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43] 독일 제10신 : 바덴바덴Baden-Baden에서 만난 브람스Johannes Brah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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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4:27 조회 1,675회 댓글 0건본문
독일 제10신 : 바덴바덴Baden-Baden에서 만난 브람스Johannes Brahms
10월 1일 토요일, 비가 내림.
10시 50분 링겐펠트Lingenfeld의 숙소를 출발, 11시 25분 슈파이어의 젠트룸에 도착했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 듯. 매력적인 이곳에서 하루를 더 묵을 요량으로 시내를 뒤졌으나, 방 구하기에 실패했다. 돔을 방문한 뒤 젠트룸의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시장기를 해결한 다음 오후 3시 14분 슈파이어 출발했다. 9번을 타고 칼스루에 방향으로 달리다가 길을 놓치고 말았다. 다시 돌아와 주유소 총각에게 길을 물었고, 그가 가르쳐준 대로 61번을 타고 가다가 4시 15분 경 A5에 합류하여 바덴바덴 직행에 성공했다. 초입의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 호텔 정보를 받은 시각이 5시 정각. 콩그레스 거리를 거쳐 리히텐탈 거리의 카이저호텔 Hotel ‘Deutscher Kaiser’에 안착했다. 드디어 바덴바덴에서의 첫 밤을 맞이한 것이다. ‘올림픽 서울 개최’의 함성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20여년이나 지난 일임을 깨닫고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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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일요일, 흐림.
10시쯤 숙소를 나와 젠트룸으로 진입했다. 고급호텔들과 카지노들이 즐비한 바덴바덴의 중심가였다. ‘목욕하다’는 뜻의 독일어 바덴Baden이 겹쳐져 도시 이름이 될 만큼 온천장이 많은 곳이었다. 수영복을 입는 곳도 있지만, 프리드리히 온천장 같은 곳에서는 수영복을 입지 않는다고 한다. 우연히 그 호텔 안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다하여 찾아갔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이 호텔의 온천장에서는 화·금요일 오후 4시부터, 수·토·일요일 및 국경일은 하루 종일 남녀 혼욕을 한다는 말에 한 번 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아우구스타 광장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광장 한 쪽에 있는 신교 교회(Evangelishe Stadtkirche)를 찾아 예배에 참석했다. 광장의 분수와 어우러지는 두 개의 첨탑이 멋진 교회였다. 스테인드글라스나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내부가 구교의 성당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여성 목사님이 주관하는 주일 오전 예배. 신도들이 가득했고 분위기 또한 그만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우연히 한국인 신도 김영희 씨와 두 아기들을 만나 환담을 나누었다. 독일 생활의 고민과 어려움을 말하는 그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다음 일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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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 도시의 향락에 동참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온천욕으로 그간의 피로나 풀어볼까 하다가 알몸에 남녀 혼욕이라는 미확인 정보를 얻어듣곤 혼비백산하여 그마저도 포기한 것이 그 증거라고나 할까. 대부분 있는 사람들이 돈 싸들고 들어와 카지노와 온천을 즐기는 곳이 바덴바덴이란다. 그러니 환하게 불 밝혀진 저 레스토랑 안의 북적대는 선남선녀들은 우리와 부류가 다른 인종들이렷다?
그래서 우리는 브람스Johannes Brahms를 만나는 것으로 바덴바덴에서의 일정을 때우기로 했다. 지도상엔 ‘리히텐탈거리Lichtental Str.에 있는 것으로 표기된 브람스하우스Brahmshaus. 관광객을 빼면 현지인들이 몇 되지도 않지만, 그들마저 브람스하우스를 잘 모르고 있었다. ‘제나라 국민들도 모르는 음악가를 외국의 우리가 이 고생하며 찾아볼 가치가 있는가.’ 한참 헤매다가 터져 나온 탄식이었다. 그러나 문학이나 예술, 학문에서 국적이 무슨 상관이랴. 인류 보편의 문화적 자원이요 공동의 재산 아닌가. 더욱이 우린 어려서부터 브람스의 자장가를 배웠으며, 그의 음악적 재능을 귀동냥해왔다. 그 뿐이랴. 그는 연인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에 대한 사랑으로도 이미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어찌 바덴바덴에 와서 이 멋진 인물을 만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한동안 헤매던 우리는 산책하는 노부부를 만났다. 그들에게서 비로소 가는 길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지도에 표시해준 대로 찾아가니. 아뿔싸! 바로 우리가 하룻밤을 잔 호텔 바로 뒷동네 아닌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브람스하우스가 있는 것도 모르고 우리는 이곳에서 쿨쿨 잠만 잔 것이다. 진작 알았더라면 괜히 복잡한 젠트룸까지 가서 헤맬 필요가 없었을 것을. 세상일이란 모두 이렇다. 알면 쉽고 모르면 어려운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란 거의 없으면서도 결과는 엄청나다. 한 마디 귀띔을 해주지 않은 호텔 직원이 원망스럽긴 하나, 어쩌면 그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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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하우스는 브람스가 1865년부터 1874년까지 매년 여름철을 이곳에서 보낸 집이다. 이곳이 말하자면 여름별장이었던 셈이다. 이곳에서 그는 많은 대작들을 완성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의 연인 클라라의 집이 바로 그곳에서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브람스하우스는 막시밀리안슈트라쎄Maximilianstraβe 85번지, 클라라의 집은 하우프트슈트라쎄Hauptstraβe 8번지였다. 도보로 7, 8분 안팎의 거리. 브람스는 아마도 클라라 때문에 이곳을 여름 거처로 잡았을 것이다.
마을에는 브람스와 클라라의 공원이 있었고, 마을사람들 모두 그들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하우프트 거리 중심부의 레스토랑 ‘골데너 뢰베Goldener Lowe'. 그 집의 게시판에도 브람스의 초상화가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었다. 흡사 브람스가 늘 이 집에 들러 차를 마시고 음식을 먹었음을 강조라도 하려는 듯. 물론 식당이 입주하기 훨씬 전 이 건물의 까페에서 브람스와 클라라는 만났겠지. 어느 선까지 진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한적한 숲길을 산책도 했으리라.
브람스하우스는 언덕 위에 있었다. 백색의 2층 목조건물이었다. 비를 맞아 축축한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 집 앞에는 ‘이쁜’ 꽃들이 심겨져 있었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려는 듯 작은 선반도 세워져 있었다. 대문 옆의 벽에는 브람스가 살던 집임을 표시하는 동판도 붙어 있었다.
안내원을 따라 삐걱거리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니 좁은 공간 셋이 우리를 맞이한다. 피아노와 브람스의 흉상, 사진, 각종 소품들이 놓인 거실이 그 하나이고, 침대와 브람스의 사진들이 전시된 그 옆의 침실이 두 번 째,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클라라의 흉상과 브람스 관련 각종 자료들이 전시된 주방이었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단출하여 정감이 갔다.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악상을 떠올리고 피아노를 두드렸을 대음악가의 정열이 손에 잡힐 듯 했다. 가끔은 클라라를 만나기도 하면서. 그가 악상이 떠오를 때마다 휘갈기듯 그려낸 오선보의 사본. 그 날아갈 듯한 필치가 우리의 눈을 어지럽혔다. 아, 그는 이 아름다운 작은 집에서 사랑도 나누고, 음악의 성도 쌓았구나. 브람스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기까지 순서대로 진열된 사진들을 보며 우리네 삶의 궤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일종의 정감이랄까. 큰 규모의 베토벤 생가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잔잔한 자장가나 가벼운 교향악을 볕 좋은 처마 밑 안락의자에 앉아 듣는 느낌, 동네 까페에서 만날 수 있는 할아버지의 잔잔한 음성을 듣는 느낌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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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바덴은 생각보다 번잡한 곳이었다. 연일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북적대기 때문이다. 혼란스럽던 마음은 외곽 지역의 한적한 브람스하우스에서 정리되었다. 브람스하우스에서 구입한 CD 한 장으로 즐거워진 우리의 마음. 그 마음으로 이제 슈바르츠발트와 판타지 가도가 형성하는 환상지대를 달려갈 것이다.
<계속>
**사진 위는 브람스하우스 앞에서, 아래는 브람스하우스의 거실 모습
200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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