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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46] 여행 단상(1) : 길을 찾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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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4:31 조회 1,75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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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단상(1)  길을 찾으며


 유럽에 온 이래 이곳 사람들에게 길을 묻지 않는 날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길을 묻곤 한다. 그런데 붙잡고 물어보는 사람마다 어쩌면 그리도 친절한지. 어쩌면 그리도 길들을 잘 아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에 비해 안내책자나 관광지도는 사람들의 인정과 대조적이다. 손바닥만한 종이에 거미줄 같은 도로망을 깨알 같은 글씨로 박아놓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인포메이션 센터들에서 얻는 관광지도의 실상인데, 부자나라들의 인색함이란!

 모두 현지어로 되어 있는 길 이름들을 쉽게 익힐 재간이 없다. 그러니 현지인들을 붙잡고 물을 수밖에. 그러나 열에 일곱 여덟은 영어를 한 단어도 모른다. 우리가 영어로 물으면 그들은 아랑곳 않고 그들의 말로 대답한다. 비록 의사는 통하지 않아도, 지도 위에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을 짚으면 손짓·발짓을 섞은 그들의 말로 잘도 설명한다.

 그런 설명을 보고 들으며 우리도 해답을 찾아낸다. 가보면 그들의 설명이 얼마나 정확한지, 우리가 얼마나 똘똘하게(?) 그것을 간파했는지 스스로 감탄하곤 한다. 만약 서울에 온 어느 외국인이 내게 길을 묻는다면, 과연 나는 그들을 잘 인도해줄 수 있을까. 그들을 낯선 땅에서 헤매지 않도록 배려할 수 있을까.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무성의하게 대해 주지는 않을까. 친절한 외국인들을 매일 만나면서 새삼 반성하는 요즈음이다.

             ***

 누구에게나 걸어가는 길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길이 정확한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이라면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고 말들을 하지만, 어떤 길이 올바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그래서 인간은 방황을 한다. 올바른 길을 제대로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길을 나서서 헤매는 날이 많다.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목적지를 찾을 수 있다는 오만함 때문에 한 나절을 헤맨 적도 있다. 그 뒤부턴 맨 먼저 현지인들에게 묻는다. 그들의 설명을 들으면 헤매지 않고 목적지를 찾는다. 물론 한 사람의 현지인으로는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때는 몇 사람의 현지인들을 거쳐야 한다. 길을 잡아준다는 점에서 여행 중 만나는 현지인들이야말로 좋은 선생님들이다.

 살아가면서 좋은 길·정확한 길을 알려주는 사람만 있다면, 인생이 어찌 고달프랴! 열심히 살아도 길을 잘못 들면 벨기에의 앤트워프에서 길을 잘못 들어 거의 하루 동안 고생한 우리처럼 괴로운 인생살이를 면할 수 없다.

            ***

 성공하는 사람도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성공한 사람의 길을 선망한다. 그가 가는 길이 최선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길일뿐이다. 그의 길을 보면서 나의 방향을 잡을 수는 있겠지만, 내가 그의 길을 갈 수는 없다.

 가능한 길을 가르쳐 줄 수는 있다. 좋은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좋은 방향’, ‘가능한 길’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 길을 제대로 잡느냐 못 잡느냐는 학생에게 달렸다. 외국인들이 여행자에게 성의껏 길을 알려주지만, 그러나 그것은 가능한 길, 지름길, 올바른 방향일 뿐이다. 제대로 찾아가는 것은 여행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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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길 찾는 일’이다. 길을 묻다가 하루를 다 보내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루를 다 보내도 제대로 찾기만 하면 괜찮다. 잘못해서 엉뚱한 길로 접어드는 경우는 여행 자체를 망친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인생행로(人生行路)’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과 여행은 같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인생은 나그네길이다. 늘 길을 묻는 것이 사람의 삶이다. 길을 찾지 못하면 벼랑으로 떨어지거나 구덩이에 빠진다.

 길을 묻는 것은 배움을 구하는 행위다. 우리는 훌륭한 옛날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배운다. 학교와 선생님은 그 길을 가르쳐 주는 존재들이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길을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그러면 선생님은 대답을 줄 것이다. 그러나 그 대답이란 선인들이 걸어간 길일뿐이다. 그것을 참고로 너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대답일 뿐이다.

 여행의 전부는 길을 묻는 일이다. 길만 안다면 여행 문제의 90%는 해결되는 셈이다. 대부분 새로움을 찾기 위해 떠나는 게 여행인 만큼, 진정한 의미에서 아는 길을 따라 떠나는 여행이란 여행이 아니다. 미지(未知)의 세계, 존재하긴 하나 알 수 없는 세계를 찾아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

 유럽 대륙을 누비고 다니다 보니, 길 찾는 게 일과가 되었다. 길을 잘 못 찾아 헤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되어, 객창(客窓)의 한등(寒燈)을 벗 삼아 몇 자 적어본다.  


             2005. 10. 2. 
 ‘길을 찾아 헤맨’ 헤르만 헤세의 고향 칼브Kalw에서

    <계 속>

**사진 위는 슈바이히의 와인굿 펜션 쉬프Schiff 가는 길, 아래는 1830년에 그린 하이델베르크 지도(하이델베르크 고성 유물전 로맨틱실) 


200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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