학졸업을 기념하는 여행인 듯 했다.
그렇다. 스위스 사람들에게도 알프스 여행이 수월한 일이 아님을 비로소 깨달았다. 제주도와 설악산이 그렇게 유명해도 한국인들에게 그곳 여행이 그리 수월치 않은 일임을 여기서 깨친 것이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스위스 인과 현실 속의 스위스 인. 그 차이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산악열차가 고도를 낮출수록 알프스의 연봉들은 다시 우리로부터 멀어져 갔다. 무채색의 암벽들이 석양을 받자 알록달록 색깔을 바꾸기 시작했다. 태고의 정적 속에 펼쳐져 있던 알프스의 설원. 천만 갈래로 주름진 암벽들이 들려주는 무한의 투쟁과 고통의 이야기를 우리는 들었다. 설원에서 우리가 만난 알프스는 냉혹한 현실, 영웅들이 난무하던 서사시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잡답(雜沓)의 일상 속으로 내려가면서 그 얼굴은 급격히 바뀌고 있었다. 알프스로부터 사정없이 우리를 끌어내리는 산악 열차. 그 저항할 수 없는 힘에 갇힌 채 우리는 서정의 피사체로 바뀌는 알프스의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인간존재의 하찮음과 무한함. 정적 속에 포효하던 알프스가 우리에게 준 깨달음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 그것만이 하찮음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임을 알프스는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그걸 깨닫고 실천할 때 비로소 무한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알프스가 존경스런 선생님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좌정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계속>
**사진 위는 정상에 있는 까페 '타니아와 마르틴Tania & Martin의 묑크스요흐휘테Moenchsjochhutte' 에서 내려오며 한 컷 찰칵, 아래는 정상에 있는 까페 '타니아와 마르틴Tania & Martin의 묑크스요흐휘테Moenchsjochhutte'-까페와 경비행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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