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독일 제 15신(1): 바다 같은 보덴호Bodensee의 두 진주, 메어스부르크Meersburg와 콘스탄츠Konstanz-부럽도다, 고스란히 남겨진 옛 성의 모습이여! >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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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55] 독일 제 15신(1): 바다 같은 보덴호Bodensee의 두 진주, 메어스부르크Meersburg와 콘스탄츠Kon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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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9 23:45 조회 1,73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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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15신(1) : 바다 같은 보덴호Bodensee의 두 진주, 메어스부르크Meersburg와 콘스탄츠Konstanz-부럽도다, 고스란히 남겨진 옛 성의 모습이여!


10월 7일 날씨 맑음. 14시 50분에 지그마링을 출발. 313번을 타고 메어스부르크Meersburg로 달렸다. 16시 10분쯤 젠트룸 도착, 인포메이션 센터로부터 숙소와 관광정보 얻었고, 17시쯤 시가지에서 약간 벗어난 곳의 게스트하우스Beckers Gasthaus를 숙소로 정했다. 6시쯤 숙소를 나와 마르크트 광장에 나가니 중세기의 특별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구시가지와 보덴호반을 야간에 돌아보고 레스토랑에서 보덴호의 물고기 요리와 포도주로 식사를 하고  21시쯤 숙소로 돌아왔다.

10월 8일 날씨 화창. 9시 40분쯤 마르크트 광장으로 나가 신성(新城)Neue Schloss에서 훈더트 바써Hundert Wasser 즉 백수(百水)의 특별전에 출품된 그림들 감상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한 듯 대부분 일본풍의 그림들, 디자인 혹은 그래픽들이었다. 색채가 강렬하고 화려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화제(畵題)의 대부분은 일본글자로 붙여져 있었다. 독일인들을 비롯한 많은 서구인들이 진지한 태도로 그의 작품에 몰입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동양적인 것에 대한 관심인가?
 프랑스에서도 벨기에에서도 그랬고, 지금 독일에서도 그렇다. 일본인들의 집요함과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일본의 손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불쾌하긴 하나 그게 현실이었다. 우리도 빨리 손을 써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프랑스나 독일의 중요한 돔들 가운데도 일본이 이미 점찍은 흔적들을 제법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유럽 사람들의 뇌리에 확실히 박혀있는 것은 일본의 존재. 가는 곳마다 유럽이들은 우리 부부에게 ‘야뽕이나 야판’ 즉 일본인이냐고 물어왔다. 즉시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큰 소리로 대답하면 매우 겸연쩍은 표정들을 짓는 그들이었다. 씁쓸한 기분. 한국인들이 차를 몰고 유럽여행에 나선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상식으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각인된 우리의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중국은 좀 다르다. 아직은 문화재에 투자한다거나 정치적 제스처를 취할 여력이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어느 도시에나 중국음식점 하나 이상은 중앙에 버티고 있었다. 일찍부터 이곳에 진출한 그들의 전통과 역사를 말해주는가. 중국 음식점보다는 수적으로 열세이나 ‘스시’로 대표되는 일본 음식점도 도시마다 버티고 있었다. ‘값싸고 맛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중국음식에 비해 일본의 스시는 ‘비싼 음식, 고급 음식’이란 이미지가 서양인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듯. 일본인들은 음식을 통한 일본 마케팅에 성공한 듯 했다. 미국에서도 똑 같은 현상을 발견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우리는 ‘김치와 불고기가 세계인들의 밥상을 점령했다’는 착각에 빠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언론들의 ‘과장 보도’ 때문이다.  자, 이제 ‘사설’은 그만 접자.  

             ***

 메어스부르크는 이 도시의 중앙에 자리 잡은 고성(古城)으로부터 나온 이름이다. 도시의 가장 높은 곳. 단단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절벽. 그런 곳에 터를 잡고 이미 7세기에 성을 쌓은 것이다. 독일 최고(最古)의 성. 이곳이 바로 그들이 자랑하는 알테슐로쓰Alte Schloss다. 그 안은 지금 이 성의 생활사를 보여주는 뮤지엄Alte Schloss Museum 으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절벽 위에 세워진 성. 성으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14m 깊이의 낭떠러지다. 아찔하다. 그러니 그들이 성을 쌓은 1차 목적이 외적의 침입에 대한 방어였음이 분명해진다.
 아참, 다리를 건너기 전에 청동으로 만든 한 여인의 흉상이 이쁜 모습으로 서 있다. 드로스테Anne v. Droste Hulshoff란 낭만주의 시인이다. 이 성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한 유명한 시인. 그의 방도 별도로 두 개나 만들어져 있었다.
 다리를 건너 들어가자마자 정면에 예수님의 고상이 걸려 있으며, 그 위에는 검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양동이들이 수십 개나 매달려 있다. 화재에 대비한 물그릇들이다. 좌측으론 매표소가 있고, 그 위쪽에 붙은 섬뜩한 그림 한 장. 도끼로 오른쪽 손목을 찍는 그림이다. 하도 오래 되어 그림이 낡긴 했으나, 흘러나오는 피가 너무 생생하여 몸서리쳐졌다. 방문자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바로 이 그림이다. ‘이 성의 평화를 깨는 자의 오른 손을 자르겠다’는 것. 그 시절에 이들이 영위하고 있던 삶의 각박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중세기의 각종 조명기구들이나 여러 세대의 무기들이 전시된 통로. 시기적으로는 메로빙거 왕조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여러 번 주인이 바뀌다가 1526년 콘스탄츠의 왕자 출신 비숍의 소유로 된 것이 근대 이전에는 마지막이었던 듯. 그러나 1803년 그 성은 바덴Baden 주로 넘어갔고. 1837년, 라스벅Laβberg 출신 독일 학자 바론Baron의 딸이 그 성을 뮌헨 출신의 헤른Herrn von Mayerfels에게 팔아넘겼으며 1911년에는 알폰스Alfons와 이다폰밀러Ida von Miller에게, 1939년에는 그의 자손들에게 각각 상속되었다고 한다.
<계속>

**사진 위는 보덴호반에서 올려다 본 메어스부르크 구성의 아름다운 모습, 아래는 메어스부르크 구 성(Altes Schloss)의 게이트하우스(Gate house)에 붙어 있는 경고표지-성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방문자에게 경고한 옛 사인


200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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