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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78] 독일 제17신(1) : 비스교회Wieskirche의 감동, 그리고 예술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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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0:50 조회 1,77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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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17신(1) : 비스교회Wieskirche의 감동, 그리고 

                    예술가의 길




 10월 21일, 금요일. 날씨 맑음. 10시 20분 브루넨의 숙소 출발, 뮌헨 방향으로 접어듦. 잠시 알펜가도에서 로만틱가도Romantische Strasse로 접어든 셈. 로만틱 가도는 우리가 이틀 밤을 묵은 브루넨 인근 퓌센Fussen에서 뷔르츠부르크Wurzburg까지 이어지는 도로. 뒤에  로만틱가도 답사의 일정이 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이곳으로 접어든 것은 비스교회와 오버아머가우Oberammergau 때문. 퓌센은 알펜가도에 속한 도시이면서 로만틱가도가 시작되는 곳. 알펜가도에 속하긴 하나 로만틱가도로부터 접근하는 것이 편리한 비스교회와 오버아머가우. 우리가 가려고 하는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룩Innsbruck이나 잘츠부르크Salzburg는 알펜가도와 접해 있는 도시들. 그러니 비스교회와 오버아머가우를 맛보기 위해 잠시 벗어난 것일 뿐, 크게 보아 지금까지 우리는 알펜가도를 고수해온 셈이었다.  


             ***


 퓌센 쪽에서 뮌헨 방향으로 30분 쯤 달렸을까. 슈타인가덴Steingaden이란 읍 정도의 시골마을이 나타났다. 삼거리에서 ‘Deutsche Alpen Strasse’란 작은 글씨의 방향에 따라 오른 쪽으로 핸들을 틀어 한동안 달렸다. 약간 오르막길. 주변엔 울창한 숲과 간간이 펼쳐지는 목장이 시원했다. 간간이 민가가 나타날 뿐,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7~8분쯤 달렸을 때, 저 멀리 초원 위에 나타나는 교회 하나. 너른 초원 때문인가, 교회는 결코 커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니 집 몇 채가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루었는데, 입구에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목장지대였고, 교회는 그 한 가운데 있었다. 목장 안에는 몇 마리의 말들이 관광객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지금까지 엄청난 규모의 교회들만 보아온 우리. 유네스코가 왜 이 교회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는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차장 바로 앞에 빨간 기와를 올린 하얀 색깔의 작은 건물 하나가 있었다. 얼핏 드려다 보니 성모를 모시고 있었다. 우선은 기도실로 생각되었다. 성모 앞엔 좌석 두어 개가 놓여 있어 기껏 10명 내외가 앉을 수 있을 뿐 넉넉한 공간은 결코 아니었다. 심상하게 생각한 우리는 그 건물을 지나쳐 2-3분 거리의 교회로 걸어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숨이 막혀왔다. 내부의 치장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조성된 시대의 특징적 양식에 따라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유럽의 교회들. 그런 교회들만 보아온 우리였다. 웬만한 아름다움에는 둔감해져 있는 우리가 새삼 놀랄 정도였으면 독자들께서도 그 아름다움의 수준을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바탕은 순백이었다. 노랑, 주황, 빨강, 보라, 연두, 회색 등이 적절히 배색된 로코코rococo 예술의 정수였다. 특히 제대의 배경으로 만들어진 상이 흥미로웠다. 펠리컨 상. 굶주림이 극에 달해 자식들에게 먹일 것이 없을 경우 심장을 열어 자신의 피를 먹일 정도로 희생정신이 강하다는 전설 속의 새 펠리컨. 그건 예수님의 첫 이미지, 자기희생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신이 선택한 ‘속죄의 희생양’ 한 마리가 바로 아래에 놓여있었다. 속죄양 바로 아래쪽의 그림은 성모에게 안겨 두 팔을 벌린 아기예수와 그의 가족들이다. 아기예수의 벌린 두 팔이 십자가의 모양과 흡사한 것이 특징. 예수의 고난을 암시한 것이나 아닐까. 이 그림은 알브레히트B. Albrecht가 뮌헨에서 그린 것. 이 교회에서 새롭게 창작되지 않는 유일한 그림이란다. 그리고 그 아래가 ‘눈물 흘리는 예수 상’이다. 


             ***

 

 이 ‘위대한 아름다움’을 허허벌판에 만들어 놓은 이는 누구일까. 우리에겐 그것이 수수께끼였다. 신도들의 좌석이래야 좌우 모두 합해 32개. 긴 좌석 하나에 열명의 신도가 앉는다 해도 300명 내외였다. 물론 모두 들어찬다고 가정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교회 밖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300명의 신도가 살만한 동네도 주택도 없는 허허벌판뿐인데. 

 누가 어떤 연유로 이런 교회를 이 허허벌판에 세우게 되었는지 알아보았다. 이 교회의 씨앗은 ‘눈물 흘리는 예수’의 이적. 눈물 흘리는 예수님! 아마도 그 비참한 모습 때문에 당시 슈타인가덴 수도원의 한 다락방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던 듯. 그러나 당시 그곳에 살던 마리아 로리Maria Lori라는 여인이 그것을 비스Wies에 있는 자신의 농가로 가져갔고. 이 성상을 경건하게 숭모한 그녀. 그녀의 남편 또한 1788년 6월 14일 저녁 기도 중 예수님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게 된 것. 이 사건을 계기로 유럽 전역에서 이곳으로 ‘대대적인 순례’가 시작되었다. 물론 다시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우리는 교회 안에 모셔져 있는 ‘고통 받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쇠사슬에 매인 그 모습. 가시면류관 대신 빛나는 태양이 머리를 두른 그 모습. 뿐만 아니라 교회의 현관에는 구름같이 모여들던 당시 순례자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도 붙어 있었다. 교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물증들이었다. 

<계속>



**사진 위는 독일 알펜가도 비스교회의 원경, 아래는 비스교회Wieskirche(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내부


200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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