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52] 독일 제 13신(5) : 마음의 밭에 뿌려진 튀빙겐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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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4:41 조회 1,703회 댓글 0건본문
독일 제13신(5) : 마음의 밭에 뿌려진 튀빙겐의 추억
사실 유럽에 온 이래 교회들을 무수히 보고 다녔소. 어느 동네에 가든 어느 도시에 가든 반드시 중심에는 교회가 있었소. 수백 년, 아니 1000년 넘는 것들도 있었소. 엄청난 규모의 교회들이 도시의 생활을 지배한다는 느낌. 매 15분마다 ‘땡땡’하고 종을 울려대는 교회들. 믿는 자가 아니라도 시시때때로 들려오는 그런 종소리를 들으며 백번에 한 번은 선심(善心)을 낼 수 있을 것 아니겠소? 서양 사람들은 일생 동안 세 번만 교회에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소. ‘세례 받을 때 한 번, 결혼할 때 한 번, 죽어서 한 번’이라는 농담. 그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오. 그러나 교회에 가지 않아도 동네 한 복판에 우뚝 선 교회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오. 비록 교회엔 가지 않아도 쉽사리 나쁜 짓을 할 수는 없을 거라는 내 생각이 좀 엉뚱하오?
그런데, 슈티프트 교회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였소. 가톨릭 중심인 유럽에서 우리는 대부분 구교의 성당들을 만났었는데, 이쪽 지역으로 오면서 신교 교회를 자주 만나게 되오. 종교개혁의 발원지이며, 신·구교 간의 충돌이 심했던 스위스와 가깝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소. 튀빙겐에 오는 도중 들렀던 헤렌버그의 슈티프트 교회도 그랬소. 그 교회의 목사님도 말씀하셨듯이 어느 시기까지는 신·구교가 공존했던 것 같소. 그러다가 점점 분리되었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이쪽 신교 교회들의 내부를 돌아보면 구교의 성당들에서 익숙히 보아오던 내부구조로 되어 있는 곳이 많소. 그 뿐이 아니오. 신교 교회의 제대 앞에는 예수님의 고상도 걸려 있더란 말이오. 내가 놀란 것은 우리나라에서 예수고상을 걸어놓는 교회를 나는 아직 본 적이 없기 때문이오. 왜 유럽에는 예수님의 고상이 걸린 신교의 교회들이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없는가. 이점은 앞으로 좀더 연구를 해보아야 할 듯 하오.
이렇듯 튀빙겐 대학의 신학교가 신교이고, 슈티프트 교회도 신교인 점으로 보아 이 도시는 신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음이 분명한 듯 하오. 이에 반해 시내의 중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성 요한 성당이나 가톨릭 신학원인 빌헬름교회 등은 구교의 성당들이었소.
이밖에도 우리는 시가지를 누비며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소. 사람들이 비교적 개방적이면서도 친절한 것은 대학인(학생, 교직원 및 기타)들이 주민의 40%를 차지하기 때문인 듯 하오. 학생들 가운데는 국내의 외지 출신이거나 해외 유학생들이 많지 않겠소? 사람들의 마음이 당연히 열릴 수밖에 없으리라 보오. 하이델베르크와 마찬가지로 이 도시에 특별한 애착이 가는 이유도 바로 그런 데 있는 게 아닐까요. 이 외에도 학생감옥이나 네카바트, 네카할데, 네카브뤼케, 야곱교회 등등 가본 곳들은 아주 많지만, 너무 길어져서 줄이겠소.
아참, 이것만은 꼭 말하고 넘어가야겠소. 튀빙겐에서 헌책방 여러 곳을 발견한 일이오. 내가 시내를 배회하며 목격한 곳만도 대 여섯 군데는 되는 것 같았소. 꽤 큰 규모의 책방들이었소. 단순히 헌 책을 싸게 파는 곳. 학기를 마친 학생들이 팔아먹은 교과서를 되파는 그곳이 아니었다는 말이오. 왜 형도 가끔 들르지 않소? 고서점 말이오. 오래 된 책들 가운데는 진짜로 ‘값나가는 책’이 있기 마련이오. 유럽은 출판의 역사가 길어서 이삼백년 된 책들은 예사로이 볼 수 있는 곳이오. 짐을 줄여야 하는 나그네 신세만 아니라면, 가는 곳마다 맘에 드는 책들을 좀 사고 싶소. 그러나 몸도 무겁고, 짐도 무겁고, 마음도 무거운 게 나그네 아니오? 그래서 요즘은 꾹 참고 있소. 내겐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멋진 친구가 있소. 책 욕심이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두껍다는 친구요. 아마도 그 친구라면 이곳에서 관광 때려치우고 고서점들이나 ‘도거리’하자고 달려들지도 모르겠소.
***
C형! 중언부언 주워섬기다보니 말이 길어졌소. 하이델베르크와 같으면서도 다른 곳이 바로 이곳 튀빙겐이요. 네카강으로 연결되는 두 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이루어졌고, 고성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이루어진 곳. 철학과 신학·문학 등 인문학을 바탕으로 학문의 최고봉을 이루어낸 곳. 어쩌면 강줄기를 통해 서로의 정서가 통했을지도 모르오. 그러나 다른 점도 많을 것이오. 느낌으로는 다른 점들을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 말로 구체화할 단계는 아닌 듯 하오. 다른 기회를 찾아보도록 하겠소.
튀빙겐. 오래도록 보고 싶던 곳이었소. 튀빙겐의 추억이 내 마음의 밭에 씨앗으로 뿌려져 싹 트고 꽃 필 날이 분명 있을 것이오. 그 때를 기다리며 의미를 다져 가려 하오.
이제 내 발길을 튀빙겐 남쪽 호엔촐레른 성으로 돌리고자 하오. 그곳에 가서 다시 연락하리다. 편히 계시오.
2005. 10. 6. 밤
헤팅겐Hettingen의 호텔방에서
백규
<계속>
**사진 위는 튀빙겐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시청사-1435년 건립, 1508년 제4층 추가, 1511년 스퇴플러에 의해 천문시계 부착, 1877년 그림같은 외관을 갖춤, 아래는 튀빙겐 대학 박물관의 짝퉁 전시품-원반 던지는 사람
200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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