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79] 독일 제17신(2) : 비스교회Wieskirche의 감동, 그리고 예술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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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0:52 조회 2,002회 댓글 0건본문
독일 제17신(2) : 비스교회Wieskirche의 감동, 그리고 예술가의 길(2)
1743년 수많은 순례자들에 비해 작은 성당이 너무 좁으므로 새로운 교회를 세울 필요가 있다고 본 슈타인가덴의 수도원장 히야진트 가쓰너Hyazinth Gaβner는 도미니쿠스 짐머만Dominikus Zimmermann에게 위촉. 1745년 가쓰너의 사망 이후 후임자인 마리아누스Marianus Ⅱ Mayer는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겼고. 1746년에 비로소 디쎈Dieβen의 허큘란 가르크Herkulan Karg가 주춧돌을 놓았으며 1749년과 1754년 순차로 본당과 첨탑이 세워짐으로써 교회는 완공되었다.
사실 우리가 크게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인 내부 장식. 그 주역이 바로 짐머만Zimmermann 형제. 바바리안 로코코Bavarian rococo 시대의 최고 예술가 그룹에 속해 있던 그들. 그들이 태어난 곳은 가이스포인트Gaispoint란 작은 마을. 그 마을은 봐일하임숑가우Weilheimschongau의 전원에 있던 붸소브룬 수도원Monastery of Wessobrunn의 한 구역이었다. 짐머만 형제가 살던 시기 혹은 그 이전부터 건축가들과 바로크 시기의 교회 예술가와 화가들 가운데 이 지역 출신들이 많았다. 프랑스에서 폴란드에 이르는 유럽 일대, 심지어 러시아에서도 그들의 작품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명망이 높았음에 틀림없다. 말하자면 짐머만 형제는 ‘베소브룬 시대Wessobrunn Epoch'의 최고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를 감동시킨 것은 도미니쿠스 짐머만의 행적. 1685년 베소브룬에서 태어난 그. 비스교회가 완성된 후 10년간을 교회 옆집에 살다가 죽었다는 것. 자신의 최후·최고의 예술혼을 불살라 만든 교회. 그 옆에서 자신의 작품과 살다가 죽어간 그의 생애야말로 얼마나 극적이고 예술적인가! 10년이면 무수한 작품들을 남길 만한 기간. 그러나 심혈을 쏟아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을 만들었는데, 또 다시 무엇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교회예술의 최고봉이자 당대 유럽인들이 갖고 있던 신앙심의 실체를 확인시켜 준 비스교회. 그러나 어찌 그것뿐이랴. 세속의 명리만을 좇는 예술가들에게 들려주는 짐머만의 고고한 깨우침의 육성도 우리는 함께 들었다.
***
우리는 잠시 대성당을 나와 입구에 있는 작은 성당을 찾았다. 성당 안에는 ‘눈물의 기적’으로부터 교회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비스교회는 하나의 교회가 완성되기까지 어떤 신의 계시가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리고 예술가의 길. 교회 완공 후 그 곁에서 생을 마친 짐머만. 그가 단순히 돈 때문에 그 일을 떠맡았을까. 신앙 속에서 자신의 예술혼을 피워낸 그. 비스교회를 끝으로 ‘이제 다 이루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닐까.
비스교회와 짐머만은 우리에게 ‘화려함과 숙연함’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다 가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이기도 했다. 결코 가볍게 살지 말라는 외침이었다.
<계속>
**사진 위는 독일 알펜가도의 비스교회Wieskirche-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내부-기적이 일어난 후 몰려든 순례자들의 행렬을 그린 것, 아래는 비스교회 입구의 원래 교회-The Old Chapel of Christ in the Meadow(Wieskapelle)의 모습
200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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