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54] 독일 제14신(2) : 헤힝겐Hechingen과 지그마링겐Sigmaringen의 고성(古城)으로 꽃핀 호엔촐레른H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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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9 23:41 조회 1,721회 댓글 0건본문
독일 제14신(2) : 헤힝겐Hechingen과 지그마링
겐Sigmaringen의 고성(古城)으로 꽃핀
호엔촐레른Hohenzollern가의 영광, 그리
고 오늘의 독일
호엔촐레른성. 우리가 가고 있는 헤힝겐과 지그마링겐 두 곳에 있는 성이다. 말하자면 같은 이름의 성이 두 지역에 서 있는 것이다. 두 성은 호엔촐레른 왕조 혹은 가문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증거물들이다.
라이헨나우Reichenau 수도원의 수사 베르톨트Berthold가 쓴 ‘벨트크로닉Weltchronik'. 그는 이 글에서 두 기사(騎士)의 이야기를 인용했다. 즉 촐레른의 부르크하르트Burchard와 베질Wezil이 1061년의 전투에서 죽었다는 것. 중세기의 역사 기록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는 이 사실은 호엔촐레른이 독일 부르크하르트왕가의 시초임을 의미한다고, 대부분의 사가들은 의견의 합치를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문헌상 ‘호엔촐레른성’의 첫 언급은 헤힝겐 근처 슈테텐Steten 수도원에서 나온 1267년판 교회 간행물에 보인다고 한다. ‘독일 관내에서 가장 단단한 성’, ‘스와비아Swabia에 있는 모든 성들의 으뜸’ 이라고 표현한 말들은 이 성이 당시 매우 크고 인상적이었음을 보여준다.
1188년 촐레른 출신의 프리드리히 3세는 뉘렘베르크의 부르그라베 가문의 딸과 결혼. 부르그라베가 죽자 프리드리히는 그의 모든 재산을 상속한다. 그 재산은 그의 아들들에게 분배되었고. 그 결과 호엔촐레른의 두 계열 즉 스와비안Swabian과 프랑코니안Franconian이 파생된다. 스와비안 계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영지 안에 머문 반면, 다른 계통은 그의 소유를 프랑코니아로 확장하게 된다. 그게 바로 프랑코니안 계.
프랑코니안 계 후손들은 15세기 초 브란덴부르크에서 왕권에 관여하게 되고, 드디어 1701년 프레데릭 3세(1657-1713)는 스스로 프러시아의 왕이 된다. 그리고 빌헬름 1세(1797-1888)는 프랑코-프러시아 전쟁의 승자로서 1871년 독일의 황제로 등극한다.
반면 스와비안 계는 재산상속을 둘러싸고 프레데릭 12세와 아이텔 프레데릭 1세 간 형제의 분쟁에 휘말린다. 이 가족간의 싸움으로 성은 10개월간 포위되었고, 결국 1423년 완벽하게 부서지고 만다. 1454년 이 성의 재건을 시작한 촐레른 출신의 요스트 니콜라스(1433-1488).
이 성은 결국 북서쪽을 향한 세 개의 탑을 가진 말발굽 모양의 위엄 있는 성으로 다시 세워지게 된다. 1454년의 이 디자인은 19세기에 성을 다시 건립하는 모델이 되기도 했다. 1454년의 것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1461년에 봉헌된 미셸 성당 뿐.
1623년 스와비안의 호엔촐레른은 프린스Prince의 타이틀을 받았고, 수 세기 동안 그들의 재산을 호엔촐레른 성으로부터 보다 근대적인 헤힝겐의 궁과 하이거로크Haigerloch, 지그마링겐의 성 등으로 옮겼다.
옛날의 호엔촐레른 성은 30년 전쟁 통에 부서져 버렸으나, 그 후 더욱 강한 요새로 재생할 수 있었다. 1667년에서 1771년 사이 그 성은 오스트리아 왕조를 위해 군사적 요충의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그 후 군사적 중요성을 상실하고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워 결국 폐허로 변한 것이다.
1819년 성의 폐허를 찾은 프러시아의 왕세자 프레데릭 윌리엄 4세. 자신의 조상들이 남긴 자취를 복원·재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용 가운데 자신은 3분의 2를 대고, 스와비안 가의 두 계열에서 나머지를 대게 했고. 그런 까닭에 지금도 이 성의 지분 가운데 3분의 2는 프러시안계가 3분의 1은 스와비안계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
두 성들 모두 아름답고 화려했다. 지대가 높고 산으로 둘러싸인 헤힝겐의 성은 말 그대로 천연의 요새. 시가지에 접해 있긴 하나 도나우강이 감아 도는 지그마링겐의 성 또한 넘볼 수 없는 요충이었다. 아름다움과 위엄. 이 두 성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다. 이 성을 기반으로 독일의 지배자가 된 호엔촐레른가. 지금껏 남겨둔 가문의 상징을 통해 독일인들 뿐 아니라 백규 내외 같은 외국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인간의 일들을 역사로 만들어내는 시간의 흐름이란 과연 무엇인가.
오늘 우리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말 없는 서사시를 들었다. 호엔촐레른가의 시련과 번영을 통해 흥망성쇠의 철리(哲理)도 함께 깨달으며.
이제 우리는 옛 성과 호수가 만들어내는 서정의 요람, 메어스부르크로 달려간다. 메어스부르크의 서정은 보덴호수Bodensee를 건너 콘스탄츠에서 완성될 것이다.
<계속>
**사진 위는 헤힝겐 호엔촐레른성(Burg Hohenzollen)의 크라이스트 성당, 아래는 지그마링겐 호엔촐레른 성의 성요한 성당Stadtpfarrkirche St. Johann의 화려한 내부
200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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