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38] 독일 제8신(2) : 네카강에 핀 불멸의 꽃, 하이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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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4:17 조회 1,735회 댓글 0건본문
독일 제8신(2) : 네카강에 핀 불멸의 꽃, 하이델베르크
13번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오니, 그 주위로 보와세레 궁전·대공의 궁전·미터마이어 하우스·프랑스 그랭베르 백작의 집·프린츠 카알 등이 분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대학부터 살피기로 했다. 사실 이곳 관광협회가 추천하는 관광도 대학광장부터 시작된다. 대학 광장엔 하이델베르크 시의 상징인 사자상이 서 있다. 혀를 내빼고 있는 귀여운 사자상이다. 나중에 확인해본 바로는 와인에 취한 사자의 형상이란다. 하이델베르크성 안에 세계 최대의 와인 저장 통이 있고, 성 안에 혀를 내민 사자상이 있는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바로크식 지붕을 갖고 있는 바로 뒤의 구 대학. 지붕에는 종 달린 시계 탑이 있고, 아치형의 덮개가 있는 문이 둘이다. 침착한 단색 지붕의 굴곡과 벽면과 창틀의 색상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설계자는 요한 브로이닉. 1712년-1728년 선제후(選諸侯) 요한 빌헬름이 짓게 했다 한다.
이 건물에 충격적인 공간이 있었다. 바로 학생감옥Studenten Karzer. 총장실, 대강당, 박물관 등이 있는 이 건물의 뒤쪽 거리 아우구스티너가쎄Augustiner gasse에 면한 공간이었다. 좁고 어두컴컴한 그곳(막아놓은 곳도 있어서 정확한 넓이는 알 수 없음), 쇠창살로 막힌 독방들에는 뼈대만 남은 철제 침상, 상처 투성이의 나무책상 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4면의 벽과 천정에는 낙서들만 가득하다. 물감이나 양초, 그을음 등 그릴만한 도구나 재료들은 모두 동원한 듯, 대부분 시커먼 바탕에 울긋불긋 요란스럽다. 모두가 훌륭한 예술이었다. 갇힌 자들이 울분을 토로했다면, 그 표현 동기가 얼마나 절실했으랴! 절실한 동기에서 나온 예술은 결코 도락(道樂)이 아니다. 그들은 낙서와 그림들을 통해 오연한 패기와 낭만을 마음껏 분출했으리라.
학생감옥을 보면서 당시의 당당했던 ‘교권(敎權)’을 상상한다. 1712년부터 1914년까지 사법권을 갖고 있던 당시의 이 대학 행정당국. 과음·행패·소동 등 질서를 위반한 학생에게 최고 2주, 국가권력에 반항하는 학생에게 4주의 금고형을 내렸다니 대단하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금고형에 처해지는 것을 오히려 ‘남자다움’의 징표로 생각하고 명예롭게 여겼다고 한다. 이미 ‘교권’이란 말 자체가 생명을 잃어 사전에서나 찾아 볼 수 있게 된 요즈음의 우리나라다. 학생들 눈치 보기에 급급한 한국 교수의 입장에선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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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감옥을 샅샅이 돌아보며, 추상같은 교권을 상상해보다가 대학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다른 측면으로 이 대학의 본질을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들어서자마자 대학의 역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1386년 선제후 루프레히트 1세가 세운 독일 최초의 대학 하이델베르크, 올해로 619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벽면에는 대학의 ‘설립·발전·확장·지속’의 모든 과정들이 실제 자료들을 바탕으로 설명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과 눈을 강하게 때리는 것은 교수들의 면면이었다. 아, 가다머, 칼 만하임, 칼 야스퍼스, 헤겔, 막스 베버, 로데, 군돌프, 헬름홀츠 등 철학·사회학·물리학의 세계적인 대가들이 그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헬름홀츠 같은 물리학자야 워낙 거리가 멀지만, 다른 사람들이야 책상머리에 꽂아둔 저서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거장들이 아닌가. 별같이 반짝이는 대가들, 그들이 하이델베르크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키워냈을 것이다. 특히 야스퍼스 교수는 미군정 하에 있던 2차 세계대전 직후 의학자 칼 바우어와 함께 대학의 재 개교를 발의하여 성사시키기도 했다. 최고의 지성은 최고의 용기와 통한다는 사실을 그는 보여준 것이다. 9개 학부에 총 3만여 명의 학생들이 젊음을 불사르는 곳. 인문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공들이 노이엔하임으로 옮겨갔으나,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정신은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다. 대학의 본질이 인문학에 있다는 점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대학을 망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으리라.
베드로 교회 건너편에 대학 도서관이 있다. 1901-1905년, J. 두름이 건립. 유겐트 양식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건물이다. 외양을 보고 수백 년 된 성당이나 수도원으로 착각한 이 건물. 다가가 자세히 보니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Universitat Bibliothek이었다. 학생도 시민도 자유로이 드나들며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곳. 3개월 이상만 체류하면 외국인도 자유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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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대학Neue Universitat 서남쪽에 서 있는 마녀탑Hexenturm. 중세에 건축된 성탑인데 여자 감옥으로 쓰이다가 1차 세계대전 전몰학생 추모관이 되었다고 한다. 거기서 약간만 걸어가면 1750년에 건립된 콜레기움 아카데미쿰Collegium Academicum이 나타난다. 현재 대학 행정본부가 자리 잡은 건물이다. 카알 대제 신학교·예수회 수도원 등을 거쳐 대학의 소유로 바뀐 것이다. 양파 모양의 탑 상단부가 특히 아름다운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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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을 어찌 2-3일만에 다 살펴볼 수 있으랴. 대학의 핵심은 정신이다. 정신이 빠진 대학은 ‘정신 나간 사람’과 같다. 그런 점에서 본질과 현상을 제대로 구비한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부럽다. 그런 바탕이 있기에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학의 본질이나 정체성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선발대학들의 외면만 열심히 모방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들. 과연 그 끝은 어디일 것인가. <계속>
**사진 위는 하이델베르크대학 도서관, 아래는 이 대학 교수였던 철학자 칼 야스퍼스(대학 박물관에 그와 그의연구나 강의에 관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고, 그가 살았던 집도 시가지에 남아 있음)
200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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