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66] 스위스 제4신(2) : 호수에서 태어난 루체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0:29 조회 1,875회 댓글 0건본문
스위스 제4신(2) : 호수에서 태어난 루체른
호수를 가로질러 신시가지와 구 시가지를 잇는 카펠 다리Kapellbrucke. 그 안의 매점에서 기념품을 파는 스위스 아줌마에게 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루체른에 사니 행복하냐?’고. 그러자 ‘로잔Lausanne이 여기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스위스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려다 보니 그랬겠지만, 루체른에 살면서 로잔이 훨씬 아름답다니! 우리로선 루체른도 감당 못할 지경인데, 로잔이라? 그랬다. 그 아름답다던 레만Leman. 갑자기 생각 나는 드라마 <레만 호에 지다>. 문득 로잔에 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잠시 후 루체른의 아름다움에 우린 정신을 차려야 했다. 보이지 않는 로잔보다 눈앞의 아름다움이 훨씬 소중하고 확실했다. 맑고 푸른 물, 예와 지금이 조화를 이룬 도심,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사람들. 사실 우리에겐 루체른을 분석하는 일 조차도 버거웠다.
‘유럽을 밟아보자, 유럽이란 거울을 통해 우리의 정체를 확인하자!’ 여행을 떠나면서 가졌던 야심이었다. 그래서 우린 만나는 도시들마다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시간은 짧고 들를 곳과 볼 것들은 많았다. 그러나 루체른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지금. 그런 의욕과 힘을 잃고 말았다. 그동안의 장정(長征)으로 많이 지쳐 있었던 걸까. 루체른 역시 헤집고 다니면 엄청난 것들이 보이리라. 그러나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랑하는 카펠 다리. 우린 그 다리를 한 뼘씩 걸어가며 루체른의 아름다움을 곱씹었다. ‘빈사의 사자 상’을 보면서는 스위스와 스위스 인들이 겪은 고난의 역사에 공감했다. 비슷하게 수난의 역사를 살아온 한민족의 후손으로서 그들에게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했다. 그러나 더 이상은 헤집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우리는 탈진해 있었다. 그래서 호수에서 바라보이는 ‘먼 거리’의 루체른을 사랑하기로 했다. 루체른을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하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미학적 거리가 필요했다. 우리가 시내 투어를 포기하고 호수를 돌아오는 크루즈 선상에 오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
호수를 중심으로 여러 도시들이 늘어서 있었다. 메겐Meggen, 퀴스나흐Kussnach, 그레펜Greppen, 붸기스Weggis, 뷔츠나우Vitznau, 게르사우Gersau, 브루넨Brunnen, 플뤼엘렌Fluelen, 베켄리트Beckenried, 에네트뷔르겐Ennetburgen, 헤르기스뷜Hergiswil, 호르브Horw 등등. 루체른을 출발하여 한 바퀴 돌아오는 크루즈 선상에서 꼽을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들이었다. 크루즈선 ‘루체른의 정신Spirit of Luzern'호 관리원 아가씨에게 호수의 이름을 묻자, 머뭇거리다가 ‘루체른 호’라고 대답했다. 루체른 사람들은 그냥 ‘루체른 호수’라 하고 다른 지역 사람들 역시 그들만의 이름을 사용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호수를 두고 지역에 따라 ‘비어발트Vierwald, 슈테터제Stattersee, 우르너제Urnersee’ 등 별도의 이름들이 지도엔 표기되어 있었다.
우리는 크루즈 선상에서 루체른과 호반 도시들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잔잔한 물결 위에 백조는 둥실 떠 있고, 스크류 소리조차 숨을 죽이고 있었다. 가끔씩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선장의 안내방송만 호수의 적막을 깰 뿐이었다. 호수가 만드는 서정적인 분위기. 호수 주변의 마을들과 도시들은 그 분위기 안에 속절없이 갇혀 있었다. 그 분위기에 취한 우리의 갈 길도 좀더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사진 위는 루체른 호수 투어-루체른의 정신 호 선상에서, 아래는빈사의 사자 상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