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77] 독일 제16신(3) : 루드비히의 꿈과 현실, 호엔슈방가우성Schloss Hohenschwangau과 노이슈반슈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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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0:48 조회 1,773회 댓글 0건본문
독일 제16신(3) : 루드비히의 꿈과 현실, 호엔슈방가우
성Schloss Hohenschwangau과 노
이슈반슈타인성Schloss
Neuschwanstein
20일. 날씨 기 막힐 정도로 좋음. 어제 우리는 퓌센을 지나 슈방가우에 도착했다. 왜 퓌센 아닌 슈방가우인가. 그곳엔 우리가 보아야 할 두 개의 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호엔슈방가우Hohenschwangau와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이 그것. 집을 찾았으나 슈방가우엔 빈 방이 없었다. 좀 떨어진 브루넨Brunnen에서 아파트 하나를 이틀간 빌렸다. 집 앞은 탁 트인 목장, 뒤쪽엔 넓은 포겐 호수Forggensee가 있었다. 탁 트인 벌판 건너 산 중턱에 우리가 보려는 두 개의 성이 있었다. 그러니 ‘황소가 뒷걸음치다가 개구리 잡은 격’이었다. 궁해서 찾아온 곳인데, 찾고 보니 명당일시 분명했다.
느지막이 집을 나서 차를 달리자 채 10분도 안 걸려 나타나는 두 성. 티켓 센터에서 두 성의 입장권을 끊고 가이드 비용까지 지불한 다음 가까운 호엔슈방가우 성에 먼저 들렀다. 주차장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 올라가는 길에 호엔슈방가우성의 성당Schlosskapelle Christkonig이 있었다. 수십 여 좌석의 아담한 규모. 입구에 서 계신 성모가 아름다웠고, 제대 앞엔 예수고상이 걸려 있었다. 단순하면서도 정숙한 분위기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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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엔슈방가우 성. 여기서 주인공 루드비히 2세는 태어났다. 바바리아의 부왕(父王) 막시밀리안 2세Maximilian Ⅱ와 어머니 메리Queen Marie 사이에서. 그리고 그의 동생 오토Ottor가 있었다.
1845년 8월 25일에 태어난 루드비히 2세. 부왕이 죽은 1864년 3월 10일 18살을 갓 넘긴 나이로 바바리아의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을 이곳 호엔슈방가우 성에서 보냈다. 모친, 종들, 그리고 들판과 계곡의 농부들 사이에서. 가정교사가 그의 교육을 맡았지만, 활동적인 루드비히의 마음에 항상 들어맞지는 않았던 듯. 그를 사로잡은 것은 독일 전설들을 그려낸 호엔슈방가우 성의 그림들이었다. 생에 대한 그의 낭만적 관점. 그것들은 부조(父祖)로부터 이어내린 내력이었고, 성 안의 그림들은 그런 생각을 심화시켰다. 문학과 음악에 심취한 로맨티스트. 한 나라의 왕으로서는 결격사유였을까.
호엔슈방가우성 근처의 아름다운 계곡과 숲을 쏘다닌 그의 어린 시절이었다. 그는 주변의 산들과 헌신적이면서도 단순한 주민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 루드비히였다. 처음부터 그는 문학을 좋아했다. 특히 쉴러Friedrich von Schiller. 그의 시와 드라마에 나타나는 정조(情調)를 사랑했다. 쉴러의 시는 이상을 지향하던 열정적 로맨티스트 루드비히의 마음에 꼭 들어맞았다. 그 때문인가. 세속적인 세계로부터 떠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영적인 낙원으로 도피하게 되었다.
열여섯 살 되던 1861년 2월 2일. 문학에 심취해 있던 루드비히는 새로운 음악과 만났다. 바그너Richard Wagner의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의 공연을 보게 된 것. 바그너의 음악. 주제를 다루어 가는 그의 재치 속에 낭만적인 꿈이 모두 실현되고 있음을 루드비히는 느꼈다. 이 때부터 그는 바그너의 모든 곡들과 그에 관해 출판된 모든 것들을 입수하기 시작했다.
바그너와의 만남이 그의 운명을 불행 쪽으로 기울게 했을까. 아니면 그 반대였을까. 그는 대학교육을 마치지도 못한 나이에, 세상 경험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나이에 왕이 되었다. 유년시절 얻은 몽환(夢幻)과 낭만의 세계에서 헤매던 그. 쉴러와 바그너를 차례로 만난 이후 더욱더 환상의 세계로 빠져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한 한 나라의 국왕이 몽환의 세계에나 빠져 헤맨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사실 그는 바그너 외에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Bismarck도 만났다. ‘숭배’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그를 좋아했던 루드비히. 죽기 직전 그에게 도와달라고 절규했던 루드비히. 그러나 그 역시 루드비히의 비극적인 결말을 막는 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적은 내부에 있었던 것. 바바리아 정부의 관료들과 왕족들. 호화스런 성을 세 개(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 린더호프 성Schloss Linderhof, 헤렌힘제 성 Schloss Herrenchiemsee 성)나 지었거나 짓고 있던 루드비히. 그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성들을 지으려던 루드비히. 재정의 파탄과 정치적 입지의 상실을 우려한 정치인들과 왕족들로서는 국왕을 설득하려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점점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갔던 루드비히. 결국 정부 관료인 그들의 명령으로 왕의 정신병에 대한 일종의 ‘허위 보고서’를 내게 된 몇몇 정신과 의사들. 그들의 대표가 바로 구덴 박사Dr. Gudden였다.
1886년 당시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머물러 있던 루드비히. 뮌헨에서 그로부터 왕위를 회수하기 위한 사절단이 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같은 해 6월 10일 새벽 4시 전부터 쿠데타는 시작되었고, 갖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사로잡힌 루드비히. 6월 12일 새벽 4시 전후 하여 정신과 의사들, 경비원들과 함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떠나 베르크 성Schloss Berg에 유폐되었다. 슈타른베르크 호수Starnbergsee 곁의 성. 그가 한 때 즐겨 지내던 곳들 중의 하나였다. 모든 문들은 봉쇄되고, 출입문은 밖에서만 열게 되어 있었다.
13일 식사 후 오랫동안 창가에서 망원경으로 슈타른베르크 호수를 내다보던 루드비히. 오후 늦게 산책을 원했다. 구덴 박사의 허락. 오후 6시를 약간 지난 시각 산책에 나선 두 사람. 아무도 자신들을 따라오지 말라는 박사의 신호. 오후 7시까지 돌아오지 않는 두 사람. 정신과 의사들과 시종들은 당황했고,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뒤졌으나 보이지 않는 두 사람. 밤 11시 쯤 물 위로 떠오른 두 사람의 시신. 왜 당시 구덴 박사는 아무도 따르지 못하게 했을까. 두 사람의 죽음, 그 이유와 함께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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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큰 왕관 모양의 샹들리에가 번쩍이는 왕관의 홀, 알프스와 함께 두 개의 호수(알프제Alpsee, 슈반제Schwansee)가 보이는 발코니, 탄호이저Thanheuser와 함께 바그너 오페라의 주제로 선택된 내용의 그림이 붙어 있는 식당, 네오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침실, 마찬가지로 네오고딕 양식의 기도실, 천정과 벽에 현란한 그림으로 가득한 의상실, 바그너 오페라의 모티프 ‘로엔그린’의 벽화가 붙어 있는 거실, 독서실, 바그너 오페라의 가장 중요한 주제 ‘파르지팔Parzifal’의 이야기가 그려진 그림들이 가득한 가수의 홀 등을 돌아보며 루드비히의 꿈을 더듬은 우리. 한 나라의 왕이면서 환상의 세계를 헤맨 로맨티스트 루드비히. 끝내 환상의 세계를 떠나지 못하고 냉혹한 현실의 덫에 걸려 41세로 요절한 당대 최고 권력자 루드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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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마다 그득한 건 백조의 문양들이었다. 심지어 문고리까지 백조의 모양이었다. 그는 백조를 좋아했다 한다. 독일에 오니 백조가 많았다. 강이나 호수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백조가 있었다. 조막만한 오리들과 먹이 싸움을 벌이는 백조들에게 실망한 건 사실이나, 둥둥 떠다니는 겉모습만은 참으로 의연했다.
먹이를 두고 오리들과 아귀다툼하는 백조의 현실적인 모습. 그래서 ‘푸른 도나우 강의 백조’는 환상의 존재일 뿐이다. 루드비히가 백조의 현실적인 모습에 눈길을 주었더라면, 아마도 그는 환상의 세계에서 일찌감치 현실의 세계로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럴 수만 있었다면, 그에겐 백성들의 어려움도 보였을 것이고, 낭만적인 성을 짓느라 국고를 탕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 가정은 없는 법. 루드비히는 갔고, 그가 남긴 여러 채의 성들은 남았다. 성에는 당대의 역사와 예술, 그리고 철학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그의 꿈과 당대의 예술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 역시 그들 속에 섞여 이 성들이 내포한 역사적·예술적 의미를 음미하고 있다.
역사 속에 명멸한 많은 군주들. 그들이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인가. 현대인들에게 루드비히는 과연 암군(暗君)인가 명군(明君)인가.
<계속>
**사진 위는 독일 슈방가우Schwangau의 호엔슈방가우Konigsschloss Hohenschwangau성, 아래는 독일 노이슈반슈타인 성-마리아 다리에서 본 모습
200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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