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독일 제11신(2) : 칼브Calw에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를 만나다 > 여행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여행기

유럽여행기 [45] 독일 제11신(2) : 칼브Calw에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를 만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4:30 조회 1,772회 댓글 0건

본문

독일 제11신(2) : 칼브Calw에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를 만나다
 


 10월 3일 월요일. 우리나라의 개천절이자 독일의 국경일. 동·서독이 통합된 날이란다. 그러니 우리의 개천절과 독일의 이 날이 의미적으로 통한다고나 할까. 이왕이면 우리도 개천절 날 통일되면 좋지 않겠는가. 갈라졌던 민족이 다시 통합된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개천(開天)’이 아닌가.
 그런데 창문을 여니 비가 내린다. 흑림 지대의 초입이라선지 울창한 숲으로 사방은 컴컴한데, 집집마다 굴뚝에선 연기가 솟아오른다. 그 연기를 시샘해서인가, 빗줄기의 굵기가 예사롭지 않다. 이 좋은 곳, 헤세를 만나러 그의 고향에 온 날 하필 비가 내릴 건 무언가. 날씨가 야속했다. 날씨도 여행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 중의 하나인데, 벌써 몇 번째 날씨 때문에 고생이다.
 호텔 식당에서 조반을 마친 후 우산을 쓰고 걸어서 칼브에 갔다. 가면서 마을의 아름다운 집들을 감상하기로 한 것이다. 다양한 모양의 집들, 다양한 색깔 등이 울창한 숲과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이다. 집 주변의 꽃밭에는 원색의 꽃들이 피어있고, 창틀에는 꽃바구니가 매달려 있다.
 칼브에 도착. 주차건물은 여전히 흉물스럽다. 빗속에서도 마르크트 광장에서는 난전이 준비되고 있었다. 휴일에는 거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그 기회에 개인들은 물건(주로 골동품이나 소품들)을 들고 나와 판매할 수 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작은 포장들을 둘러치고 자잘한 물건들을 진열하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의 좋은 구경거리였다. 쓰던 그릇, 그림, 장식품, 책 등등 없는 게 없었다. 이동하는 길만 아니라면 싼 값에 사고 싶은 물건들도 더러 있었다.
 
             ***

 헤세 광장Hesse Platz이 있었고, 나골트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는 실물대의 헤세 동상이 서 있다. 그 옆엔 니콜라우스 성당이 있고. 그의 70회 생일과 바로 한 해 전인 1946년에 받은 노벨문학상을 기념하기 위해 이 광장에 헤세의 이름을 붙였다 한다. 광장 중심부의 헤세 분수 역시 1920년 이래 이곳에 있었다.
 1886년부터 1889년까지 이 광장을 가로질러 학교를 오갔을 헤세. <고향Heimat>(1918)이라는 작품에서 이 광장을 ‘자신이 이 마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적었을 만큼 그는 이곳을 사랑했다.
 시청 건너편의 멋진 집. 1692년 무역회사로 지어진 이 집에서 1877년 그는 태어났다. 마르크트 광장을 약간 벗어나 헤세 광장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또 하나의 멋진 집이 나타나는데, 바로 1874년부터 81년까지 헤세 가족들이 살던 곳이다. 시청 건너편의 그 건물에서 태어난 그는 이곳에서 유아시절을 보낸 셈이다.
 걷다보면 칼브 시내 곳곳에 헤세와 관련된 표지들이 붙어있다. 칼브 자체가 그의 공간이라 할 만큼 헤세에 관한 정보가 그득하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헤세 뮤지엄. 아홉 개의 방으로 구성된 이 뮤지엄에는 그의 삶과 그의 작품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진열되어 있다.
 친가·외가를 불문하고 조부모들도, 부모도 모두 뛰어난 재질을 지니고 있었다. 헤세의 자질 또한 그들로부터 대물림 되었으리라. 50편 이상의 소설들과 600편 이상의 시를 발표했고, 노벨문학상을 탄 헤세. 사실 60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헤세의 위상은 더욱더 높아졌고,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 헤세를 주목했다. 독일어권의 헤세 뮤지엄만 해도 칼브를 포함 15개나 되고,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헤세학회가 결성되고 인터넷 사이트까지 개설될 정도.

             ***

 34세 때인 1911년 인도를 여행한 헤세. 그러나 인도에 실망한 채 귀국하여 병에 걸린다. 이사하여 스위스의 베른에 살던 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참전하려 했다. 지독한 근시 때문에 거절당하긴 했지만. 그런 이유로 그는 전쟁포로들을 위해 힘을 쏟았다. 전쟁에 관한 글들의 출판이 금지되자 <에밀 싱클레어Emil Sinclair>란 풍자적 작품을 썼는데, 그 때문에 <데미안>의 출판도 쉽지 않았다. 1916년 그의 부친이 사망하면서 그간 쌓여온 여러 문제들로 정신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에 이르고 말았다.
 그만큼 그의 생애는 고뇌의 연속이었다. ‘잃어버린 자아’를 회복한다거나 자아의 근저를 모색하려는 것이 헤세가 문학을 통해 추구한 목표였다. 당연히 현실에서 초탈하여 구원(久遠)의 세계를 묘사할 수밖에.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아리게 만든 그의 작품세계도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었으리라.

             ***

 <데미안>, <싯달타> 등에 심취해있던 나처럼 헤세의 작품을 읽으며 사춘기의 격랑을 헤쳐 왔다는 아내. 특히 그의 <수레바퀴 밑에서>를 반복해 읽으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그녀다. 우리가 맨 처음 유럽행을 결정할 때 그녀는 헤세와 그의 고향 칼브를 말했다. 칼브에 와서 확인할 게 있다고 했다. 오늘,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말은 안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녀는 자신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헤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비해 칼브는 너무 번잡하고 크다. 특히 도심에 버티고 서 있는 대형주차장과 마켓이 눈에 거슬린다.
 둘째, 그의 작품은 세상 젊은이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고, 그 때문에 자살한 아이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정작 그는 세속적인 영예와 86세의 천수를 누리고 갔다. 좀 배신감이 들지 않는가.

             ***
  
 그렇다. 바덴바덴으로부터 시작되는 판타지 가도를 달리며 작은 마을들을 수 없이 지나온 우리. 우리가 본 것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과 집들이었다. 그런 빼어난 서정성과 ‘작음’의 진수(眞髓)로 존재하는 칼브를 우리는 상상했던 것이다. 아름다움의 극치로 존재하는 칼브, 상업성보다는 헤세의 고뇌가 별처럼 빛나는 곳, 그런 곳이어야 했다.
 물론 칼브는 아름다웠다. 시가지를 그득 채운 그 많은 목조건물들을 다른 곳 어디에서 볼 수 있으랴. 도란도란 흐르는 작은 강 ‘나골트’ 역시 거대한 라인강이나 모젤강, 다뉴브강, 혹은 네카강과 달랐다. 친절하고 순박한 주민들도. 그러나 무엇보다도 헤세의 존재, 곳곳에 배어있는 그의 숨결과 체취를 칼브 아닌 다른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리.

그래서 우리는 칼브를 여전히 사랑하기로 했다.    

<계속>


**사진 위는 칼브시의 한 건물-헤세의 가족이 한 때 살았던 곳, 아래는 헤세광장 근처 네카강의 다리 위에서 헤세와 함께


2005-10-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白圭書屋:::
대표자 : 조규익 | Tel : 010-4320-8442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 E-mail : kicho@ssu.ac.kr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