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독일 제11신(1) : 칼브Calw에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를 만나다 > 여행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여행기

유럽여행기 [44] 독일 제11신(1) : 칼브Calw에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를 만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4:28 조회 1,726회 댓글 0건

본문

독일 제11신(1) : 칼브Calw에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를 만나다


 10월 2일, 대충 맑음.
 오후 2시 26분 브람스하우스 출발. 500번을 타고 가다가 294번 도로를 만나는 것. 그 코스만이 칼브를 향한 안정적 지름길이었다. 그러나 가도 가도 294번 도로는 나오지 않고, 난데없는 석양만 우리의 눈을 부시게 할 뿐이었다. 동쪽에 있는 칼브가 갑자기 서쪽으로 이동이라도 했단 말인가, 왜 이 시각에 석양이 눈을 부시게 할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라인강이 나오고, 저 멀리의 라운드어바웃 주변에 프랑스 경찰관 몇 명이 서 있었다. 아차, 프랑스 국경을 넘었구나.
 하는 수 없이 바덴바덴으로 되돌아왔다. 간신히 500번으로 재 진입, 게른스바흐Gernsbach-바트헤레납Badherrenalb-도벨Dobel을 지나 직진하다가 비로소 294번 도로를 만났다. 캄바흐Calmbach에서 296번을 만나 계속 달리니 히어사우Hirsau마을이 나오고,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나자 칼브가 눈앞으로 닥쳐왔다. 오후 4시 39분이었다.

             ***
    
 일요일이니 인포메이션 센터는 당연히 문을 닫았고. 하는 수 없이 직접 숙소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참으로 좁은 마을이었다. 나골트Nagold라는 작은 강이 시가지를 좌·우로 나누었다. 그러나 시가지의 대부분은 우측에 있고, 좌측은 산비탈에 주택가만 형성되어 있었다. 젠트룸으로 간신히 들어갔다.
 시가지는 아름다웠으나 거대한 주차장 겸 대형 마트인 카우플란트Kaufland가 흉물처럼 도심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칼브를 목가적인 전원풍의 마을로 상상하고 달려온 우리를 좌절시킨 것이 바로 그 주차장이었다. 주차장을 보고나서야 우리가 상상해온 대로 과연 꽃바구니를 내건 작은 집에 ‘Zimmer Frei'의 아름다운 팻말이 내걸려 있을지 강한 의문이 생겼다.
 정말로 숙소가 없었다. 호텔은 몇 되지 않는데, 모두 예약이 끝났거나 가격이 엄청 비쌌다. 이곳에서 잠까지 자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듯 했다. 일방통행 길 뿐인 비탈길을 뒤지며 숙소를 물색했으나 끝내 실패.
 하는 수 없이 올 때 보아둔 히어사우로 차머리를 돌렸다. 5분쯤 달리자 히어사우의 초입에 아담한 호텔의 간판이 보인다. 비르트하우스Wirthaus 뢰벤Lowen이란 이름의 레스토랑을 겸한 호텔이었다. 호탕한 여장부 형의 주인은 흔쾌히 방을 내주었다. 넓고 안락한 새 방이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자 칼브의 서운함이 비로소 풀렸다.

             ***

  체크인을 마친 우리는 히어사우를 산책했다. 갑자기 거대한 건축물과 그 잔해들이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우리는 폐허로 남은 그 건축물의 안으로 빨려들 듯 걸어 들어갔다. 아, 흡사 전쟁 통에 포를 맞아 부서진 듯. 지붕이나 내부구조는 대부분 사라지고 돌 벽들만 썰렁하게 남아 있었다. 두꺼운 돌 벽들 곳곳에는 ‘탄흔(彈痕)’으로 보이는 상처들이 무수했다. ‘베드로와 바울 수도원Kloster St. Peter und Paul'.
 예배당과 몇 동의 건물들은 아직 무사한 듯 했다. 11세기 경 건립되었다는 이 수도원. 왜 이 한적한 시골에 거대한 몸집으로 서게 되었으며, 무슨 이유로 이처럼 처절하게 파괴되었는지. 지금껏 우리는 ‘영광의 장소’만 거쳐 왔다. 화려함과 장중함. 그리고 완벽한 보존. 그런데 이런 폐허야말로 처참한 패배의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 아닌가. 가톨릭의 천국 유럽에서 그 단단하고 거대한 수도원이 이렇게 처참한 몰골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그게 참으로 좋았다. 개인이나 국가나 어찌 승리의 영광만 누릴 수 있을까. 때에 따라서는 비참한 패배와 좌절도 피해 갈 수 없는 게 개인이나 공동체의 운명인 것을. 지금까지 우리는 화려한 영광에만 익숙해져 왔었다. 그러나 지금 인간에겐 비참한 패배가 더 많을 수도 있음을 저 수도원의 폐허는 ‘몸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감동적이었다. 그 감동의 현장 바로 곁에서 우리는 하룻밤을 묵는다. 영광과 치욕의 교직(交織)으로 이루어지는 게 인생임을 배우면서.
<계속>

**사진 위는 숙소 히어사우(Hirsau)에 있는 베드로와 바울 수도원(Kloster St. Peter und Paul)의 모습, 아래는 숙소가 있는 히어사우의 시가지.


2005-10-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白圭書屋:::
대표자 : 조규익 | Tel : 010-4320-8442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 E-mail : kicho@ssu.ac.kr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