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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84] 오스트리아 제2신(1) : 잘차흐Salzach 강변에 꽃핀 영욕의 역사, 잘츠부르크Salzbur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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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1:01 조회 1,70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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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제2신(1) : 잘차흐Salzach 강변에 꽃핀 영

                             욕의 역사, 잘츠부르크Salz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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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4일(월) 날씨 맑음. 오후 3시 7분, 잘츠부르크를 향해 인스브룩 반호프의 주차장을 출발. A1 고속도로를 타고 두 시간 남짓 만인 5시 20분경 잘츠부르크 도착. 공항 근처의 에탑호텔에 2박 예정으로 투숙. 

 25일(화) 아침 10시쯤 잘츠부르크 시내로 나옴. 미라벨 지하주차장에 차를 박아두고, 신시가지의 성 안드레 교회Pfarrkirche St. Andra, 미라벨 궁전과 정원, 모차르트 뮤지엄, 삼위일체 교회 등을 점심 전에 관람. 잘차흐Salzach 강을 건너 구시가지로 진출.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 성 블라시우스 교회St. Blasiuskirche, 모차르트 생가 등을 보고 게트라이데 거리의 생선전문 음식점 노르트제Nordsee에서 점심. 점심 후 돔Dom(돔뮤지엄Dommuseum·돔그라붕스뮤지엄Domgrabungsmuseum), 프란치스카 성당Franziskanerkirche, 레지덴츠Residenz 및 광장, 대학성당Kollegienkirche, 호엔잘츠부르크 성Festung Hohensalzburg, 성 베드로 교회St. Peter kirche(카타콤베) 등을 관람.

 26일(수) 오전 11시 20분 잘츠부르크의 숙소를 떠나 헬브룬Hellbrunn궁으로 출발. 궁을 관람한 뒤 오후 2시쯤 붸르펜Werfen으로 출발. 3시경 붸르펜에 도착. 숙소를 잡은 후 호엔붸르펜 성 근처를 산책하며 내일의 일정을 숙고함.

 27일(목) 아침엔 안개가 자욱했으나 정오부터 맑음. 오전 10시 붸르펜의 숙소 출발. 젠트룸의 인포메이션 센터 방문. 호엔붸르펜 성Festung Hohenwerfen과 얼음동굴Eisriesinwelt, 소금광산Salzwelten 등 붸르펜 관광에 대한 정보를 얻음. 올해의 얼음동굴 관광이 바로 어제(10월 26일) 끝났다는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함. 호엔붸르펜 성을 보고 젠트룸으로 돌아와 점심을 마친 후 오후 3시 할슈타트Hallstadt로 떠남. 5시쯤 할슈타트 도착. 구시가지 등을 돌아보고 6시에 할슈타트에서 1km 정도 떨어진 오버트라운Obertraun의 빙클Winkl에서 숙소를 구함. 할슈타트호수Hallstattersee 바로 옆 동네.  


             ***


 모차르트를 낳은 음악과 축제의 도시 잘츠부르크. 열 손가락으로 꼽기에도 힘들만큼 엄청난 규모의 교회들. 레지덴츠와 잘츠부르크성 등 고 건축물, 게트라이데 거리를 중심으로 하는 주택 및 상가 등. 1997년 유네스코가 구시가지 전체와 신시가지 중 미라벨 궁전과 정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했을 정도로 전통문화가 넘치는 도시. 우리에겐 1920년에 창시된 음악페스티벌이나 <피가로의 결혼식>, <돈 죠반니>, <마술피리> 등 모차르트의 화려한 오페라 등으로만 기억되는 잘츠부르크. 그러나 잘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역사가 복잡다단했던 만큼 순탄치 않은 세월을 겪어왔다.

 게르만의 프랑크 왕국이 세운 동남쪽 식민지 오스트마르크로부터 발전한 오스트리아. 962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작센 왕조의 독일 국왕 오토 1세. 그의 아들인 오토 2세로부터 오스트마르크 국경지대 책임자로 임명된 바벤베르크가의 레오폴트 1세. 그로부터  바벤베르크가의 오스트리아 지배는 시작되었고, 그 뒤를 이어 합스부르크가가 등장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17세기 후반인 1687년에 드디어 합스부르크가의 후계자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세습하게 되었다. 1740년 유능한 여성 황제 마리아테레지아가 지배자로 등장, 오스트리아의 기반을 닦았고, 18세기 말 신성로마제국의 해체와 함께 황제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처리 과정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 시대가 열렸고. 20세기의 두 대전에서 주전국(主戰國)이었던 오스트리아. 결국 미·영·불·소 4국 관리 하에 카를레너 대통령의 정부가 출범했고, 1955년에는 영세중립을 선언하게 되었다. 

 앞서 들렀던 인스브룩이야말로 막시밀리안 황제와 마리아테레지아의 작품임을 우리는 확인했다. 그들이 주역이었던 여러 단계의 제국, 그 정치적 산물이 오늘날엔 역사와 문화의 유산으로 남아있음을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도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소금의 성Castle of Salt’에서 유래한 이름 ‘잘츠부르크’. 기원전 700년부터 이 지역에서 생산된 소금은 이 지역을 풍요롭게 했고. 그 때문인가, 결국 로마제국의 지배까지 받게 되었다. 중세에는 소금이야말로 ‘백금’으로 불릴 정도로 귀한 물건 아니었던가. 오죽하면 월급을 뜻하는 ‘salary’의 어원이 ‘salt’이겠는가. 

 어쨌든 잘츠부르크는 예로부터 인문지리적 입지나 풍토상 살기 좋은 곳이었던 모양. 잘츠부르크를 유럽 역사에 처음으로 등재시킨 사람은 8세기 중반 보니파티스 성인. 그 후 잘츠부르크는 오토 3세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았고. 그러나 황제 하인리히Heinrich 4세와 교황 그레고르Gregor 7세 간에 생긴 갈등의 와중에서 교황 편에 섰던 대주교 겝하르트Gebhard는 황제로부터 잘츠부르크를 방어하기 위해 호엔잘츠부르크과 호엔붸르펜의 공사를 시작했다. 이에 프리드리히 바바로사 황제는 잘츠부르크를 초토화시키고 대주교 아달베르트 3세의 투항을 받아낸다. 베니스 협정으로 자치권을 되찾은 잘츠부르크. 후임 대주교 콘라트는 돔을 고딕양식으로 증축했고, 15세기 말의 대주교 레온하르트는 호엔잘츠부르크를 오늘날의 모습에 가까울 정도로 증축했다.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뒤, 19세기에 들어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한 주로 편입됨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오스트리아 땅이 된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 역사의 혼란스러움은 종교와 정치의 갈등 혹은 착종으로부터 연원된 것. 잘츠부르크의 구시가에 남아있는 역사적 자취들도 따지고 보면 권력 투쟁의 중심에 서 있던 교회의 판단착오 때문이었다. 여러 성당들, 레지던츠, 호엔잘츠부르크 등은 그 대표적인 물증들이다.  

<계속>



**사진 위는 잘츠부르크 구시가지의 게트라이데거리Getreidegasse, 아래는 성 안드레 교회Pfarrkirche St. Andra, Salzburg의 삼위일체상


200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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