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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85] 오스트리아 제2신(2) : 잘차흐Salzach 강변에 꽃핀 영욕의 역사, 잘츠부르크Salzbur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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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1:03 조회 1,72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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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제2신(2) : 잘차흐Salzach 강변에 꽃핀 영

                              욕의 역사, 잘츠부르크Salzburg

                              (2)





 신시가지의 미라벨 궁전과 정원에서 잘츠부르크 탐색을 시작한 우리. 그 주인공은 볼프 디트리히Wolf Dietrich von Raitenau 대주교였다. 그는 성직자의 신분으로 살로메 알트란 여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결혼을 해서 열명 이상의 자식까지 보았다고. 그녀를 위해 잘차흐 강변에 지어준 것이 바로 미라벨 궁전과 정원. 1690년 피셔Fischer von Erlach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정원 중앙에는 높은 분수가 서 있고 오타비오Ottavio Mosto가 만든 네 개의 조각상이 있는데, 그것들은 각각 물·불·공기·흙의 신화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바다 위로 헬레나Helens를 훔쳐오는 패리스Paris, 땅 밑으로 페르소포네Persophone를 납치해오는 플루토Pluto, 공중으로 거인 안테우스Anteus를 들어올리는 헤라클레스Heracles, 불타는 트로이에서 아버지를 구해오는 아에네스Aeneas 등. 그 안에 있는 분수가 바로 페가수스 분수Pegasus Fountain. 1661년 카스파 글라스Kaspar Glas가 청동으로 만든 용마(龍馬)가 날아갈 듯 달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분수 뒤쪽엔 난장이 정원도 있었다. 돌로 만든 난장이 상들은 모두 다른 성격이나 직업들을 나타낸다고. 

 미라벨 정원의 당시 이름은 알텐아우성Schloss Altenau. ‘미라벨’이란 이름은 뒤의 대주교 마르쿠스 시티쿠스Markus Sittikus가 바꾼 것. 도시의 대화재로 1818년 완벽하게 파괴되었으나, 1층의 대리석 홀과 라파엘 돈너Raphael Donner의 상이 있는 서쪽 날개의 계단만은 온전히 남았다고. 물 맑은 잘차흐강. 그 강변에 만든 미라벨 궁전도 아름답거니와 장미 만발한 그 정원의 꽃밭은 더욱 아름다웠다. 그녀는 잘츠부르크 평민의 딸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웠으면 사제의 신분으로 결혼하여 자식까지 둘 수 있었을까. 그 때문에 교계에서 갈등을 빚고 영주(領主)들과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 실각, 요새에 갇혀 지내다가 외롭게 죽었다고 한다. 

 미라벨 광장과 접한 안드레 교회Andrakirche. 큰 규모의 성당으로 내부 역시 아름다웠으나 보수공사를 시작하려는지 교회 안의 모든 것들을 실어내고 있었다. 크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예수고상과 성모마리아상. 어느 교회에서도 보지 못하던 모습과 성격의 상들이었다. 제대에 세워진 고상은 1959년 칼 바이저Karl Weiser교수의 작품이고, 제대 오른쪽의 삼위일체 상은 1979년 아들하르트J. Adlhart교수의 작품이었다. 퍼지는 햇살을 배경으로 한 성모상은 1905년 요셉 바흐레흐너Josef Bachlechner의 작품. 예수고상과 삼위일체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원상(原象)들로부터의 데포르마숑이라고나 할까. 두 천사가 양 옆에서 옹위하고 있는 성모상 역시 처음 목격하는 것. 보수 후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자못 궁금했다.

 안드레 교회 앞은 마르크트 광장. 그로부터 좌측으로 직진하면 나타나는 것이 삼위일체 교회Dreifaltigkeitsgasse. 1694-1703년에 걸쳐 건축가 피셔Fischer v. Erlach가 만든 걸작으로 엄청난 크기의 돔형 지붕이 시가지를 압도했다. 화려한 바로크 양식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그로부터 이어지는 린저가Linzergasse. 구시가지 오른쪽의 상가가 바로 그곳이다. 그 왼쪽으로 린저가를 따라 올라가면 나타나는 성 세바스천 묘지St. Sebastian's Cemetery. 울프 디트리히Wolf Dietrich가 이탈리아식으로 설계한 이 묘역엔 파라셀수스Paracelsus 박사, 모차르트의 부친과 아내, 대주교 울프 디트리히 등이 묻혀 있었다. 

 삼위일체 교회에서 잘차흐강을 바라보고 왼쪽엔 모차르트 뮤지엄Mozarteum이 오른쪽엔 란데스 극장Landes Theatre이 서 있었다. 모차르트가 살던 집은 지금 뮤지엄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그와 그의 음악에 관련되는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그가 남긴 편린들을 통해 천재 음악가의 삶과 정신세계를 훔쳐보는 일. 쉽진 않았으나 즐거운 일이었다. 결국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인간 모차르트의 행복 여부였다.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투명한 잘차흐 강물 위로 놓인 마카르트Makart 다리를 건너 들어간 구시가지. 지금도 그 시절의 번화함은 남아 있었다. 아름다운 철제의 간판과 상호들이 무성하게 돌출된 쇼핑의 중심 게트라이데 거리. 금박을 입힌 것들도 꽤 많았다. 걸으며 그런 것들을 보는 것만도 큰 즐거움이었다. 거리를 빠져 나가자 성 블라시우스 교회St. Blasiuskirche가 나타났다. 본당은 잠겨진 채 성모상과 예수고상이 모셔진 회랑만 출입할 수 있었다. 

 게트라이데 거리로 되돌아온 우리. 전문 음식점 노르트제Nordsee에서 생선구이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 싱싱한 생선, 소금 뿌려 햇볕에 살짝 말렸다가 노릇노릇 구워냈으면 얼마나 맛있었을까. 포크를 대자 살점들이 부슬부슬 부서졌다. 정체 모를 맛. 그렇게 만들어 놓고 비싼 값을 받다니!

 점심 후 모차르트 생가, 대학교회, 대성당, 프란치스카 교회, 레지던츠 및 광장 등을 숨차게 돌아다녔다. 웅장하고 화려한 규모와 제도에 우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알프스 북쪽 최고(最古)의 바로크 형 성당인 잘츠부르크 돔. 처음엔 로마네스크식으로 지었으나 1598년 대화재로 가운데 지붕이 무너졌고. 그러자 성당 전체와 주민들의 주택, 공동묘지 등을 헐어버리고 잘츠부르크에 ‘작은 로마’를 재현하려 한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 앞서 말한 미라벨 궁전의 주인공이다. 주민들의 원성이야 오죽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밀어붙인 듯. 그 역사(役事)는 그 후 파리스 로드론 대주교에 의해 1628년 완공되었고, 1655년엔 아치형 통로도 완성되었다.

 돔에 들어갔다. 둥근 통 속에 들어간 듯 둥근 천정이 드높았다. 그곳엔 아르제니오 마스카그니와 이간지오 솔라리 등의 일품 천정화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모차르트가 유아시절 세례를 받았다는 성수함도, 그가 연주했다는 파이프 오르겔도 그대로였다. 

 미라벨 궁의 주인공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세운 레지던츠. 그 안엔 당시 지배자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놀랍고도 우스운 일이었다. 성직자인 그가 이토록 세속의 영화에 집착했었다니! 우리의 생각이 너무 고루한 것인가.

 구시가지에 온존해 있는 옛날의 자취들을 살피고 난 우리. 아픈 다리와 피곤한 몸을 전동열차(Festungsbahn)에 실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성에 오른 것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일망무제(一望無際)! 그리고, 대단한 규모였다.

 사실 이 성은 종교와 정치 간 갈등의 소산이었다. 교회가 정치에까지 관여하던 당시의 상황에서 교황과 황제의 갈등은 당연지사. 여기서 교황의 편일 수밖에 없던 대주교로서는 황제의 보복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그래서 당시의 대주교 겝하르트(1066-1088)는 이 성과 함께 호엔붸르펜 요새를 짓기 시작했고. 뒤에 우여곡절은 많았으나 이 성들은 결국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성 안에서 우리는 대주교 레온하르트Leon Hardt의 호화로운 삶을 훔쳐볼 수 있었다. 온통 황금으로 치장한 그의 방, 꽈배기 모양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 찬란한 문양의 문들, 도자기로 치장한 벽난로, 심지어 기도실마저 호화찬란했다. 이곳저곳에 대포도 설치되어 있었다.    잘츠부르크의 정신세계만을 관장했어야 할 대주교. 세속적 권력까지 휘어잡은 데서 빚어진 무리가 곳곳에 배어 있었다. 모순과 역리. 그로부터 비틀린 역사는 태어났고, 그 속엔 죄 없는 민초들의 땀과 피가 절어 있었다. 신의 뜻을 참칭하여 세속의 권력까지 장악하고 백성을 괴롭힌 성직자들. 빼앗긴 세속의 권력을 탈환하기 위해 종교계와 힘을 겨루어 온 제왕들. 시간의 흐름 속에 매몰되어간 그들을 오늘날 우리는 무슨 방법으로 단죄할 수 있는가.

<계속>


**사진 위는 페스퉁호엔잘츠부르크Festung Hohensalzburg에서 내려다본 잘츠부르크 시가지, 아래는 잘츠부르크 구시가지 게트라이데거리Getreidegasse 의 장식물 가게


200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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