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90] 여행단상 : 홈리스homeless의 하루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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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30 01:09 조회 1,595회 댓글 0건본문
여행단상(5) : 홈리스homeless의 하루를 시작하며
1년 남짓 미국에 있던 몇 년 전. 거리에 나가면 ‘홈리스’들이 가끔 눈에 띄었다.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 미국의 그늘이었다. 차를 몰고 나가도 밀리는 도로 가엔 으레 ‘Help me' 피켓을 들고 구걸하는 홈리스들이 있었다. 그런데 똑똑한(?) 일부 홈리스는 대형 마켓에서 슬쩍 해온 카트에 바리바리 이불이며 헌 옷가지 등을 싣고 다녔다. 날 저문 후 으슥한 곳에 그런 이불을 펴고 눕는다면 맨 바닥보다야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래서 그런가. 홈리스가 우리의 마음엔 그런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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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 중인 지금, 짐이 고민이다. 자동차의 트렁크와 뒷좌석에 가득한 우리의 짐들. 숙소를 옮길 때마다 짐 챙기는 일이 만만치 않다. 대부분 옛날 건물들인 이곳 숙소들.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도 없진 않지만, 대부분 2-3층의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어느 날인가. 모처럼 현대식 건물의 호텔에 투숙한 적이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짐 끌고 갈 궁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환호성을 질렀다. 주차장 한 구석에 누가 끌어다 놓았는지 근처 마켓의 카트 한 대가 얌전히 서 있는 게 아닌가. 행운이었다. ‘괴나리봇짐들’을 주섬주섬 주워 실은 우리는 휘파람을 불며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호텔방 한 구석에 모셔 두었다가 나갈 때도 이용한 것은 물론. 카트를 밀고 호텔 주차장을 나서는데 갑자기 아내가 깔깔대고 웃었다. 내 모습을 보고 LA의 홈리스들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어처구니없었지만, 나도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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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와 거지. 같은 의미의 말이지만 어감(語感)이 다르다. 의미영역을 축소시켰다는 점에서 전자는 후자보다 약간 점잖다. 그러나 후자의 내포(內包)는 가히 무한대! 단순히 ‘구걸 한다’는 의미를 넘어 온갖 행동양식의 저질스러움을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거지같은××!’처럼 큰 욕이 있을까. 그러나 ‘홈리스’하면 ‘집 없이 떠돌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인간’ 정도로 들리니, 그다지 치사해보이지는 않는다. IMF 이후 노숙자들이 크게 늘었다는 우리나라. 외래어의 천국인 요즘 우리나라에서 '거지' 대신 '홈리스‘란 말을 즐겨 쓰는 것도 그 때문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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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사람’!
그래, 집이 관건이었다. 우리의 일생 목표들 가운데 하나는 ‘번듯한 내 집을 갖는 것’이다. 해가 설핏해져 으슬으슬 추워지면,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놓고 기다리는 아내와 가족이 생각나기 마련. 그러나 그것도 집이 있을 때나 가능한 생각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집은 모든 걸 포괄하는 개념이다. 안식, 따뜻함, 배부름, 대화, 노래 등등. 그래서 ‘집은 행복’이다. 일생 죽도록 일 해봐야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게 우리네 삶이다. 늘그막에 번듯한 집 한 칸 갖게 되면 성공이다. 그 집에서 꿈같은 몇 년을 보내고 이승을 떠난다. 저승에선 누군가 집 한 칸 마련해놓고 기다리는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들 사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어떤 가수는 ‘인생은 하숙생, 나그네’라 했던가. 그러고 보니 그 가수의 노래야말로 우리네 삶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표현하는 데 다른 무슨 수사(修辭)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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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가 되어보아야 집의 고마움을 안다. 하룻저녁 비·바람, 눈·서리를 피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 도처의 볼거리들에 빠져 있다가도 해만 설핏해지면, 묵을 곳 없는 오늘밤이 걱정이다. 이곳저곳 헤매면서 방을 찾지만, 수월한 게 아니다. 이 동네엔 언제나 들어갈 수 있는, ‘번지 없는 주막’도 없다. 그래서 여행자는 기본적으로 홈리스다. 아니 ‘집 없는 거지’다.
<계속>
**사진 위는 10월 10일과 11일 밤을 보낸 베른의 호텔, 아래는 1박을 위해 들른 숙소(Ferienwohnungen Alois Daser, Linderhoferstr. 27, 82488 Graswang bei Oberammergau)의 방 모습
200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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