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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59] 스위스 제1신(2) : 아인슈타인의 미소와 취리히의 장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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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9 23:55 조회 1,69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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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1신(2) : 아인슈타인의 미소와 취리히의 장래


 


 취리히 공대에 먼저 갔다. 취리히대학과 나란히 서 있지만, 별개의 학교란다. 멋진 건물들을 갖고 있는 두 학교. 취리히 대학은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150년 역사의 세계적 명문 공대 취리히ETH(Eidgenossische Technische Hochschule).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로비 가득 아인슈타인Einstein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1879년 독일 울름Ulm에서 태어난 아인슈타인이 어린 시절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복잡한 학습과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1905년 학문적 쾌거를 이룬다. 특수 상대성 이론과 광양자(光量子) 가설을 발표한 것.

 그는 16세 때 페더럴 폴리테크틱Federal Polytechnic에서 공부하게 되면서 취리히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지도교수는 알빈 헤르초크Albin Herzog였다. 나중에 그의 권유로 아인슈타인은 언어와 역사를 배우기 위해 칸톤스쿨Canton School로 잠시 나가 있기도 했다. 그리고 1909년. 그는 취리히 대학의 이론물리학 특별교수 자리에 취임했다.

 그 후 프라하, 베른 등 여러 곳을 전전했지만, 취리히와의 첫 인연은 매우 중요했던 것 같다. 상대성 이론 발표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전을 기획한 취리히공대의 의도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전시장엔 사진·논문·저서 등 아인슈타인에 관한 원본 자료들이 많았다. 1905년의 그 논문들, 단정한 글씨체로 써나간 그 원고도 친견할 수 있었다. 복잡한 수식(數式)들이 빽빽이 나열되어 있는 노란색 종이 몇 장이었다. 그러나 가장 감동적인 것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는 언제 바이올린까지 배웠을까. 경계를 초월하는 것이 천재의 속성인가. 나 같이 전공 하나만도 힘에 버거운, 둔재에 가까운 범재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취리히 대학의 교수였던 아인슈타인을 취리히공대가 왜 내세울까. 시간상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던 문제였지만, 아직 해답은 얻지 못했다. 다만, 취리히 공대는 처음에 취리히대학의 한 부분이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다. 아인슈타인이 취리히 대학 소속이었다면, 당연히 공대교수였을 것이고. 나중에 분리된 취리히 공대가 아인슈타인의 연고권을 갖는 것 또한 당연지사. 그러나 두 학교의 관계에 대해서 정확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독자 제위는 양지하시라.   

 어쨌든, 아인슈타인으로 인해 취리히 공대는 더욱 빛을 발했다. 물리학이나 공학의 문외한인 나는 그곳에서 스위스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독일에서 적응하지 못하던 천재를 기꺼이 받아들여 세계적인 대학자로 키워낸 저력. 그것은 자유로움과 따뜻함을 바탕으로 하는 힘이었다. 전체주의와 봉건세력의 잔재가 힘을 유지하던 유럽에서 스위스만은 시민계급이 급성장했고, 아인슈타인 같은 유대인을 받아들일 만한 사회적 바탕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계속>


**사진 위는  아인슈타인의 어린 시절, 아래는 취리히공대 아인슈타인 특별전-물리학 이론을 적은 친필 노트


200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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